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71세 할머니의 생존법

2008. 12. 3. 13:35세상 사는 이야기

폐지 줍는 할머니를 만난지 꽤나 오래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한 자리에서 30년을 장사를 하셨고 이제 알음알음 15년이 다 되어 갑니다. 할머니는 30년전 홀로 되신 후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이제껏 생활하고 계시는데 요즘 가장 힘든 날을 보내고 계셨습니다. IMF전 까지만 해도 이곳 시장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곤 했는데 이제는 몇몇 상가를 빼놓고는 파리를 날리고 있다고 합니다.
30년전 이곳에서 포장마차를 시작하신 할머니는 단골 고객도 많아서 영업이 꽤나 쏠쏠했던 적도 있었지만 경쟁자들이 생기면서 포장마차가 7개가지 늘어났다가 IMF 때 대부분 떠나 버렸다고 합니다. 이곳은 예전에는 권리금을 5천만원 주고 들어온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비싼 자리였지만 지금은 그냥 도로일 뿐이라고 합니다.
다시 할머니를 만난 날도 할머니는 포장마차에 불을 켜놓고 폐지를 묶고 계셨습니다. 몇 년 전 부터 시작한 폐지는 포장마차가 영업이 안되면서 시작되었는데 밤새도록 폐지를 줏어서 근근히 생활해왔다고 합니다.


오후 4시 30분에 집을 나와 새벽 여섯시에 들어가는 고된 일상 속에서도 늘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할머니....
늘 "할머니 아직 70이 안넘으신 것 같아요.." 하고 말을 하면
"그럼,내가 어디를 봐서 그렇게 나이가 들어보여....아직 머리에 염색 한번 해본 적 없는 사람인데...."
할머니는 머리 엽색을 하지 않았는데도 흰머리가 별로 없습니다. 늘 바쁘게 사시니 머리도 흴 시간이 없었나 봅니다.
"그나저나 폐지값이 많이 떨어졌다고 하던데요..."
"말 말어, 그나마 몇 달 전에 100원 하던 것을 이제는 kg당 30원 밖에 안처줘....정말 힘만들고 돈이 안돼...."
"그 많던 폐지 줍는 사람들 요즘 있나 둘러 봐....폐지값이 2~300원 할 때는 폐지 때문에 서로 싸우고 노숙자들 까지 폐지를 줍느라 난리였었어.."
"고물상 아저씨 말로는 환율상승으로 폐지수출을 할 수 없게 되어 가격이 폭락한 것이라고 하는데 고물상에서도 폐지를 받기를 꺼릴 정도야..."
"할머니 지방에 계신 다른 할머니는 폐지 줏어 하루에 600원 밖에 못번다고 하시면서 병을 줏으러 다닌다고 하던데요..."
"어, 이곳은 빈병을 갖고 가면 20원을 주던데 그곳은 10원을 더 주는가 보네  나야 박스 나올 곳이 많으니 그나마 요즘 만원이라도 벌지 지방에서는 정말 힘들거야..."
"요즘 만원을 벌려면 폐지 300kg를 더 모아야 돼 ...새벽녘까지 쉬지않고 일해야 채울까 말까 한걸..."
말씀을 하시면서도 쉬지않고 폐지를 차곡차곡 쌓아 묶고 있는 할머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습니다.
"폐지값이 30원이라 모두 그만 두었는데 할머니는 왜 계속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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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 뭐해 늘 하던 일이니 계속해야지 가격이 떨어졌다고 안하고 가격이 올랐다고 하면 생활이 되겠어 참고 하다보면 가격이 또 오르겠지....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폐지를 줍지 않으니 양이 점점 많아지니 값이 떨어진 만큼 몸이 힘들어...."
폐지 묶는 것을 도와 주려고 하면 질색을 하시면서..
"옷 버려 놔둬.....내가 혼자 하는게 편해 ..."하시는 할머니
할머니가 이곳에서 오랜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부지런함이었고 그 속에는 아들을 키워야하는 절박함이었습니다.
한 시간여 폐지를 정리하는 동안에도 포장마차에는 손님이 오질 않았습니다. 포장마차 위에는 안주로 구입해 놓은 닭똥집과 꼼장어 닭발이 손님을 기다리며 꼬박 밤을 새우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게으름이 나서 오후 6시에 나와 새벽 6시에 들어가신다는 할머니....날마다 12시간의 노동의 댓가로는 너무나 초라한 벌이지만 그래도 쉬지않고 30년간 그 자리를 지킨 할머니의 고집과 끈기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할머니가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