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자장면 먹었던 40년 전 어린이날
2009. 5. 5. 09:47ㆍ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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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린이 날이다. 자식들이 대학생 고등학생이 되고 보니 어린이날이라는 것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이들과 하루종일 함께 지내거나 주변 가족들과 주변 공원으로 야유회를 가거나 1일 여행을 가기도 했다. 아이들은 의레히 이날은 선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미리 선물 받을 목록을 이야기 하곤 했다.올해 어린이날은 정말 무료하다, 큰 아들은 병원에 입원해 있고 작은 아들은 중간고사라며 밤을 새우고 지금은 잠들어 있다. 마치 40년전 어린이 날처럼 조용하고 무료하다.
40년전에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3년 터울로 아들만 사형제인 우리집은 할머니와 부모님 모두 일곱식구가 작은 초가집에 살고 있었다.아버지는 늘 항아리를 만드는 가마골로 일을 나가시고 어머니는 아침 일찍 남의 일을 가시거나 과수원에 나가 일을 하시곤 했다. 당시에는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이나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어린이날이라고 해서 특별한 기대감도 없었다. 오히려 어버이 날에 학교에서 배운대로 집안 일을 거두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어린이 날도 예외없이 형은 과수원에 일을 하러 갔고 나는 늘 동생들과 함께 지내야 했다. 울타리 아래서 병아리 모이를 주거나 마굿간의 소들 먹이를 주는 것도 어린 나의 몫이었다. 동생들과 함께 있는 것이 지겨워 몰래 도망을 갔다가 할머니께 혼이 난 적도 있었다. 동네에 TV도 한 집 밖에 없었던 터라 요즘처럼 어린이 날 해주는 재미있는 영화도 볼 수가 없었다. 어린이날은 빨간 글씨 그저 하루 쉬는 날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세계일보>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날에 특별하게 기억이 남는 일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자장면이었다. 반 친구 중에 읍내에 있는 사생대회에 나갔다가 입상을 한 친구가 읍내에서 선생님과 자장면을 먹었다며 자랑을 하는데 얼마나 뻥이 심한지 시커먼 자장면이 정말 맛있기는 한데 너무나 미끄러워서 입으로 잘 들어가지 않으니 절대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시 그 친구는 동네에서 가장 잘 나가는 부자집에 동네 이장 아들이라서 늘 학교를 대표하거나 상을 휩쓸곤 했다. 그림이라면 나도 그에 못지 않다고 생각한 나는 선생님에게 그림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했고 당시 세무서에서 주최한 밀주단속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 친구와 함께 읍내로 나가 운좋게 대상을 받게 되었다. 당시 읍내는 학교에서 9K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선생님과 함께 합승을 타고 읍내로 나가는 것이 태어나 가장 멀리 가본 여행이었다. 시상식에서 상장과 상품(노트12권과 필통 그리고 연필 한 타스)을 받았는데 정말 푸짐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친구가 이야기 하던 곳에 가서 자장면을 시켜주었는데 친구에게 들었던 말 때문에 은근 걱정을 했는데 막상 자장면을 입에 넣고 보니 정말 꿀맛 같았다. 맨날 보리와 조를 섞은 혼합식만 먹다가 부드럽게 넘어가는 자장면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맛이 좋았다. 늘 어머니가 나물을 뜯어 나가셨다고 저녁 늦게 돌아오실 때 팅팅 불은 찐빵을 사 오시던 읍내.....우물안 개구리처럼 작은 마을에서 살다가 읍내에 나가서 목조로 된 2층집도 처음 보았고 사진관이며 빵집 그리고 아버지가 가끔 들리시던 국밥집도 보았다.
상을 타고 난 후 부터는 그림 그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 되었고 스케치북이든 노트든 하물며 신문지나 운동장에도 늘상 그림을 그리곤 했다. 고등학교 때 까지 만화 주인공을 그리거나 만화를 직접 그리기도 했지만 가난 때문에 미대 진학을 포기했던 나.....지금은 아들 녀석이 그 꿈을 대신하고 있다......오늘 아침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어릴 적 어린이날을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40년전에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3년 터울로 아들만 사형제인 우리집은 할머니와 부모님 모두 일곱식구가 작은 초가집에 살고 있었다.아버지는 늘 항아리를 만드는 가마골로 일을 나가시고 어머니는 아침 일찍 남의 일을 가시거나 과수원에 나가 일을 하시곤 했다. 당시에는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이나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어린이날이라고 해서 특별한 기대감도 없었다. 오히려 어버이 날에 학교에서 배운대로 집안 일을 거두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어린이 날도 예외없이 형은 과수원에 일을 하러 갔고 나는 늘 동생들과 함께 지내야 했다. 울타리 아래서 병아리 모이를 주거나 마굿간의 소들 먹이를 주는 것도 어린 나의 몫이었다. 동생들과 함께 있는 것이 지겨워 몰래 도망을 갔다가 할머니께 혼이 난 적도 있었다. 동네에 TV도 한 집 밖에 없었던 터라 요즘처럼 어린이 날 해주는 재미있는 영화도 볼 수가 없었다. 어린이날은 빨간 글씨 그저 하루 쉬는 날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세계일보>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날에 특별하게 기억이 남는 일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자장면이었다. 반 친구 중에 읍내에 있는 사생대회에 나갔다가 입상을 한 친구가 읍내에서 선생님과 자장면을 먹었다며 자랑을 하는데 얼마나 뻥이 심한지 시커먼 자장면이 정말 맛있기는 한데 너무나 미끄러워서 입으로 잘 들어가지 않으니 절대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시 그 친구는 동네에서 가장 잘 나가는 부자집에 동네 이장 아들이라서 늘 학교를 대표하거나 상을 휩쓸곤 했다. 그림이라면 나도 그에 못지 않다고 생각한 나는 선생님에게 그림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했고 당시 세무서에서 주최한 밀주단속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 친구와 함께 읍내로 나가 운좋게 대상을 받게 되었다. 당시 읍내는 학교에서 9K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선생님과 함께 합승을 타고 읍내로 나가는 것이 태어나 가장 멀리 가본 여행이었다. 시상식에서 상장과 상품(노트12권과 필통 그리고 연필 한 타스)을 받았는데 정말 푸짐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친구가 이야기 하던 곳에 가서 자장면을 시켜주었는데 친구에게 들었던 말 때문에 은근 걱정을 했는데 막상 자장면을 입에 넣고 보니 정말 꿀맛 같았다. 맨날 보리와 조를 섞은 혼합식만 먹다가 부드럽게 넘어가는 자장면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맛이 좋았다. 늘 어머니가 나물을 뜯어 나가셨다고 저녁 늦게 돌아오실 때 팅팅 불은 찐빵을 사 오시던 읍내.....우물안 개구리처럼 작은 마을에서 살다가 읍내에 나가서 목조로 된 2층집도 처음 보았고 사진관이며 빵집 그리고 아버지가 가끔 들리시던 국밥집도 보았다.
상을 타고 난 후 부터는 그림 그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 되었고 스케치북이든 노트든 하물며 신문지나 운동장에도 늘상 그림을 그리곤 했다. 고등학교 때 까지 만화 주인공을 그리거나 만화를 직접 그리기도 했지만 가난 때문에 미대 진학을 포기했던 나.....지금은 아들 녀석이 그 꿈을 대신하고 있다......오늘 아침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어릴 적 어린이날을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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