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실수로 불구가 될뻔한 아들 손가락

2009. 4. 8. 00:52사진 속 세상풍경

벌써 16년 전의 이야기다. 둘째 아들이 첫돌이 되기전 손에 큰 화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결혼 후 3년이 조금 넘었을 때였다. 가게가 딸린 단칸방에서 작은 공방을 운영하고 있을 때 였는데 내가 창고에 물건을 가지러 간 사이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고 한다. 아내는 아들이 방안에서 보행기를 타고 TV를 보고 있는 틈을 타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들이 밥솥에 손을 얹는 사고가 발생했다. 점심밥을 하려고 전기밥솥에 쌀을 올려놓고 잠시 가게로 나온 사이에 아이가 밥솥의 증기가 올라오는 곳을 손으로 막은 것이었다. 순식간에 비명소리가 들리고 아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아들을 앉고 가까운 병원으로 달려갔다. 밥솥에 손을 데었다고 하니 아들 손을 들여다 보았다. 아들의 손은 15분 사이에 손바닥 안에 물집이 생겨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의사는 가위로 부풀어오른 물집을 자른 후 손가락에 화상연고를 발라주고 난 후 아들 손을 그대로 붕대로 동여맸다. 그리고 이틀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의사선생님의 말씀이니 믿고 이틀 후에 아들 손에 감겨있던 붕대를 풀었다. 그런데 '아뿔사' 아이의 손이 모두 다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깜짝 놀라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니 화상이 깊어 아이의 손이 모두 붙어 버렸다며 큰 병원으로 가 보라고 했다.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춘천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달려갔다.그곳에서는 이틀동안 아이가 손을 오무리고 있어 모두 붙어 버렸는데 그 중에서도 새끼손가락과 약지손가락이 오무라진 채 완전히 달라붙어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것도 상황에 따라서는 여러번 할 수 있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수술 날짜를 잡으며 의사에게 물어보았다. 최초의 의사의 화상치료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를 .....그랬더니 결과적으로 잘못되었는데 처음 아이의 상처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속으로 의사는 모두 한통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가 갔던 병원으로 찾아갔다.의사는 자신은 최선을 다했노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집으로 돌아와 이곳저곳 전화를 해 알아본 결과 화상을 입었을 때 기초 치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손가락 사이사이에 거즈를 대거나 각각 분리해서 치료를 해야 했는데 이제 갓 돌 지난 어린 아이의 손을 약만 바르고 붕대로 감아놓아 일이 커진 것이었다.동네 사람들은 쫓아가 의사를 경찰서로 끌고 가라는 사람도 있었고 저런 돌팔이 의사는 동네에서 발을 못붙이게 해야 된다며 흥분하기도 했다. 나는 전화와 편지를 통해 의사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했고 법적 대응을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자 의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체의 치료비를 모두 지불하겠다고 했다.
그말만 철썩같이 믿고 1차 수술을 했다. 사타구니에서 살을 떼어 손가락에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의사는 손이 또 오무라 들것이기 때문에 곧 2차 수술을 해야할 것이라고 했다.1차 수술비는 동네 병원에 청구를 했고 병원에서는 순순히 치료비를 보내왔다.

                                <수술 후 1개월이 지났을 때의 모습 왼쪽 손이 수술 후의 모습이다.>

그리고 3개월 후 2차 수술을 받게 되었다. 사타구니에 새살이 돋았으니 손가락이 더 땡겨지기 전에 2차수술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다시 한림대 병원으로 가서 2차 수술을 시작했다. 전신마취를 하고 시작된 수술은 약 3시간 가량 진행되었고 수술 후 병원에서 2주가량 입원을 하였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아이가 퇴원하고 난 후 치료비를 청구하러 동네병원으로 가 보았더니 문이 닫혀 있었다. 주변 사람들 말로는 며칠 째 진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주일 전 폐원을 하고 이사를 갔다고 한다.워낙 병원 운영이 어려운데다 작은 시골동네라 금새 아들 일이 소문나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 후 또 한 차례의 수술을 하고 나니 1년이 다되어 갔다.동네 사람들은 추적해서 혼을 내놓아야 한다. 치료비와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고 했지만 아내와 나는 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너무나 막연했고 당장 다달이 나가는 임대료와 먹고 사는 일 때문에 더 이상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16년이 지난 지금도 손가락 사이사이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3차 수술을 무사히 잘 끝내 다행히 지금은 일상생활 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아이의 손을 볼 때 마다 아내와 나는 늘 마음이 아프다.아이의 손가락에 든 멍울이 가슴 한 켠에 늘 상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당시 아이가 수술 받기 위해 93년도에 만들었던 진료카드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하거나 사진을 들여다 볼 때면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 죄책감과 함께 도망간 의사가 생각나 불쑥불쑥 화가 치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