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를 이용한 친구와 그 동창을 용서한 친구들

2008. 6. 23. 16:59세상 사는 이야기

요즘 동창생으로 부터  안부전화를 자주 받는다. 그동안 사는데 바뻐서 뒤돌아보지 않고 살다 몇해 전부터 동창회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동창회 나가서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서 지나간 추억도 이야기 하고 살아온 이야기도 나누곤 했는데....
어느 날 동창생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물론 안부전화라는 말로 시작된 말끝에 부담스런 부탁을 해오는 것이 아닌가. 여차여차한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돈 이백만원만 빌려 달라는 것이었다. 내 생활이 여유가 있으면 속는 셈 치고 주고 싶지만 신규사업을 한다고 아내 몰래 투자를 했다가 낭패를 본 지금 사정으로는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처지여서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그런데 몇 달 후  동창회에 나가서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들었다. 그 동창으로 부터 전화를 받은 친구들이 너무나 많았고 동창의 사정 이야기를 듣고는 돈을 송금해준 친구들도 몇몇 있었다. 어머니가 갑자기 입원해야 하는데 일주일만 빌려달라고해  백만원을 빌려 준 친구.....카센터에 새로운 기계를 들여놔야 하는데 기계대금이 부족하다고 해 200만원 빌려 주었다 못받은 친구.....또 한 친구는 갑자기 접촉사고를 냈는데 자신이 무면허라 당장 합의를 보지 않으면 구속된다며 100만원을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준 친구도 있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직접 전화를 건 친구들은 그래도 빌려줄 만한 친구들에게 한 것이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에게는 이메일로 보냈다고 한다. 그것도 정성들여 한 사람 한 사람 내용이 다르게 보냈다고 한다.
아주 치밀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친구들로 부터 걷어간 돈이 천만원을 넘는다고 했다.
내가 나가기 전 부터 동창은 모임에 잘 나왔고 동창들로 부터 신임도 얻었다고 한다. 또 사업도 아주 잘돼서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누구하나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집으로 친구를 초대한 적도 없고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도 없었다고 한다.
다만 동창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 믿고 만나며 동창회를 이어왔는데......
동창의 비행이 친구들 사이에 퍼지면서  그 친구에 대한 이력이 궁금해진 동창이 그 녀석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하는 동창은 틈나는 대로 들은 이야기와 고향에서 얻은 소식으로 수소문 끝에 친구의 행적을 찾았다고 한다.
그가 머물던 곳은 서울의 외곽이었는데 슈퍼아줌마 말로는 이곳에서 2년동안 살던 친구는 이곳에서 사업을 한 적도 없었고 카센터에 취직했엇는데 그곳에도 오래 있지 못했다고 한다.
업무시간에 술을 마시고 손버릇도 고약해서 가는 곳 마다 쫓겨나 그곳에서 떠난 지가 오래되었다고 한다.
가족이 있다고는 했지만 늘 혼자서 생활하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를 못했다고 했다.
그런 녀석이 동창회에는 반듯하게 차려입고 나와서 거짓말로 사장 행세를 했다는 것이 기가 찼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동창들을 이용하기 위해 처음부터 일부러 꾸민 행동이었다
6개월간 동창회에 나오면서 동창으로 부터 돈을 걷어서 감쪽 같이 사라진 친구 ......동창회에 모인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 친구를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토론을 벌였는데....
결과는 그 친구를 용서해주자는 것이었다.....그 친구를 찾아봐야 그 돈을 지금껏 갖고 있지 않을 것이고 구속시켜봐야 마음 편할 친구들이 없을 것이라는 것에 의견을 통일했다.
물론 돈을 꿔준 당사자들이 흔쾌히 수락해서 잠적한 동창생은 사기혐의로 고소 당하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지금쯤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행적이 묘연한 친구.....
그 친구가 언젠가 꼭 성공해서 다시 동창회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며 친구들은 진심으로 기원을 했다.
동창을 이용한 친구와 그 친구를 용서한 동창들......
이것이 모두 동창이라서 생긴 일이고 동창이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앞으로 동창을 이용한 이런 불미스런 일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