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뭉치를 반장으로 임명했던 선생님을 기억하다....

2009. 4. 23. 07:59세상 사는 이야기

오늘 아침 약수터를 다녀온 시각이 7시였다. 돌아와 아들 등교 준비를 하느라 바쁜 시각에 마침 생방송 세상의 아침에서 김학도의 클릭세상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뉴스 내용이 박탈된 반장이야기였다. 그것도 성적 때문에 반장을 박탈당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라서 더욱 충격이 컸다.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박모군은 정당하게 치러진 반장선거에 당선되었지만 담임선생님이 반장 자격을 박탈했다고 한다 당선된 학생의 반 배치고사 성적이 전교 상위 40%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실의에 빠진 박모군과 부모님은, 이에 대해 학교 측에 문의를 했지만, 학교에서는 마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처럼 취급했다고 한다. 학교 선생님들의 냉랭한 태도에 두 번 상처 받은 박모군은 끝내 학교를 가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학칙에 따라 박탈했다는 선생님의 잘못은 아니겠지만 정말 아직도 반장을 성적순으로 뽑는다는 이야기에 적지않이 놀랐다.또 아직도 많은 학교에서 반장을 뽑을 때 성적을 가이드 라인으로 설정해서 뽑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31년전 선생님이 떠올랐다.
물론 그때도 반장을 뽑는데 성적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대부분 인지하고 있던 때였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새로운 담임선생님이 부임하고 반장선거를 치르면서 일대 파란이 일어났다.
2학년을 이끌고 나갈 반장선거를 뽑는 날 학생들이 뽑은 반장 후보 명단에 선생님이 한 학생을 추가로 올렸다. 이어서 후보로 뽑힌 학생들의 발언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후보로 올린 학생에 대해 모두 발언이 시작되었다. 그 학생은 엄밀하게 따지면 2년 선배였다. 속된 말로 사고뭉치로 꿀은 학생이었고 학교에서도 낙인 찍힌 문제아였다. 그런 학생을 후보로 올려놓은 선생님은 반장 후보로 천거한 이유가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었다.
"00는 학교나 학생들 사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학생이라는 것은 알것이다. 이곳으로 전근와 담임을 맡고 처음 접한 것이 여러분의 학적부와 생활기록부였다. 그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학생이 바로 00였다. 엄밀하게 따지면 여러분의 2년 선배인데 꿀었다.홀 할머니 아래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렵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과 학교는 물론이고 밖에서도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하지만  00군의 이장님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니 할머니에게만은 누구 못지 않은 효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일부러 그랬든 아니든 그간 00이 했던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선생님은 이런 00에게 반장을 맡기고 싶고 기회를 주고 싶다.그리고 분명히 잘 할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제껏 내 확신은 한번도 어긋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반 협박(?)처럼 들리는 선생님의 발언에 압도적인 차이로 00는 반장에 당선되었다.
동네에서 가장 무서운 형으로 알고 있던 동기들은 반에서도 형으로 불렀고 익히 소문을 알고있던 반친구들도 함부로 말을 걸지 못했던 00. 그런데 반장이 되고난 후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다.
매일 교무실로 반장을 호출했고 다녀온 반장은 몰라보게 유순해졌다. 아침마다 칠판에 한자로 사자성어를 쓰는 것도 그의 몫이었고 교실 분위기를 활기차게 이끄는 것도 00였다. 놀라운 것은 체육대회와 소풍 또는 단체로 하는 것에 물불 안가리고 앞장서는 반장 덕분에 늘 우리반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늘 뒤에서 사고만 치던 00가 반장이 되고나서 전면에서 진두지휘(?)하며 분위기를 업시켰다.
처음에 두렵던 선배갔던 동기가 어느새 부드러운 친구로 변해있었다. 물론 그 속에는 반장에 대한 지극한 선생님의 사랑이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른 선생님들은 늘 기피하던 학생이었고 열외를 시켰는데 오히려 그런 문제아를 반장으로 뽑고 날마다 교무실로 불러서 반장으로서 책무를 다하게 했던 선생님.....지금같은 상황이라면 어림 반푼어치도 안될 이야기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정말 남다른 선생님으로 기억된다.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이것뿐이 아니다. 늘 가정방문을 통해서 학생들의 가정사를 알아보고 또 마을 사람들을 통해서 경청하고 늘 묵묵히 뒤에서 도움을 주었던 선생님.....몇해전에 동문 체육대회에서 뵙고 소식이 끊겼는데 올 스승의 날에는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을 꼭 찾아 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