화재전 보았던 향일암에 대한 기억들

2009. 12. 23. 11:16사진 속 세상풍경

12월 20일 전남 여수 항일암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해 종무소와 종각이 잿더미로 변했다고 한다.
뉴스를 접하면서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2004년 낙산사가 화마로 소실되는 아픔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었다.
천년 고찰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된 후 국민의 성금으로 복구를 했지만 예전과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 늘 안타까웠는데 이번에 전남 여수의 향일암이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남다른 안타까움이 들었다. 
왜냐하면 불이 나기 3~4개월전에 여수 향일암에 다녀왔었는데 난생 처음 가본 향일암의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가슴이 아팠다.
지난 8월 2012년 여수 세계 박람회를 홍보하기 블로거 팸투어에 초청받아 갔을 때 들렀던 곳 중에 하나가 바로 향일암이었다.
해마다 신년초에 해돋이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여수 향일암......직접 그곳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렜다.
돌산 갓김치가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가는 곳마다 갓김치를 파는 가게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맛보기로 내놓은 갓김치를 맛보며 향일암으로 오르니 가파른 언덕길도 그닥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향일암으로 오르는 곳에 빼곡하게 늘어선 갓김치 가게들...그중 들린 곳은 갓물김치 맛이 너무나 시원했다.
함께 가던 블로거 박씨아저씨도 돌산 갓김치 맛에 푹 빠졌다.


초록이 우거진 늦여름 향일암에 오르는 길.....전날 과음한 탓인지 점점 뒤쳐지기 시작했다.
함께 가던 사람들이 벌써 보이지 않는다. 숨은 가쁘지만 향일암에서 내려다볼 남해의 모습을 기대하며 한걸음 한걸음 내딛였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양쪽으로 커다란 거북이 석등이 반기고 금오산 향일암이라는 일주문 현판이 눈에 띘다.


일주문에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잠시 쉬며 안내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일주문을 떠받들고 있는 기둥 중에 용의 모양을 한 석등이 웅장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일주문을 지나 향일암으로 향하는 길 ...가파른 길을 오르느라 힘은 들었지만 짙푸른 8월의 푸른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바다를 보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앞서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춰섰다.
바위가 갈라진 좁은 문을 지나면 향일암이라고 한다.


깍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로 한 사람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동굴이 뚫려있었다.
블로거 바람흔적님이 먼저 향일암을 향하는 동굴로 들어서고 있다.


일주문 계단과 동굴을 통해야 다다를 수 있는 향일암 온통 금장색을 한 원통보전이 한 눈에 쏙 들어왔다.
2009년 6월 금장색으로 단청을 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원통보전 그렇지만 아쉽게도 6개월만에 화재로 전소되어 안타까움을 더해 주었다.


원통보전 내에 있던 청동불상과 탱화도 모두 화마로 인해 소실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있는 등과 소중한 문화재가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오는 31일과 1월 1일 새해 소망을 기원하는 제 14회 여수 항일암 일출제가 열릴 계획이었고 이곳에서 타종식이 열 계획이었다고 한다.
종은 향일암에서 31일 자정 5초전부터 모든 관광객의 카운트 다운과 함께 엑스포 성공개최와 세계화를 지향하는 여수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었는데 이번 화재로 행사진행이 대폭 축소될 것이라고 한다.


날이 흐렸지만 눈앞에 펼쳐진 남해와 섬들이 한 눈에 쏙들어왔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남해의 일출...... 정말 장관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남도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동백나무 군락들.....향일암 원통보전 주변에도 수령을 알 수 없는 커다란 동백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이번 화재로 무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향일암은 미로 같은 동굴을 지나야 갈 수 있는 곳이라서 화재에 더욱 취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일암을 올라올 때 그리고 해수관음상이 있는 관음전으로 향하는 곳도 마치 영월의 고수동굴을 지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동굴 속에 눈쌀을 찌푸리게 한 것은 역시 낙서....검은 색과 흰색의 낙서들이 정말 볼썽 사나웠다. 


좁고 가파른 동굴을 지나 관음전에 오르니 남해를 바라보고 섰는 해수관음상이 반겼다.
엷은 미소를 띈 관음상의 모습이 온화하고 평온해보였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진 섬들과 남해의 모습이 동해와는 사뭇 달랐다.
공룡섬 사도에서 보았던 일출과 흡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를 때와는 다르게 계단이 없던 하산길....화재시 소방차가 출동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는데 경사가 급하고 길이 좁아서 차량 진입에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차량이 진입할 수 있는 곳에서 원통보전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 화재진압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양의 낙산사는 소방차의 진입이 향일암보다 쉬웠지만 강한 바람을 타고 번진 산불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리적으로 화재에 취약했던 향일암 역시 강한 바닷바람에 삽시간에 전소되었다고 한다.
난생 처음 본 향일암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안타까웠다.
문화재에 대한 화재예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