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고마운 용문산 관광안내소 아저씨

2008. 10. 18. 09:21세상 사는 이야기

어제는 아침 일찍 서울 양재동 푸드 엑스포를 참관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미시령으로 바로 넘어야 했지만 지인의 선물을 사기 위해 양양의 서광농협에서 인진쑥을 사서 한계령을 넘게 되었습니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한계령은 그야말로 단풍이 절정을 이루었는데 차를 타고 한계령을 넘으며 일행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불쑥불쑥 튀어나온 기암괴석 사이로 붉게 물든 한계령의 단풍은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시간만 허락했다면 내려서 단풍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약속 시간 때문에 차안에서만 구경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한 시쯤에 도착한 푸드 엑스포장에는 학생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식품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던 푸드 엑스포는 보는 즐거움과 맛의 즐거움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엑스포를 관람하고 사장님은 손님과 만난다며 서울에 남고 나와 형님과 동생은 다시 되돌아 오는 길에 용문사를 관광하기로 했습니다. 아침에 못보았던 단풍 구경을 용문사에서 즐기고 가자는데 일행은 선뜻 동의했습니다.
나는 예전에 아이들과 용문사에 간 적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 둘은 초행이라 꽤나 설레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빠져 나오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해 다섯 시가 다된 시간에 도착을 했습니다.
부랴부랴 차를 주차하고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용문사로 향했습니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10월 중순이었지만 이곳은 한계령처럼 단풍이 절정을 이루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노란 은행나무를 보니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산행을 마치고 내려온 사람들은 오순도순 식당에 모여 식사와 동동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예정된 산행이 아니라서 구두를 신고 오르는 형님은 발뒷꿈치가 까져 절룩 거리며 올라가는데 아래쪽은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는데 위쪽으로 올라갈 수록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습니다.


땀을 흘리며 힘들게 올라가 은행나무를 보는 순간 동생과 형님은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된 은행나무의 크기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는데 나이가 약1,100~1,500여 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62여 미터, 밑둥 둘레가 14미터로 동양에서는 가장 큰 은행나무를 보며 목이 아파 쳐다볼 수 없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 은행나무는 모 방송에서 각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한 결과 약 1조6,884억 원의 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을 정도로 대단한 설명을 하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아래와 달리 아직은 파란색인 은행나무는 9년전에 보았을 때 보다 더 생기있고 은행잎도 많아보였습니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내려오는 길에 어디선가 매미소리가 들렸습니다. 막내동생이 갑자기 매미가 우는곳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이 녀석이 제정신이 아니네 지금이 10월 중순인데 아직도 철없이 울고있어?"
오랫만에 느껴본 숲의 정취에 흠뻑 취해서 다시 내려와 차에 오르려는 순간이었습니다.
동생이 갑자기 얼굴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습니다.
"형님들, 차키가 없어졌어요..."
처음에는 장난으로 생각하다 낯빛이 변한 동생의 모습에 형님과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어디다 두었었는데?"
"분명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는데 없어요..."
보조키도 없었고 사장님이 애지중지하는 키를 잃어버린 막내는 차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다 다시 산행을 갔던 곳으로 뛰어가고 나는 용문산 관광안내소로 달려갔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모두 퇴근하고 관리인인듯한 아저씨 한 사람이 있었는데 자초지종을 하고 방송을 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관리소 아저씨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아가씨가 퇴근해서 방송할 수 없다며 방송기기를 다룰 수 있으면 해주겠는데 그렇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냐고 재차 부탁하자 잠시 망설이던 아저씨는 한번 시도해보겠다며 이곳저곳을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원을 켜고 한참을 헤매다 마침내 방송을 하기 시작했고  늦은 시각 용문산에 차키를 분실했으니 습득하신 분은 관리실로 연락바란다는 안내방송이 연이어 골짜기에 울려 퍼졌습니다.꼼꼼하게 방송할 문구를 메모지에 적어서 방송하는 아저씨의 친절함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방송이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도 어둑어둑해진 곳으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그 사이 땀에 흠쩍 젖은 동생은 다시 은행나무가 있는 곳까지 뛰어갔고 찬찬히 내려온 곳을 되짚어 생각하며 올라가던 나는 동생이 매미와 실갱이를 벌이던 그곳 바위틈에서 차키를 발견했습니다.
그때 형님은 관리인 아저씨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도와주려고 준비중이었고 어두워서 랜턴이 필요하다는 동생의 말에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올라오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땀에 흠뻑 젖은 채 헐떡이며 내려오는 막내를 보는 나 역시도 온몸이 땀에 젖었고 형님과 관리소 아저씨도 안도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다른 일을 제쳐두고 관광객의 안타까운 일에 앞장서서 나선 관리소 아저씨가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이곳에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이 안타깝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최선을 다해 도와주신 관리소 아저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고다시 안내소로 가보니 그새 밀렸던 일을 하기 위해 문을 닫고 어디론가 가고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20여분을 기다리며 아저씨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아저씨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밤이 늦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감사하다는 쪽지를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형님은 이곳에서 도를 닦는 매미를 나무라서 매미가 고생 좀 하라고 차키를 떨어트린 것이라며 농을 하자 막내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시각이 밤 10시 피곤했지만 친절했던 관광안내소 아저씨가 너무나 고마웠던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