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기러기 아빠의 후회

2008. 11. 27. 15:00세상 사는 이야기

참 요즘처럼 바쁘고 힘든 날도 없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지난 한 주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큰 일이 아들이 강도 용의자로 몰린 일이었고 어머니 돌아가신지 1주기와 겹쳐 힘들었던 한 주 였었습니다.
그동안 할 일을 미뤄둔 터에 한꺼번에 밀린 일을 하느라 정신없었는데 이틀 전에 친구의 부탁으로 알프스 스키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부동산을 하는 친구의 부탁으로 물건을 보고 사진을 찍으러 갔다 오던 길에 버스를 기다리던 낯익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예전에 근무하던 부동산에서 만났던 손님이었는데 이곳에서 상당한 토지를 갖고 있던 재력가였습니다.
처음 그 분의 집에 초대되어 가보고는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러시아산 통나무로 직접 지은 집은 외형과 내부가 외국 사진에 본 듯 특이하고 특유의 나무 향이 잘 어울린 멋진 집이었습니다. 그때 자주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서 집관리를 하지 못한다며 한쪽을 세를 놓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었는데 그 뒤로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들리는 소문에는 그 많던 땅과 집들을 하나 둘씩 팔아서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보내주며 서울과 지방을 오르내린다는 이야기만 들렸습니다.


다시 본 그 분은 그새 많이 야위었고 백발이 성성했습니다. 차에 올라 함께 시내로 나가며 나누는 이야기 중간중간 한숨을 길게 내쉬곤 했습니다.
그동안 외국에 가족을 보내놓고 20년을 기러기 아빠로 살아왔는데 그동안 그 많던 재산을 대부분 팔아서 가족을 위해 보냈다고 합니다.더군다나 몇년 전 아내와 아들이 시민권자가 되어 이제는 한국에 남든 떠나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합니다.
임대업을 하며 근근히 생활비를 보내주었는데 경기가 나빠지고 환율이 올라 어쩔 수 없이 건물을 팔아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올초에는 아들이 식당을 차린다고 해서 있는 돈 없는 돈 긁어 모아 보내주었더니 두 달도 채 안돼 못하겠다고 손을 떼 손실이 이만저만 아니라며 이제는 이곳에 남아있는 재산을 모두 처분해 어쩔 수 없이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가야되지 않겠냐며 웃더군요.
이제 남은 것을 팔아봐야 얼마되지 않는데 요즘 환율까지 폭등해 정말 걱정이라며 시내에 마지막 남은 건물마저 도시개발지역으로 묶이면서 2010년에 토지 보상이 들어간다며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자식이 뭔지....가족을 먼 이국으로 보내놓고 이제껏 내가 왜 이렇게 살았는지 몰라...."
"가족을 팽개치고 나혼자 이곳에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그곳에 가봐야 뾰족한 수도 없는데...."
"아드님이 결혼을 했으면 사모님을 나오라 하시면 되지 않나요..."
"아직 미혼이고 아내도 역시 그곳에 사는 게 편하다며 이곳에는 절대 안오겠다더군.."
"이번에 남은 집만 팔리면 나도 다시는 이곳에 올 일이 없을 것 같아...그 많던 재산을 곶감 빼먹듯이 다 털고 이제 빈손으로 떠날 생각을 하니 참 답답하긴 해........."
차에서 내리며 마지막 작별인듯 두 손을 꼬옥 잡으시던 기러기 아빠........
혼자 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한 60대 기러기 아빠의 뒷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고 쓸쓸해 보였습니다.

"차라리 한곳에서 오순도순 함께 살았다면 이렇게 힘들고 쓸쓸하지는 않았을 거야"
"가족은 함께 살 때 가장 행복한 거야...그런데 함께 살 때는 그것을 잘 모르지...."
차에서 내리고 난 후에도 한참동안 기러기 아빠의 목소리가 자꾸만 귀에 잉잉거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