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게 알콜성 치매 판정을 받다.

2008. 12. 11. 20:52세상 사는 이야기

벌써 5일이 지났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의사로 부터 알콜성 치매라는 판정을 받은지가 ......
그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은 지역의 병원에서만 받았었는데 이번에는 서울에서 출장을 온 병원에서 받게 되었습니다. 방송프로그램 '비타민'에 건강박사로 나오는 권오중 박사가 대표병원장으로 있다는 병원에서 내려와 진료를 했는데 지난 밤 9시 이후에는 아무 음식도 먹지 말고 다음날 공복으로 오라는 말에 아침 9시에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진료를 받기 전에 이름과 주소 그리고 세세하게 체크를 하더군요. 술을 하루에 얼마나 마시는지 일주일에 몇 번 마시는지
주량을 얼마나 되는지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내력이 있는지 등등.....
술을 일주일에 3~4번 먹고 주량은 소주2~3병 정도이며 가끔 폭주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시력검사와 혈압 그리고 골밀도 검사와 혈액검사 소변검사와 심전도 검사를 마치고 내과 의사에게 갔습니다.
의사는 나이가 지긋하신 여의사였는데 내 진료카드를 유심히 들여다 보다 나를 쳐다보며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혹시 술을 마시면 필름이 끊기기도 하나요?...."
"예,젊었을 때는 아무리 술을 먹어도 끊기지 않았는데 요즘은 끊기는 횟수가 잦아진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무얼타고 왔는지 전혀 기억이 안나고 마지막에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도 기억이 안납니다." 진료카드를 보며 내 이야기를 듣던 의사 선생님이 대뜸 이런 말을 하더군요.
" 술을 당장 끊으셔야 겠네요...술의 양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지만 폭주는 가장 안좋은 음주법이예요..."
"제가 봐서는 알콜성 치매 초기 증상입니다."


"알콜성 치매라는 말 들어보셨지요?....아주 무서운 병이예요...뇌속에서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라는 이 손상되는 것을 말하는데 지금 당장 술을 끊지 않으면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불행해집니다."
요즘 방금 하려던 일도 눈깜짝 할 사이에 잊어버려 기억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생기는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가 좋고 사람들이 좋아 자주 술을 마신다고 하셨는데 그 사람들이 선생님이 아프거나 병이 나면 얼마나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세요....병이 나면 아무도 곁에 남지 않습니다. 남은 것은 가족인데 가족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될지 생각해 보셨어요?...."
묵묵부답 할 말이 없었습니다. 다 옳은 이야기만 하니 얼굴만 벌개질 뿐이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의 훈계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다음 날 힘들지요?.....피로가 누적되고 간에 무리를 주게 되어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게 됩니다."
"알콜성 치매에 걸리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건망증처럼 다시 기억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아예 회복되지 않아요.."
"늘 속이 쓰리지요?...특히 공복에는 속을 쥐어짜도록 말이예요....."
'예..."
"오늘 이후로 당장  끊으세요.....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말이예요......명심하세요 알콜 중독자 위험인자를 갖고 계시고 알콜성 치매 초기증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아시겠어요?.."
나와 같은 사람들 정말 많이 봐왔다며  더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고 바로 금주를 하라는 의사선생님....이렇게 강하게 훈계하는 의사를 본적이 없던지라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다 나를 위해 화를 내는 것이라 생각하니 고마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말술 주당이라는 소리를 들어 친구가 소주 회사에서 상을 줘야 한다는 우스개소리도 들었을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고 냉면 그릇으로 원샷을 하는 객기도 부렸던 적도 있었습니다.
아들만 사형제였는데 유독 나만 아버리를 닮아 술을 많이 마신다며 어머니께 핀잔을 듣기도 했었습니다.

"술을 마실 시간있으면 그 시간에 열심히 운동을 하세요 뼈의 골밀도도 좋지 않으니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빠른 걸음으로 운동을 하세요..."
"가족과 함께 운동을 하면 더 좋겠지요...꼭 실천하세요...알았지요?..."
의사의 다짐에 '알았습니다'하고 일어서는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동안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이 조금씩 조금씩 내 기억을 파먹고 있었구나......
담배를 끊은 지 9년이 넘었는데 이제 술마저 끊어야 하다니.....
집으로 돌아와서도 의사의 단호한 목소리가 자꾸 귀에 잉잉 거렸습니다.
"술을 끊으세요...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