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바로 쓰기) ~의 사용을 줄이자

2008. 10. 9. 08:36세상 사는 이야기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이 동요는 이원수님의 "고향의 봄"이다.그런데 그동안 무심결에 따라 불렀던 이 가사가 우리 말법으로 된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이것의 올바른 표현은 "내가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이라고 표기해야 옳다.
《우리문장 바로쓰기》(1992)와 《우리글 바로쓰기》(전3권, 1995)라는 저서를 통해 지식인들이 일반적으로 써 오던 어눌한 번역말투와 일본말투의 잔재를 걸러내고 우리말과 글을 다듬었던 우리말 연구가 이오덕 선생은 생전에 고향의 봄을 작사한 이원수 씨도 살아계실 때 이 노래말이 잘못되었다고 하셨지만 모두 부르는 노래를 고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생전에 이오덕 선생은 우리 말 중에 가장 오염이 심각한 것이 토씨 ~의 사용이라며 ~의를 아무곳에 붙이지 말것을 강조했었다.
사전에는 관형격 조사를 앞 체언에 붙어 그 말이 관형어가 되게 하여 뒤 체언을 꾸며주는 기능을 하게 하는 것이며 체언 앞에서 체언의 성질, 상태, 행동 등을 꾸며주는 성분이다.라고 간단하게 설명해 놓았는데 국어학자 최현배 씨는  (우리 말본)이라는 저서를 통해 우리 말에서  매김자리토 '의'를 흔히 줄이고 쓴다고 밝혔다.
그런데 자주 쓰이지 않던 관형격 조사 '의'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늘어나기 시작했고 지식인들이 일본글을 우리 말로 옮길 때 덮어놓고 일본말 の'를 직역하면서 생긴 잘못된 말법이 지금까지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집으로 간다." "이건 아버지 모자다" 이렇게 말하지 "우리의 집으로 간다" "이건 아버지의 모자이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일본 글자 "の'는 "노'라고만 소리내면 되고 그것이 한 문장에 아무리 거듭 나타나더라도 부드럽게 읽히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 말에서 '의'는 설사 한 번 쓴다고 해도 다시 또 그 다음에 거듭 나올 때 무척 마음에 걸리고 다른 말로 바꾸고 싶어진다.

*한국과의 결승에서의 판정의 선택(동아.88.9.27) - 한국과 치르는 결승전에서 선택할 판정
*나는 위대한 조상과 훌륭한 전통을 가졌기 때문에 나의 음악은 나의 음악이 아닙니다.(한겨레 88.10.27)- '나의'가 아닌 '내'라고 표현해야 옳다.
*서로의 소중함을 대화로 일깨운다.(중앙 89.5.27) -서로의를 서로로 고쳐야 옳다.
<출처: 우리글 바로쓰기>


*언어의 순화의 방향의 설정 - 언어 순화를 위해 방향 설정하기
*시민의 권리를 무시해서는 -시민이 지닌 권리를 무시해서는
*나의 합격을  기뻐해 주시오 -내가 합격한 것을 기뻐해 주시오
*평화의 파괴는 죄악이다 -평화를 파괴하는 것은 죄악이다
*납세의 의무를 지니고 있다. -납세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김소월의 작품에는 -이것은 김소월이 '가지고 있는 작품인지 쓴 작품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김소월이 지은 작품에는'이라고 다듬는 것이 옳다.
*숲 속의 바람은 쌀쌀했다. 할머니의 부음 소리가 멀어지고 얇은 스웨터 차림의 솔이는 몸을 떨었다.-숲 속에서 부는 바람은 쌀쌀했다.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는 멀어지고 솔이는 얇은 스웨터를 입은 탓에 몸을 떨었다.<출처: 이렇게 해야 바로 쓴다>

우리 말을 살아 움직이는 삶의 말로 만들어 놓았던 토씨 '의'가 이제는 아무데나 마구 붙게 되어 겨레말이 처참하게 변질되고 있다고 개탄했던 이오덕 선생의 말처럼 되도록 '의'를 넣지 않거나 '의'대신 다른 조사를 혹은 '의'를 빼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습관을 갖도록 해야한다. 

국어교육에서 모국어에 대한 교육이 영어보다 더 우선 되어야 한다. 그런데 당연시 되야 하는 이런 생각이 공감을 얻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세상에 살고 있다.
논술을 배워야 우리 말을 제대로 쓸 줄 안다는 자조섞인 말을 듣기도 한다.
아름다운 우리 말을 아끼고 바로 쓰는 것 한글날을 맞아 한 번 되새겨볼 대목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