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어머니 옥가락지에 숨은 사연

2009. 7. 7. 07:52세상 사는 이야기

벌써 어머니 돌아가신지 3년이 다되어 간다.
늘 농사철이면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뙤약볕에서 일하고 계시던 어머니 아마 이때쯤이면 감자를 한창 캐고 계셨을 것이다.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집와 시어머니께 고된 시집살이를 겪으면서 아들 4형제를 애지중지 키우셨던 어머니......어머니는 시집살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늘 말이 별로 없으셨다. 기분이 나쁜 일이 있어도 마음에 담아둘 뿐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별로 본 기억이 없다.아들만 있는 집이 그렇듯이 집안 일은 모두 어머니의 몫이었다. 겨울이면 땔나무하러 아버지와 아들 사형제가 인근 바람골로 향했고 어머니는 커다란 냄비 아래에 김치를 깔고 고추장 한 스푼 그리고 들기름을 두르고 그위에 보리밥을 얹은 도시락을 싸주시곤 했다. 땀을 흘리며 나무를 하고나서 불 위에 올려놓고 먹던 그 도시락 맛은 지금 생각해도 꿀맛이었다.
군사(?)가 많은 덕분에 해마다 마을에서 가장 먼저 낟가리를 빨리 쌓곤 했다.늘 농사일에 동원되는 것이 싫어서 학교에서 늦게 집으로 돌아간 날에는 아버지의 호된 꾸지람과 함께 종아리에서 불이나곤 했다.

그런날이면 안쓰러운 마음에 다음 날 아침 술빵을 해주시던 어머니......어머니가 시어머니에게 배운 기술 중에 하나는 음식맛이었다.음식점을 하실 정도로 요리솜씨가 좋았던 할머니는 며느리인 어머니에게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키셨는데 할머니의 입맛에 맞지 않는 날에는 종종 밥상을 뒤집어 엎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체험학습31
체험학습31 by Jinho.Jung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가진 것이라곤 땅 몇마지기가 전부인 가난한 곳에 시집와서 고된 시집살이에 순응하며 아들 사형제중 둘은 대학을 둘은 고등학교를 졸업시켰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그렇게 호되게 시집살이 시키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한동안 어머니는 말이 없으셨다.

세월이 흘러 아들 사형제가 모두 결혼을 했다. 모두 뿔뿔히 흩어져 살아 가장 가까운 내가 자주 어머니를 찾아 뵙고 농사일도 거들게 되었다. 결혼당시 읍내에서 가구점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워낙 없이 시작하다 보니 생활이 늘 궁색했다. 가게에 딸려있는 방 한 칸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며 늘 안쓰러워 하시며 늘 말없이 도와주시던 어머니.... 아내는 지금도 말하곤 한다...살면서 며느리에게 잔소리 한번 하지 않으셨다고.... 아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예전 할머니에게서 받았던 시집살이를 생각하면서 참으셨는지도 모른다.

늘 뒤에서 조용히 뒷바라지 해주시는 어머니 덕분에 아내는 평생 시집살이라는 말을 모르고 살았다. 대신 남편이 변변치 못해서 평생 남편살이를 하고 있다......
그런 어머니가 3년전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은 하셨지만 그리도 황망하게 돌아가실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못했다. 경황이 없는 가운데 장례가 진행되고 마지막 하관식을 할 때 마지막 까지 어머니와 함께 한 것은 틀니와 평소에 늘 품고 계셨던 묵주와 그리고 옥가락지였다. 그중 옥가락지는 아내가 어머니에게 선물한 것이었는데 그 속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푸른 빛이 도는 청옥은 사실은 여덟살 아들이 줏어온 것이었는데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어머니가 가게에 들리셨을 때 아내가 어머니께 드린 것이었다.
"00이가 어디에서 줏어온 것인데 참 예쁘죠?....그런데 젊은 여자가 차기에는 너무 두껍고 투박해서 그냥 서랍에 넣어둔 것인데 어머니 이것 한 번 끼워 보시겠어요?..."
아내의 말에
"나한테 맞겠나.....손마디가 굵어서......"
하시면서 슬그머니 손을 내어놓으시던 어머니.....
"어머니,딱 맞는데요....어머니 그냥 끼고 다니셔도 되겠네요....산 것이 아니라서 죄송하지만요....."
"아무려면 어떠냐 줏은 것이든 산 것이든 네가 내게 선물해 준것이니 고맙지......정말 나한테 딱 맞는구나..."
아내가 미안해 할까봐 연신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시며 웃으시던 어머니....
그렇게 어머니의 손가락에 끼워진 옥가락지는 돌아가실 때 까지 어머니가 애지중지 하셨고 돌아가신 후에야 손가락에서 빠져나와 틀니와 묵주와 함께 관위에 올려졌다.

명절 때 혹은 기념일 때 형제들이 선물을 해드렸지만 금반지며 목걸이며 그 많은 것 중에 유일하게 평생 몸에 지니고 다니셨던 옥가락지 하나.....
빼면 혹시라도 며느리가 미안해 할까 걱정이 되어 평생 끼고 계신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힘들지....네가 고생이 많다..."
"뭐 필요한 것 없냐?...
 하시던 어머니의 말이 생각난다는 아내...
지난주 고향에서 캐온 마늘과 감자를 보니 문득 또 어머니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