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어머니 그리고 술빵

2008. 6. 18. 21:34세상 사는 이야기

아내와 함께 서울을 가는 길이다. 주말에는 되도록 서울 가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야했다. 예상대로 황금연휴를 즐기던 차량들로 거북이 걸음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자동차 체증이다. 내 차가 스틱이라서 가다서다를 반복하다 보면 다리가 아프고 시큰거린다. 날씨는 푹푹찌고 그렇다고 에어콘 틀려고 하면 아내가 기름값도 비싼데 참으라고 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2시간만에 홍천을 지나는 길이었을 때 아내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차를 세우라 한다.
오래 가야하니 옥수수를 사서 먹으며 가자는 것이었다. 잠시 차에서 내려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데
술빵이 눈에 띄었다. 유난히 노랗고 강남콩이 두서너개 박힌 술빵. 얼른 달려가 아내에게 술빵을 하나 사라고 했다.
어릴 적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술빵을 생각하니 갑자기 입안에 침이 고이고 어릴 적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1960대 말에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한 어머니는 보리밥을 싫어하는 사형제를 위해 자주 간식거리를 만들어 주셨는데 말이 간식이지 주식이나 다름 없던 음식들이었다.
옥수수 범벅과 감자범벅  그리고 고구마 범벅 또 보리개떡과 술빵.....그 중에 가장 맛나게 먹던 것이 술빵이었는데 사형제 중에 누군가 술빵이 먹고 싶다고 하면 어머니는 늘 주전자를 주시며 막걸리를 받아오라 하셨다.
동네에 막걸리를 파는 곳은 1km 남짓 거리에 있었는데 술빵 먹을 생각에 그곳이 먼곳인지도 모르고 불이나게 뛰어가 사오곤 하였다.
밀가루에 막걸리를 섞어 강남콩과 감미를 넣어 만드는 어머니표 술빵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이었다.
가끔은 집에서 낳은 달걀을 넣어서 만들기도 하셨는데 그때의 고소함이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사형제가 모두 삼년 터울인데 그중에 나는 둘째였다. 하루는 국민학교 1학년이었던 셋째가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 어머니께 떼를 썼다고 했다. 배가 고프니 술빵을 만들어 달라고 징징거리자 집뒤의 감자밭을 매시던 어머니는 셋째에게 막걸리를 사오라 시키셨다.
동생은 술빵 생각에 주전자를 들고 가게를 향해 떠났는데 한 시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신
어머니는 급히 가게로 달려가다보니 자두나무 아래 동생이 누워 잠을 자고 있더란다.
뚜껑 열린 주전자는 데굴데굴 굴러 막걸리는 모두 쏟아진 채 ........
동생은 막걸리를 사오다 날은 덮고 목이 말라 막걸리를 조금 마셨다고 했다.빵을 만드는 재료니까 먹어도 괜찮겠지 하며 벌컥벌컥 마셨는데 집으로 가다보니 자꾸 어질어질하고 졸려서 그냥 나무 아래에서 쉬었다 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술에 취해 잠이 든 동생을 업고 와 집에 누이고 다시 막걸리를 사오신 어머니는 셋째를 위해 술빵을 만드셨다.
저녁무렵 솥뚜껑을 열자 하얀 김과 함께 눈에 보이는 노란 술빵. 유독 맛있게 먹는 셋째는 막걸리가 맛이 없는데 목은 시원했다며 너스레를 떨었었다.
지금도 명절 때면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술빵이야기를 하는데 음식 솜씨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시던 어머니는 지난해 먼나라로 긴 여행을 떠나셨다.

차안에서 아내는 옥수수를 먹고 나는 술빵을 먹는데 예전에 어머니가 해주시던 술빵 맛이 아니다.
모양은 그 술빵 그대로인데 스폰지처럼 질기고 푸석했다.아마도 어머니 손맛이 들어있지 않은 탓인가보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리운 어머니 ....그리고 모양은 똑같아도 어머니 사랑이 담겨 있지 않은 술빵.......
그래도 스폰지같은 술빵을 꼭꼭 씹어 먹었다....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질 때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