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고향에 오지 못하는 이유

2010. 9. 19. 09:26세상 사는 이야기

추석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올해는 징검다리 연휴 때문에 여유있게 귀성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네요.
찾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그런데 고향이 있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 고향 친구들 중에는 체불된 임금을 받지 못해 귀성을 포기한 사람도 있고 사업에 실패해 뿔뿔히 흩어진 가족들 때문에 고향에 오지 못하는 친구도 있고 30년이 넘도록 고향에 오지 못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갑자기 야반도주한 친구 왜?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의 일입니다. 
전문대 입학을 앞둔 친구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바로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읍내 시장에서 포목점을 하며 계주를 하던 어머니가 야반도주를 하면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당시 억대의 돈을 떼어 먹고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으니 조그만 시골 마을은 물론이요 읍내까지 발칵 뒤짚혔습니다.

나중에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어머니도 불가항력이었다고 하더군요.
도망을 가던 그해 30명의 낙찰계원 중 먼저 곗돈을 탄 두 사람이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고 그 손실금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 친구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의 돈을 끓어 들이게 되었고 결국 손대지 말아야할 사채까지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돌려막기와 사채로 이어가다 보니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생각한 친구 어머니는 결국 철썩 같이 믿어준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될 야반도주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영문도 모른 채 급하게 고향을 떠난 친구는 가족에게 화가 미칠까 혼자 숨어살던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는데 남에게 해서는 안될 짓을 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 하다 결국 몸져 누웠고 고향을 떠난지 5년만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고향 떠난 지 30년 돌아가고 싶지만....

그렇게 시작된 타향살이가 벌써 30년이 지났지만 아직 고향에 돌아올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추석 때면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묘가 있는 고향 선산에 성묘를 가고 싶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늘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

사실 아버지 묘만이라도 몰래 이장을 할까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묘만 이장한다고 뭐가 달라지냐며 해마다 벌초를 해줄테니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있도록 놔두라는 고모님의 반대로 포기했다고 합니다.

유난히 박씨가 많았던 집성촌 마을이라 대부분 친인척이었던 마을이 어머니의 계가 깨지면서 풍비박산이 났으니 친구가 돌아올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래도 벌써 30년이 지난 일인데 이제 고향에 돌아오라는 친구들의 말에 차마 속내를 꺼내 놓지 못하는 친구....
연휴가 긴 이번 추석에는 더 외롭고 쓸쓸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