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중섭의 그림이 춘화라구?
2008. 4. 26. 18:05ㆍ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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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가수하면 박수근과 이중섭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그것은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맛을 가장 잘 살렸기 때문인데 박수근이 일상의 소재를 소박하게 그려냈다면 이중섭의 그림 속에는 유독 아이들이 많이 등장하고 그 아이들은 대부분 벌거벗고 있다. 그림 대부분이 벌거숭이라고 한때 춘화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었는데......
그의 삶은 일본인 아내 마사코와 태성이와 태현이와 함께 했던 너무나 짧았던 행복과 안타까운 이별에 대한 그리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전쟁으로 피난을 떠난 제주도에서 단란했던 기억이 이중섭에게는 가장 소중하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아내와 아이들을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보내고 난 후 괴롭고 그리운 마음을 그림으로 달래는 이중섭....그 절절함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고 특히 제주도에서 보냈던 즐거운 추억이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 서귀포 앞바다를 벌거벗고 뛰어노는 태현이와 태성이......이중섭에게서 평생 떠나지 않는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는듯 하다.
보고 싶은 내 아들 태현아!
잘 있었니?
오늘 엄마한테서 온 편지에는 요즘 태현이가 운동회 연습으로 새까맣게 그을려 깜둥이가 되어 가지고 온다고?
태현이의 건강한 모습을 그려 보며 아빠는 기쁜 마음으로 꽉 차 있다. 지든지 이기든지 상관업으니 용감하게 싸워라.
아빠는 오늘도 태현이와 태성이가 물고기와 게하고 놀고 잇는 그림을 그렸단다.
엄마가 몸이 아파 누워 있으니 태성이와 장난을 치거나 싸우면 안돼요.학교가 끝나거든 늦도록 장난치지 말고 곧 돌아와야 한다.
아빠는 날마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단다.
태현이 태성이가 보고 싶어서 하루빨리 일을 마치고 곧 갈 생각이란다.
이번에 아빠가 가면 자전거를 꼭 태현이에게 한 대 태성이에게 한 대씩 사 줄 참이니 그 때까지 사이좋게 놀고 기다려주기 바란다.
아빠가.......<이중섭이 일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
<다섯 어린이>중 일부
<꽃과 어린이>
<봄의 어린이>
<네 어린이와 비둘기>
가족에 대한 소중한 기억과 그리움이 남아있는 것도 바다이고 또 가족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바다라는 사실에 이중섭은 늘 고통스러웠는지 모른다.
제주도에서의 발가벗고 아이들과 게를 잡으며 뛰어놀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이중섭은 그때의 모습을 그림 속에 담았다.이런 그의 작품이 한때 춘화라는 이유로 철거되는 황당한 사건으로 까지 이어지기도 했는데 1955년 1월 18일 부터 27일 까지 미도파 화랑에서 이중섭 작품적이 열렸을 때 종이가 없어 은박지에 그렸던 그림을 비롯해서 <소> <봄의 아이들>< 아이들과 끈><길 떠나는 가족 ><옛이야기등 마흔 다섯 점이 실렸는데 나체사진이 많아서 철거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천진무구한 동심을 춘화라고 보는 사람들 때문에 중섭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림 그릴 곳이 없어 은종이에 그린 그림들을 당국에서 음탕한 춘화로 봐 버린 것이라는 것이다.
여자 남자 어린아이 모두 벌거숭이 등장하기 때문이라니.........
가식을 싫어하는 천진 무구한 이중섭의 마음을 알리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났던 일이었지만 잘 무마되어 10일간 전시회를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1953년 가족과 함께 상봉했던 6일 후 그뒤 다시는 가족과 만나지 못한 이중섭 그는 40년 짧은 생을 사는 동안 너무나 사랑했던 가족과 그 가족을 늘 그리워하다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혼자 숨을 거둔다.지금도 이중섭의 그림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나도 어릴 적 저렇게 발가벗고 뛰어 다녔는데 그곳이 서귀포 앞바다가 아닌 강가였지만 부끄럼도 없이 그렇게 뛰어놀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의 삶은 일본인 아내 마사코와 태성이와 태현이와 함께 했던 너무나 짧았던 행복과 안타까운 이별에 대한 그리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전쟁으로 피난을 떠난 제주도에서 단란했던 기억이 이중섭에게는 가장 소중하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아내와 아이들을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보내고 난 후 괴롭고 그리운 마음을 그림으로 달래는 이중섭....그 절절함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고 특히 제주도에서 보냈던 즐거운 추억이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 서귀포 앞바다를 벌거벗고 뛰어노는 태현이와 태성이......이중섭에게서 평생 떠나지 않는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는듯 하다.
보고 싶은 내 아들 태현아!
잘 있었니?
오늘 엄마한테서 온 편지에는 요즘 태현이가 운동회 연습으로 새까맣게 그을려 깜둥이가 되어 가지고 온다고?
태현이의 건강한 모습을 그려 보며 아빠는 기쁜 마음으로 꽉 차 있다. 지든지 이기든지 상관업으니 용감하게 싸워라.
아빠는 오늘도 태현이와 태성이가 물고기와 게하고 놀고 잇는 그림을 그렸단다.
엄마가 몸이 아파 누워 있으니 태성이와 장난을 치거나 싸우면 안돼요.학교가 끝나거든 늦도록 장난치지 말고 곧 돌아와야 한다.
아빠는 날마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단다.
태현이 태성이가 보고 싶어서 하루빨리 일을 마치고 곧 갈 생각이란다.
이번에 아빠가 가면 자전거를 꼭 태현이에게 한 대 태성이에게 한 대씩 사 줄 참이니 그 때까지 사이좋게 놀고 기다려주기 바란다.
아빠가.......<이중섭이 일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
<다섯 어린이>중 일부
<꽃과 어린이>
<봄의 어린이>
<네 어린이와 비둘기>
가족에 대한 소중한 기억과 그리움이 남아있는 것도 바다이고 또 가족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바다라는 사실에 이중섭은 늘 고통스러웠는지 모른다.
제주도에서의 발가벗고 아이들과 게를 잡으며 뛰어놀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이중섭은 그때의 모습을 그림 속에 담았다.이런 그의 작품이 한때 춘화라는 이유로 철거되는 황당한 사건으로 까지 이어지기도 했는데 1955년 1월 18일 부터 27일 까지 미도파 화랑에서 이중섭 작품적이 열렸을 때 종이가 없어 은박지에 그렸던 그림을 비롯해서 <소> <봄의 아이들>< 아이들과 끈><길 떠나는 가족 ><옛이야기등 마흔 다섯 점이 실렸는데 나체사진이 많아서 철거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천진무구한 동심을 춘화라고 보는 사람들 때문에 중섭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림 그릴 곳이 없어 은종이에 그린 그림들을 당국에서 음탕한 춘화로 봐 버린 것이라는 것이다.
여자 남자 어린아이 모두 벌거숭이 등장하기 때문이라니.........
가식을 싫어하는 천진 무구한 이중섭의 마음을 알리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났던 일이었지만 잘 무마되어 10일간 전시회를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1953년 가족과 함께 상봉했던 6일 후 그뒤 다시는 가족과 만나지 못한 이중섭 그는 40년 짧은 생을 사는 동안 너무나 사랑했던 가족과 그 가족을 늘 그리워하다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혼자 숨을 거둔다.지금도 이중섭의 그림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나도 어릴 적 저렇게 발가벗고 뛰어 다녔는데 그곳이 서귀포 앞바다가 아닌 강가였지만 부끄럼도 없이 그렇게 뛰어놀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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