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깡에 머리 찝혀 보셨나요?

2009. 9. 3. 06:56사진 속 세상풍경

갑자기 다니던 단골 이발소가 문을 닫았다.
아주 폐업한 것은 아닌데 늘 문이 닫혀 있어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발소 아저씨가 팔이 부러져 당분간은 이발소를 운영하지 못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겠지만 한번 단골로 정한 곳을 바꾸기 쉽지 않다. 특히 머리의 경우는 이발소 마다 깍는 기술이 조금씩 달라 내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단골 이발소를 쉽게 바꾸지 못한다.
어디에서 머리를 깍아야 하나 고민하다 할 수 없이 다른 동네 이발소를 찾아 보기로 했다.
미장원은 싫고 옛날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동네 이발소를 찾아 이곳 저곳을 다니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다.
주변에 미장원이 두군데 있고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이용소 간판이 반가웠다.


문으로 들어서려고 하니 빨간 글씨의 이발과 파란 문발이 눈에 띄었다.
오후 시간이라 손님은 없고 주인과 아주머니가 TV를 보다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주인 아저씨는 60대 중반으로 예전에 다니던 이발사와 거의 비슷해 보였다.


머리를 깍으며 사장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장님은 이발 경력 40년이 넘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10년 넘게 이발을 하다 이곳에 온지 30년이 되었다고 한다.
한때는 호황을 누렸지만 미장원이 많이 생겨 나면서부터 하나 둘 폐업을 하고 지금은 얼마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평생 배운 것이 이건데 다른 것 할게 있나요?"
사장님의 자조섞인 목소리가 서글퍼 보였다.
하긴 아들과 이발소를 가자고 하면 질색을 한다.
"그곳은 나이든 사람들만 가는 곳이잖아요..."
언제부터 이발소가 나이든 사람들만 가는 곳으로 변한 건지 모를 일이다.


머리를 깍고 나서 아주머니가 얼굴 마사지와 면도를 해주었다.
숙련된 솜씨로 얼굴 마사지와 면도를 끝내고 나니 얼굴을 한꺼풀 벗겨낸 것처럼 참 시원했다.
그런데 한족 유리상자 안에 낯익은 물건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바로 머리깍는 이발기 바리깡( bariquant)이었다.
사장님 말로는 25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그동안 바리깡이 일본말인줄 알고 있었는데 일본어말이 아닌프랑스 말이라고 한다.
7080세대라면 누구나 바리깡에 대한 추억이 있을 듯하다.
나 역시도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동네이발관으로 가면 공포의 대상이 바로 바리깡이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손잡이가 나무로 된 바리깡으로 머리를 깍아 주곤했는데 그 분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윗마을에 있는 이발소까지 걸어가야 했다.
키가 작아서 이발소 의자에 나무토막을 올려놓고 앉히고 바리깡을 들이대면 저절로 얼굴이 찡그러 들곤 했고 그 기계가 지나가다 머리를 찝히면 눈물이 쏙 빠지곤 했다.
또 중학교 다닐 때 머리가 길다고 바리깡으로 귀밑을 밀던 체육선생님과 고등학교 때 교련선생님도 잊을 수가 없다.
아주 상습범이거나 괘씸한 녀석들은 아예 뒤에서 앞 이마까지 고속도로를 내기도 했었는데 머리 찝힌 것을 항의라도 하려는듯 머리를 빡빡 밀고 오기도 했었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면도기......당시에 이발 재료는 대부분 외국산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이 면도기는 독일제품인데 30년이 넘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사장님이 가장 애지중지하는 물건이라고 하는데 면도기를 들어보려고 하자 떨어트릴까 노심초사하는 것 같았다.


면도기의 연륜만큼이나 오래된 면도기 가는 소가죽....어릴 적에는 저곳에 면도기를 가는 소리만 들려도 오금이 저리곤 했다.


이것이 나중에 산 면도기들인데 예전에 쓰는 것 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이 면도기들은 면도기날을 교체할 수 있는 것인데 편리하기는 하지만 예전 것보다 낯설고 수명도 짧다고 한다.

이제는 하나 둘 사라지는 동네 이발소.......
머리를 깍으려고 의자에 앉을 때 마다 내 고향으로 가는 타임머신을 타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