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에 갇혀 자라는 호박 보셨나요?

2008. 9. 19. 08:47사진 속 세상풍경

아버지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셔서 춘천의 한림대 병원에 들렀다.
종합검사를 받고 주무시는 틈을 타서 춘천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곳저곳 돌다 춘천역 인근의 옛 미군기지를 돌아갈 때 였다.길게 이어진 담벼락 위로 철조망이 처있고 그 위로 호박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호박이 대부분 철조망에 갇혀서 자라고 있었다.
누가 일부러 해놓은 것도 아닐텐데 참 묘한 풍경이었다.


         떨어진 호박이 철조망에 그대로 놓여있고 그 위로 잘 익은 호박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더 이상 자랄 기력이 없는지 잎은 모두 축 늘어져 있고 그 사이로 호박이 매달려 있다. 저무는 푸른 가을 햇살과 철조망과 호박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풍경이었다


아직도 푸른 호박잎 아래 덩그라니 놓여있는 호박......미군들이 떠난 기지를 호박이 지키고 섰다.


예전에 어머니가 해주신 호박죽.....지금은 어디에서도 그 맛을 느낄 수 없는 아쉬움을 눈으로 맛을 본다.


조만간 미군기지가 헐리게 되면 이러한 풍경도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다. 보름달처럼 둥그런 저 호박의 정겨움을.....


유일하게 철조망 밖으로 매달린 박 하나.....저 큰 호박을 매달고 있는 호박줄기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바람이라도 불면 금새 툭하고 떨어질 듯 힘겨워 보인다.
담벼락과 철조망 그리고 푸른하늘 아래 철조망에 갇힌 호박의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괜스레 애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