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바람난 할머니와 함께 사는 이유...

2009. 4. 13. 14:45세상 사는 이야기

올해 나이가 일흔 넷인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신다. 만날 때 마다 활력이 넘쳐 보이는 할아버지는 자신의 무용담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젊었을 때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야기를 하는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듣는 나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무척 많았는데 할아버지의 삶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어릴 적에 6.25 사변이 터졌고 가족이 몰살 당하고 혈혈단신 혼자 남았다는 할아버지는 안해본 것 없이 다해봤다고 했다.
그 후 이를 악물고 성실하게 생활한 덕분에 취직도 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소개로 만난 할머니와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아들 하나에 딸 둘을 두었는데 큰 딸과 아들은 결혼을 하고 막내 딸은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할아버지는 늘 남의 일을 돕는 것이 몸에 배어 있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좋아한다.


그런데 며칠전에 술을 마시는데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동안 할머니와 20년간 무늬만 부부인채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할머니와 나이차가 15년 차이인 할아버지는 아이 셋을 두고 행복했었다고 한다. 하지만그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가 시장통에서 장사를 하면서 춤바람이 났고 그곳에서 만난 다른 남자와 사귀면서 점점 가게를 비우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숱하게 싸우면서 캬바레에 가지 못하게 했지만 실신하듯 과민반응을 보이는 아내 때문에 말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하루에도 몇번씩 이혼을 결심하고 또 쫓아가서 상대 남자에게 분풀이를 해보았지만 결국 아내를 말리지 못했다고 했다. 고아나 다름없는 할아버지가 살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가정이 깨지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자신에게 벌어지자 어찌 해야할지 몰라 한동안 술로 살았다고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장사도 해보았았지만 오히려 가게를 비우는 일이 더 잦아졌다고 했다.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할아버지가 어렵사리 결론을 내린 것은 돌아올 때 까지 참고 기다리기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것만이 가정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살아왔다고 한다.그후 20년간 늘 각방을 쓰며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이상한 것은 아내가 이혼하자는 소리는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아이들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할아버지는 마음이 힘들 때 마다 낚시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잡은 고기들은 모두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할아버지..........그동안 감춰왔던 이야기를 꺼내 놓은 탓인지 금새 술이 취하신 듯했다. 바람난 아내를 곁에 두고 살아온 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제 곧 60이 될텐데 곧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냐며 일어서시는 할아버지 모습이 두고두고 마음을 아프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