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들이 학원 끊은 이유 알고 봤더니...

2008. 12. 12. 21:00세상 사는 이야기


지난 해에는 작은 아들 입시 때문에 홍역을 겪고 올해는 큰 아들 수능과 아들 등록금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 푸근한 소식이 있습니다. 늘 속을 끓이던 작은 아들이 요즘은 잔소리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작년 중학교 졸업반이었을 때 고입 원서를 쓸 때의 일이었습니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운동에 미쳐 있던 아들이 갑자기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겠다고 할때 깜짝 놀랐습니다. 성적이 안되는데 어떻게 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내신성적으로는 안되지만 남은 기간동안 공부해서 12명만 제치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고집이 쇠고집이라 꺽다 꺽다 포기하고 선생님께 상담을 했더니 자신만 열심히 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하더군요.
3년동안 공부랑 담을 쌓고 다니던 녀석이 갑자기 공부를 하기 시작하는데 이녀석 코피를 쏟아가며 새벽까지 공부를 하더군요.
참 살다살다 별일 다보겠네 생각했는데 어느 날 이녀석이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려고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친한 친구 다섯 명이 모두 인문계로 진학을 하게 되자 혼자 떨어지게된 아들이 평소에 공부 안한 것이 엄청 후회가 되었나 봅니다.친구들은 모두 안정권인데 아들은 성적이 안되니 혼자 끙끙 속을 태우다가 선생님을 조르고 부모를 졸라서 원서를 쓰게 된 것이엇습니다. 독서실과 집을 오가면서 피터지게 공부를 하더니 정말 합격을 하더군요.....간신히 합격한 녀석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이녀석 합격을 하더니 이상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 집에서 혼자 공부하겠다고 합니다.
아내는 방학동안에 그동안 중학교 내내 놀았던 것을 보충하고 고등학교 예습을 위해서 학원을 다녀야 한다며 보챘고 아들은 학원을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한다고 우겼습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일리가 있고 아들 녀석의 결심 또한 존중해주고 싶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결국 고등학교 들어가서 첫시험 볼 때의 성적이 나올 때 까지 아들의 결심대로 해주기로 했습니다. 겨울 방학동안 인터넷을 통해서 책을 주문해 읽기 시작하는데 모두 공부 잘하는 방법이나 긍정적인 삶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아마도 자신이 처음 도전했던 성취감에 한껏 고무되어 자신감이 충만해 보였습니다.


강요에 의해서 학원을 다녔던 큰 아들 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거부하고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작은 아들에게 더 마음이 갔습니다.
어느 날 작은 아들의 책상 위 벽에는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 걸린 명언들이라는 글귀가 걸렸습니다.
읽기만 해도 정말 마음에 쏙쏙 들어오는 명언들입니다. 제발 용두사미 작심삼일만 되지 마라 아들아......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곤 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더니 동아리반에도 들고 친한 친구가 실장이 되자 자신이 총무를 맡는 등 적극적으로 학교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가능했던 입학시험에 합격했다는 자신감이 이렇게 큰 효과를 발휘할 줄은 몰랐습니다.마침내 약속했던 첫 시험을 보고 성적이 나왔는데 아뿔사....이 녀석 사고를 단단히 쳤습니다. 무려 100등을 올라갔습니다.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기초도 없던 녀석이 어떻게 이렇게 성적이 오를 수 있을까....지금도 참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덕분에 아들은 약속대로 학원을 다니지 않고 지금도 혼자 공부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책을 정리하다 우연히 김현근의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 없다"라는 책을 뒤적이다 작은 쪽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책을 읽고 난 후 짧게 써놓은 아들의 메모지에는 그림과 함께 '나 혼자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의 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된 일이었지만 고입선발고사에 붙고 친구들에게 형 때문에 늘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나혼자 열심히 공부해보겠노라며 모르는 것 있으면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즉 아들의 속내를 한번도 들여다 보려고 하지 않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워 졌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몇개월 사이에 훌쩍 커버린 작은 아들이 정말 대견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요즘은 아내와 내가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저 녀석 제가 알아서 잘 나갈 때 더 많이 칭찬해주자고 말이지요...
그래서 아침마다 아들과 대화하기 위해서 내 차를 태워 등교를 합니다.
처음에는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놓칠 때 마다 태워 주다가 이젠 매일 아들과 함께 가며 대화를 나눕니다. 학교 가는 시간이 20분 정도지만 그 시간이 정말로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의 고민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죠.
자신이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 깨닫고 실천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먼길을 돌아서 아들이 스스로 그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에 정말 마음이 푸근하고 또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