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업고 찜질방에 오는 여자

2008. 6. 17. 01:23세상 사는 이야기

지난 주 토요일 동문회 체육대회 때문에 고향에 다녀왔다.
오전 10시 부터 시작된 체육대회는 5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고 술도 거나하게 취했다.
갈 길이 먼 친구들과 바쁜 친구들은 먼저 헤어지고 남은 친구들과 강변에서 바베큐 파티를 하고 2차로 여자 동창이 운영하는 노래방에서 여흥을 즐기다 남은 친구들과 찜질방에 가게 되었다.
찜질방은 토요일이라 사람들로 가득찼다. 꽤 넓은 찜질방이었는데 마음놓고 누을만한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샤워를 하고 빈자리를 찾아 누웠는데 그새 골아 떨어진 친구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베개도 없는 곳에서 잠을 자려니 코를 더 심하게 고는 것 같았다.
술을 먹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코를 고는데 마치 감기 걸린 황소개구리 우는 듯 정말 심하게 골아댔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서 다른 구석으로 갔는데 그곳에 한 여자가 아이를 앉고 젖을 먹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술도 쥐하고 잠도 와서 별 생각없이 누워 잠이 들었는데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아이의 울음 소리에 잠을 깼다.
아이가 자다가 오줌을 누었는지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돌이 지난 듯 했는데 기저귀를 차고 자다가 제 오줌에 놀라 울음을 터트린 것 같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찜질방에 오지 않았는지 아기 엄마 혼자 아이 기저귀를 갈아주고는 다시 젖을 물렸다.
그렇게 아침까지 서너번 아이가 울었고 그때마다 나도 잠을 깨곤했다.
코를 고는 친구를 피해 구석으로 왔지만 아기의 울음 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뒤척이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9시쯤 눈을 떠보니 벌써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가고 아기 엄마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 밤 과음을 한탓에 목이 말라 1500원 짜리 식혜를 시키면서 매점의 아가씨에게 물어보았다.
"어젯밤에 아기 업고 오는 아기 엄마 이곳에 자주 옵니까?"
"아, 그 아기 엄마요...예 우리집 단골 손님이예요"
"아기가 어린데 이런 곳에 오면 아기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은데....늘 혼자 오나요?"
그러자 매점 아가씨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 아가 건강에 나쁜지는 모르겠는데 아빠가 훈련 들어갈 때면 늘 이곳 찜질방에 와서 자고 갑니다."
"집에서 혼자 있기가 무섭대요, 그래서 이곳에서 잠을 자는데 어떤 날에는 아이와 함께 3일밤을 자고 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손님들이 아기가 울때 마다 신경질을 내고 소리를 질러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면서 꿋꿋하게(?) 버티더군요"
"이곳에 단골 손님들은 저 아기 엄마를 다 알아요,"
친정은 너무 먼 곳에 있으니 한 번 오갈 때 마다 왕복 차비와 경비를 생각하면 도저히 갈 수가 없고 그렇다고 혼자 단독 주택에 있자니 겁이 나  친구와 함께 몇 번 찜질방에서 지내다 보니 어느새 이곳이 편안해 졌다는 것이다.
신랑은 중사인데 군에서 툭하면 비상이다 훈련이다 집을 비우는 날이 많다보니 이제는 찜질방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했다.
이곳이 군부대가 많은 곳이라서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에는 찜질방에 손님이 많지 않아 주인 아저씨도 아기엄마의 사정을 이해하고 아이가 울고 보채는 것을 눈감아 준다고 했다.
지난 밤도 갑자기 비상 훈련 때문에 집을 비우게 된 아기 아빠 때문에 예고 없이 찜질방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지난밤 아기 울음 때문에 잠을 못자 불쾌했던 기분이 스르르 풀려버렸다.
공공장소에 아기가 울면 데리고 나가거나 애당초 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마음도 '오죽하면 이곳에 와서 아기와 함께 잠을 잘까 '하는 동정의 마음이 생기는 것이었다.
코골이나 아기 울음 소리나 잠못들기는 매한가지 인데 앞으로는 내가 솔선수범(?)해서 귀마개를 준비하고 다녀야 겠다고 생각했다.
귀마개가 있으면 친구의 코고는 소리나 아기의 울음소리 때문에 잠못드는 불편함은 없을 것이다.
아니면 찜질방에서 귀마개를 비치해서 잠을 푹 잘 수 있게 해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난 밤 나의 잠을 설치게 했던 그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