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팔순 아버지의 외로움

2009. 4. 13. 10:31세상 사는 이야기

 지난 주에 바쁜 일을 미뤄두고 고향에 다녀 왔습니다. 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안좋으시고 주변 사람들에게 외롭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형제들이 모였습니다.2년전 갑자기 어머니가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몰라보게 기력을 잃으셨고 부쩍 말수도 적어지셨습니다. 형님이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데 두 사람 모두 맞벌이를 하는 관계로 낮에는 집이 텅비어 있습니다. 거기에 손주와 손녀마저 대학 때문에 기숙사로 가고 나니 집은 적막강산이나 다름없습니다. 기껏 경로당에 다녀오시는 것 말고는 딱히 시간을 소일할 것이 없으니 집에서 습관적으로 TV를 크게 틀어놓고 계시다 잠이 든다 하셨습니다. 아마도 늘 함께 하시던 어머니의 빈자리가 시간이 지날 수록 크게 느껴지시는 듯했습니다. 더군다나 틀니를 하신 후로는 밥맛까지 잃으셔서 더 몸이 쇠약해지셨다고 합니다.노인들의 외로움은 젊은 사람들에 비해 우울증 환자로 발전될 확률이 무척 높다는 의사의 말에 걱정이 앞서곤 했습니다.이번에 팔순 아버지를 뵈러 고향에 갔을 때도 예전처럼 창밖으로 TV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아버지는 방안에서 혼자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잠결에  반갑게 맞아 주시는 아버지...아버지의 모습을 뵈니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 졌습니다. 객지에 나가 고생한다며 늘 힘들게 농사지은 것들을 보내주시던 부모님이셨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농사를 지을 엄두를 내지 못하시다보니 집에서 소일하는 시간이 정말 많아지셨습니다. 할 수 없이 지난 해 땅의 일부는 건설회사에 임대를 주었고 올해는 남은 밭에 전나무를 심었습니다.

 
형님 내외가 퇴근하기 전에 속초에서 사간 물곰탕을 끓여 아버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그나마 가장 맛있게 드시는 것이 물곰탕이라서 집에 갈 때 마다 거르지 않고 사가는 생선이 바로 물곰탕입니다.저녁 식사를 먹으며 아버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요즘 몸이 많이 불편하시죠,아버지?"하자" 괜찮아,참을만 해" 하십니다.요즘 동네 사람들에게 외롭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는 소리를 들은지라 이것저것 여쭈어 보니, 자식이 걱정할까 그러시는지 조금 심심할 뿐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 형님 내외분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늦은 식사를 마친 후에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새로 들이는 것이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형님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데 형수님은 펄쩍 뛰었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신지 얼마나 되셨다고 벌써 어머니를 들이느냐며 새어머니는 절대 못모신다고 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다른 대안을 찾을 수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딱히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요양원에 가시는 것은 질색이시라 혼자 계실 때 외롭지 않도록 해드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우선 아들 사형제가 자주 전화를 드리기로 하고 아버지께 새로운 휴대폰을 사드리기로 했습니다. 예전의 전화기는 밧데리가 빨리 떨어져 휴대폰을 갖고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또 그동안 휴대폰을 갖고 계셔도 전화가 자주 오지 않아 집에 놓고 다니셨다는 말에 하루에 두 통화 이상씩 하자 약속을 하였습니다. 전화 목소리만으로도 아버지의 기분을 느낄 수 있고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외로움을 덜 느끼셨으면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또 전화번호가 많아 잘 누르지 못하는 아버지를 위해 1번은 형님 2번은 나 3번과 4번은 동생 그리고 며느리들의 단축전화번호를 입력해드렸습니다.또 힘든 농사일도 아버지도 찾아뵐 겸 교대로 와서 형님을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지금으로써는  자주 전화드리고 자주 찾아 뵙는 것만이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의 외로움 더 이상 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