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하는 동네 레코드 가게에 가보니

2008. 12. 25. 14:53세상 사는 이야기

요즘 어디를 가나 레코드 가게를 보기 쉽지 않다. 예전에 성탄절이면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정겨운 시절도 있었고 추운 겨울에 흘러나오는 노래에 잠시 마음이 따스한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정겨움을 느낄 수가 없다.
컴퓨터와 MP3와 불법 음반 다운로드가 성행하면서 길거리 음반시장은 물론이요 가게까지도 직격탄을 맞아 대부분 폐업을 하거나 전업을 했다.
내가 사는 이곳도 몇 해전만 해도 서너 개의 레코드 가게가 명맥을 유지했었지만 다 문을 닫았다. 그런데 오늘 시장에 나갔다 폐업중인 레코드 가게를 발견했다. 그런데 1년전 부터 점포정리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곳에 아직도 점포정리를 하고 있어 사연이 궁금해졌다. 레코드를 팔기 위해 상술로 점포정리를 붙여 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장님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아저씨가 테잎가게를 시작한 것은 1988년 올림픽이 시작되던 해였다고 한다. 그때는 리어카 장수로 시작해서 지금 이곳에 둥지를 틀었는데 그동안 먹고 사느라 저축도 못하고 빚만 몇천만원 졌다고 한다. 사장님 말로는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음반시장이 빠르게 변하고 MP3와 컴퓨터로 불법음반 다운로드가 성행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는데 점점 매상이 줄더니 임대료도 내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50이 넘은데다 당뇨와 고혈압과 그리고 우울증으로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어 버텨오다 2007년 말에 폐업하기고 결정하고 지금껏 남은 테이프를 처분하는데 아직 반도 처분을 못했다고 한다.
1년이 넘도록 가게를 처분하지 못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더니 요즘은 땡처리 하려고 해도 CD와 테이프를 가져가는 사람도 없고 아무리 싸게 팔려고 해도 사러 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폐업하려고 헐값에 파는데도 한 달에 7일은 손님이 없어 테이프 한 개도 팔지 못한 채 문을 닫는다고 한다. 


밖에 잔뜩 쌓아놓은 테이프들..... 옛날 추억의 노래부터 근래의 노래와 트로트등 없는 노래가 없었다. CD 한 장에 2천원 테잎은 한 개에 15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게 모두 정품인가요?" 하고 물었더니 "예, 모두 정품입니다...그전에는 짝퉁도 갖다 팔았었는데 지금은 모두 정품만 취급한다고 했다.


월 임대료 15만원에 관리비 8만원에 매일 점심값을 합치면 40여만원 정도 드는데 한달동안 테이프를 판 총매상으로도 임대료 내기도 힘들다고 한다.


빨리 접고 싶어도 마땅히 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이것들을 쓰레기처럼 버릴 수도 없어 화병에 우울증까지 걸렸다는 사장님 


한 평 반 남짓한 가게 안에는 테이프를 틀어놓은 오디오와 전화기 집기들이 어지럽게 쌓여있다. 마땅히 앉을 곳조차 없는 곳에서 사장님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얘기를 나누는 3~40분 동안에도 구경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추억의 트로트 가수들의 음반이 그대로 쌓여있다. 옛날에는 나이드신 분들이 많이 찾아오셨었는데 이제는 거의 오시지 않는다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소외된 곳을 누가 찾아오겠냐는 사장님의 자조섞인 말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하루빨리 사장님이 가게를 처분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야기를 나누며 조용필 노래와 7080 대학가요제와 차에서 듣고 싶은 트로트와 아이가 좋아하는 CD를 샀다. 얼마냐고 물으니 12000원만 달란다. 거기에 덤으로 라이브여행 테잎을 하나 더 얹어주었다.


이제는 하나 남은 동네 레코드 가게 그것도 폐업을 결심한지 1년이 넘었는데 폐업할 수 없는 동네 레코드 가게를 둘러보면서 마음 한 켠이 답답했다. 이제 곧 추억 속에 묻힐 동네 레코드 가게 .....오늘이 성탄절인데 거리에서 크리스 마스 케롤을 들을 수 없고 동네 레코드 점에서 조차 케롤송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서글프게 느껴졌고 요즘 불황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