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아들에게 부탁했던 소 그림 다시 보니....

2009. 3. 14. 11:16세상 사는 이야기

해마다 아내는 아들에게 그림 한 장을 부탁하곤 한다. 지난 해에는 돼지해라 돼지를 부탁했었고 올해는 소의 해라서 소를 한 마리 부탁했었다고 한다. 도화지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타블렛으로 컴퓨터 모니터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는데 도화지에 그리는 그림에 익숙한 아이에게는 조금은 무리한 부탁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늘 작은 옷가게에서 억척 또순이처럼 생활하는 엄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없는 시간을 쪼개 그림을 그린 듯했다.그런데 건망증이 심한 아내는 그새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이 역시 컴퓨터에 그림을 저장해 놓고 그냥 기숙사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 그림을 처음보게 된 것은 엉뚱한 나였다.컴퓨터의 자료를 정리하다 낯선 소의 그림을 발견했는데 처음 본 소의 모습은 마치 저팔계를 닮아 보였다.
선글라스를 낀 소도 낯설었지만 돈을 물고 있는 소의 모습도 생소했다.
혼자 그림을 보고 아이의 폴더에 따로 저장해 놓고 그새 나도 잊어버렸다.


그런데 3월이 되어서야 아내가 아들과 통화를 하다가 컴퓨터에 그림을 저장해 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컴맹인 아내는 내게 아들이 그린 소 그림을 찾아 프린트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미 그 그림을 본 나는 그제서야 그 그림이 아내가 아들에게 부탁해서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낯설고 생소하게 느겨졌던 소의 모습이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서 엄마가 옷가게를 하니 패션 감각이 있는 소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선글라스와 셔츠를 입은 소를 그린 것이고 올 한해 돈을 많이 벌어 내박나라는 의미로 돈을 물고 있는 소의 모습을 그린 듯했다. 생각없이 그린 듯 했던 소의 모습을 다시 보니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을 하고 그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그림을 보자마자 매우 흡족해 했다. 왜냐하면 그림 속의 아들의 마음을 바로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아내는 바로 소의 그림을 코팅해 가게에 걸어놓았다. 지금 우리집에는 소가 세 마리다. 소띠 동갑내기인 아내와 나 그리고 아들이 그려준 저팔계 닮은 소......여러분도 이 그림을 보시고 올한해 행복하시고 대박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