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나게 고마운 시골 음식점 아주머니

2009. 3. 18. 12:48세상 사는 이야기

아내와 함께 서울에 갈 때 마다 들리는 집이 있습니다. 속초에서 서울 가는 길목에 있는 음식점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신남에서 두촌가기 전 백두산 휴게소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시골막국수라는 집이 있습니다. 이 집의 주 메뉴는 막국수와 청국장 그리고 비지장입니다. 이집에 다닌 지도 3년이 넘었는데 그 이유는 아내보다는 내가 더 이 음식점을 좋아한다는 점 때문입니다.처음에는 비지장의 맛에 변해서 지금은 줄곳 청국장만 시켜 먹습니다. 왜냐하면 이집의 청국장이 내게는 약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평소 술을 좋아하는 나는 장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이른바 만성 과민성 대장증세가 있습니다.그래서 늘 약을 먹곤했는데 이집의 청국장을 먹고나면 몰라보게 장이 좋아졌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효과를 금새 느끼니 음식이 아닌 약이라고 할 수밖에요......


아내는 가끔 맨 풀밭이라며 반찬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맛에 관한한 불만이 없습니다. 아내가 먹고 난 후에도 나는 청국장 국물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비웁니다.
어제는 미시령에 난 산불 때문에 조금 늦게 음식점에 들렸습니다. 늘 미리 전화를 해놓고 가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이날 음식중에 가장 맛난 것은 바로 백김치였습니다. 짜지도 않고 맛이 제대로 박힌 백김치 때문에 아내는 청국장 보다 백김치를 즐겨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집에도 사갖고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더군요...아들에게 갖다주면 아주 잘 먹을 것 같다며.....
그런데 서울을 갖다 다음날 돌아오면 푹 쉴 것 같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새벽 5시무렵에 이곳을 지나는데 문을 열어달라고 할 수도 없고....그래서 아주머니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니 잠시 고민하던 아주머니는 산에 나가는 오빠에게 부탁을 해놓을테니 지날 때 전화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포기를 싸달라고 하고는 돈을 계산하려고 하는데 돈을 받지 않습니다. 늘 잊지 않고 들려주고 맛있게 드시니 고맙다며 그냥 서비스로 갖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만약에 시간이 맞지 않아 오빠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음식점 우측에 있는 냉장고 안에 검은 봉지로 넣어 둘테니 갖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가 동대문과 남대문을 거쳐 다시 내려오는데 팔당대교 올라가는 지점에 차량이 고장나 30분 정도 지체를 하게 되었습니다. 대형차량이 고장으로 외길 차로를 막고 있어 기다리다 결국 하남시로 돌아 팔당대교를 건넜습니다. 결국 홍천을 지나 두촌에 도착하니 6시가 다되어 갔습니다. 아주머니 오빠에게 전화를 하니 벌써 산으로 떠났다며 냉장고에 넣어둔 검은 봉지를 꺼내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둑어둑한 음식점 우측에 커다란 식당용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검은 봉지가 보였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검은 봉지를 열고 통에 담았습니다. 그냥 손으로 쭈욱 찢어 먹으니 맛이 정말 죽여줍니다. 백김치가 짜거나 싱거우면 손이 잘 가지 않는데 이것은 그냥 먹어도 괜찮을 정도로 간이 알맞게 배었습니다.


모든 음식을 직접 재배한 재료를 쓰거나 배추도 동네에 있는 배추로 김치를 담근다는 아주머니의 정성이 그대로 맛에 배여 있었습니다. 이제 곧 산나물이 나면 산에 다니는 오빠가 채취해온 고사리와 두릅도 맛볼 수 있습니다.
이집 청국장 가루도 내게 너무 잘 맞아 늘 아침마다 요구르트에 타먹곤 합니다. 시골의 손맛을 제대로 느껴보시려면 오가는 길에 한 번 들러보세요. 음식점은 시골집을 개조한 것이라 깔끔하지 않지만 맛은 만족하실 겁니다.
오늘은 시골 막국수 아주머니의 정성이 가득 담긴 백김치 때문에 행복한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