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의류사업 아내 지금이 가장 힘들어

2008. 10. 20. 08:33세상 사는 이야기

아내가 의류업을 시작한지 15년째 접어 들었다. 아동복 대리점으로 시작해서 본사의 부도로 소매업으로 전환한 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뒤에는 건물이 팔려 아파트 상가로 이사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숙녀복으로 전환하였고 벌써 8년이 지났다.
그렇게 15년째 접어든 아내가 요즘 사업이 가장 힘들다고 하소연이다. 대리점의 부도로 졸지에 큰 손실을 입고 버스를 타고 남대문으로 물건을 하러 갔던 일 숙녀복으로 바꾸고 동대문과 남대문을 오가며 물건을 해오며 장사를 하는 동안 유치원 다니던 아들은 대학입시를 눈 앞에 두었고 작은 놈도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들이 어린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버텨왔고 가장 두려워했던 IMF를 넘어온 아내가 힘들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원인을 가늠할 수 없는 복합적인 불황 때문이라고 아내는 말한다.
일찍 의상실 디자이너 생활로 의류나 패션에 대해서는 늘 자신감이 있었고 고객관리와 적절한 코디로 단골 고객이 많았던 아내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불황이 가장 큰 원인이다. 동대문이나 남대문의 10년 단골매장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평소에 외상거래를 하던 곳도 현찰이 아니면 물건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서로 언제 문을 닫고 장사를 접을 지 모르는데 어떻게 외상거래를 할 수 있느냐며 양해를 구하는데는 별 도리가 없다고 한다.
원단 값이 오르고 물가가 오르는 만큼 옷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더 싸게 파는데도 장사는 더 안된다고 하소연하는 상인들....


아내의 상가에도 열 집에 절반이 문을 닫고 가게가 비어있다. 비싼 월세를 견디지 못하고 가게를 내놓았지만 '가게세줌'이라는 종이만 덩그라니 붙어있다.
인터넷 쇼핑몰의 활성화로 더욱 곤란을 겪던 지방 의류업자에게 경제적 불황까지 덮친 지금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고 말한다.
5년전 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 동대문 남대문으로 가던 버스가 한 번으로 줄더니 급기야 25인승 버스로 줄어들었다. 몇 번 25인승 버스를 타고 다니던 아내는 버스가 좁아 무릎이 아파해서 내가 직접 아내의 기사 노릇을 하게 되었다.
동대문 의류 쇼핑몰 앞에서 물건을 지키는 아저씨는 요즘 죽을 맛이라고 한다.
물건을 맡아주면 부수입이 짭짤했는데 물건을 하러 오는 사람이 반으로 줄은데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으니 부수입은 언감생심 생각지도 못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이 자리마저 보전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지방이나 서울이나 영세업자들이 돈을 빌리기도 쉽지 않아 문을 닫는 집이 속출해도 외형적으로 세상은 참 평온하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했다. 동대문에 사람은 붐벼도 장사가 안된다는 상인들의 하소연과 매출이 급감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아내...지난 주에는 오랜 거래처였던 도매점이 또 문을 닫았다. 그 집은 남대문에서 장사를 시작해 동대문에도 두 개의 매장을 갖고 있었는데 이제 동대문의 두 곳을 접고 남대문 시장에만 하나의 매장을 갖고 있는데 조만간 그마저도 접는다고 한다.
정부의 중소기업 활성화나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접은 지 오래되었다는 상인들 그리고 가장 현명한 방법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아내를 볼 때 마다 마음이 아프다.
아직 내집을 장만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잘 자라주었고 가족이 건강하면 된다며 자위하는 아내의 모습을 볼 때 마다 못난 가장 때문이라는 자괴감이 들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