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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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참전용사 쥴 쟝루이 소령을 아시나요?
유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그동안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는 호국 보훈 행사가 다채롭게 열리곤 한다. 그중에 늘 내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다. 서울에서 홍천군 두촌을 지나 건니고개 조금 못미친 장남리에 있는 쥴 장루이 소령이다. 예전 4차선 도로가 나기 전에는 늘 쥴 장루이 동상을 지나곤 했는데 지금은 구도로를 타고 가야 쥴 장루이 소령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쥴 장루이 소령은 6,25 참전용사다. 쥴장루이 소령은 1917년 프랑스 앙리베시에서 출생, 육군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50년 11월 26일 프랑스 의무대장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해 남성리 전투 지평리 전투 1037고지 전투 등 5개 전투에 참여했으나 1951년..
2009.06.08 -
6.25에 둘러본 실향민 문화촌
오늘은 6.25가 발발한지 58년 되는 날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잊혀지는 것이 기억이지만 이날이 돌아오면 더욱더 가슴아픈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실향민들이다. 이제 실향민 1세대들은 돌아가시거나 연로해서 통일이 된다고 해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죽어서도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말 속에서 고향에 대한 짙은 그리움을 느낄 수 있었는데 마침 속초 시립박물관에서 실향민 문화행사를 한다고 해서 아침일찍 둘러보았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관광버스로 외지에서 오신 분들과 유치원생들이 체험행사를 둘러보고 있었다. 5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실향민 문화촌의 전경 북한의 초가집과 기와집 그리고오른쪽 끝에 누더기같은 청호동 실향민촌의 판자집이 보인다. 피난민 초기의 청호동 실향민 가옥의 모..
2008.06.25 -
6.25 경찰을 위한 위안부가 있었다?
올해 73세 되신 경비아저씨는 아내의 가게에서 경비를 본다.가끔 들를 때 마다 내가 겪지 못한 이야기를 해주시곤 하는데 이번에는 6.25 때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셨다.그때 아저씨는 열 다섯 살이었다고 한다. 원래 고향이 양양이었던 아저씨 가족은 해방과 더불어 서울로 가다 홍천군 서석면에 정착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목상을 해서 각지역을 돌아다니며 바쁘게 살았는데 예전에 여관을 하던 집에는 그곳의 경찰과 관공서 사람들이 머무르곤 했다고 한다. 그러던 1950년 6.25가 발발하고 남하하던 북한군과 내면 뱃재고개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때 국군의 식량을 조달했는데 국군의 후퇴와 함께 가족은 피난을 포기하고 산속으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그때 지리산 토벌군으로 갔다 돌아오지 않는 경찰의 아내도 있었..
2008.06.25 -
전쟁기념관에서 건진 따듯한 사진 한 장
인터넷으로 전쟁기념관을 둘러보다 눈에 띄는 정겨운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소녀의 표정보다는 터키병사의 표정이 너무나 인상적인 이 사진은 6·25전쟁 당시 UN군으로 참전했던 터키군을 기록한 사진전에 전시된 사진중 한 장인데 전쟁기념관에서 5월 31일, 6월 1일 양일간 개최되었다고 한다. 나무 아래서 찍은 사진 속 여덟살 남짓한 어린 소녀는 낯선 이국인에 대한 경계심 때문인지 아니면 전쟁고아인지 표정이 굳어 있는데 반하여 터키 병사의 표정은 마치 아빠처처럼 푸근해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다. 바로 뒷편에는 오빠인지 남동생인지 분간이 안되는 흰옷 입은 사내가 앉아 있는 모습도 보인다. 터키 총사령부에서 제공한 이번 사진은 참전 터키군의 현지 출발 모습부터 철수할 때까지 모습이 다양하게 담긴 귀중한 역사자료로..
2008.06.22 -
갈 수 없는 전쟁기념탑이 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이맘때면 늘 중학교 때 있었던 6.25 기념 행군이 생각난다. 지금으로 부터 33년전 일이다. 해마다 6월이면 6.25 행사가 있었는데 중학교 2학년이던 1975년에는 육탄용사전적비 까지 행군을 하는 것이 그 해의 행사였다.홍천지역은 유난히 부대가 많아 어려서부터 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은 우리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자랐고 10km행군도 당연한 줄 알던 시절이었다. 날은 무더웠지만 전교생이 비포장 도로를 걷고 있을 때 군용차량이 지나가면 자욱한 먼지를 그대로 뒤집어 쓰곤 했다. 아마도 지금 걸어서 그곳까지 가라면 절대 갈 수 없을 만큼 먼 거리였지만 어설프게 배운 군가를 부르며 전쟁기념탑 육탄용사 전적비까지 행군을 하였다. 사..
2008.06.22 -
6.25 참전용사 아버지 77세에 명예수당을 받은 사연.
아버지는 6.25참전 용사였다. 올해 팔순이 되신 아버지는 3년전 부터 참전용사 명예수당을 받게 되었는데 그 사연이 참 기막히다. 6.25가 발발할 때 스무 살이었던 아버지는 강원도 후방부대에 근무중이었는데 국군이 속수무책으로 밀리면서 퇴각하다 후방부대 저지선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팔과 가슴부근에 관통상을 당하여 통합병원으로 후송되었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인지 가슴을 비켜간 총알은 팔의 안쪽 흔히 알통이라는 곳 아래를 치고 나가 그곳에서 두달여간 치료를 받고 다시 귀대명령을 받았는데 소속부대가 어디로 이동했는지 알수 없었다고 한다. 일주일 뒤 새로운 곳으로 배치되었는데 그곳으로 가다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일반인들과 함께 끈에 묶여 어디론가 끌려가는데 사람들이 모두 북한으로 끌려가는 것이라고 ..
2008.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