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쟁이에게 외상값 받기를 포기한 이유는?

2008. 12. 19. 11:58세상 사는 이야기

세월 참 빠르다 벌써 몇 년이 흐른 이야기다. 불쑥 이 이야기가 떠 오른 것은 손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점쟁이 집 대문에 꽂혀 있는 대나무와 오색천 때문이다. 의류점을 하는 아내는 예전에 점쟁이에게 외상을 준 적이 있다. 당시 용하다며 그집에 드나들던 손님이 점쟁이를 소개시켜 주었는데 몇번 옷을 사면서 조금씩 깔아 놓은 외상값이 40만원을 넘었다.
하도 외상에 데어서 손님에게 외상거래를 잘 안하던 아내였지만 단골 손님의 얼굴을 봐서 할 수 없이 주다보니 액수가 커졌다고 한다. 더 황당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발을 뚝 끊어 버렸다는 것이었는데 아예 어디론가 이사를 가버렸다고 했다.
옛날 철둑길 옆의 허름한 단독주택에서 살던 점쟁이가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도저히 찾을 길이 없었다고 한다.
단골 손님에게도 알리지 않고 사라진 점쟁이 때문에 점쟁이를 소개시켜 준 단골손님과의 관계까지 서먹하게 만들었다며 돈의 액수를 떠나 무척이나 괘씸하다며 내게 그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점쟁이의 이름도 모르고 핸드폰 번호도 바뀌었는지 받지 않으니 아내에게 속편하게 그냥 잊어 버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어 버렸는데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점쟁이를 소개했던 단골 손님이 점쟁이 집을 알아 냈다며 약도를 가져도 주었다.

                                                                                                    <사진출처: 무속신문>

잊어버리려 했지만 너무나 괘씸하게 생각했던 아내는 내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추어 함께 가보자고 했다.
지난 번에는 북쪽 끝에서 점집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서쪽의 후미진 골목집에서 아무 표시도 없이 점집을 하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보니 문은 잠겨있고 창문 안에서 빨간 불빛이 흘러나왔다. 점집이 확실한 것 같은데 아무리 두드려도 사람의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집을 알았으니 외상값을 꼭 받아 오라고 했다.
다음 날 저녁 혼자 점쟁이 집을 방문했는데 역시 문을 열려있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 말로는 사람들도 오지 않고 주인도 보기 힘들다고 했고 빨간 불은 매일 저렇게 켜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점쟁이를 만난 것은 네번째 찾아갔을 때 였다. 마당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신발이 하나 놓여있었다. 불은 늘 그대로 정육점처럼 빨간불이 새어나왔다. "계세요, "하고 물으니 "누구요? 문 열렸으니 들어오시오" 한다.
문을 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 뻔 했다. 뒤에는 긴 칼이 놓여 있었고 벽면에는 부적처럼 알 수 없는 그림이 붙어 있었다.점쟁이는 머리에 흰띠를 두르고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어떻게 오셨오...." 하며 묻는 폼이 꼭 내가 점을 보러 온 손님으로 착각을 한 듯 했다.
그래서" 점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지난번 000에서 옷을 사면서 떨궈논 외상값을 받으러 왔습니다." 하니 갑자기 안색이 돌변했다.
"아니, 어떻게 알고 여기를 왔소, 누가 가르쳐 줍디까?...."하며 대뜸 역정을 냈다.
"내가 그것 떼어 먹을려고 이사를 온 것 같소? .....떼어 먹을 것 같으면 아주 이곳을 떴지 왜 이곳에 있겠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갑자기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점쟁이...
"떼어먹지 않을테니 가서 기다리라고 하세요....그래도 미안해서 옷가게 잘되라고 빌고 있었는데....에이...."
졸지에 말을 들으니 내가 잘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점쟁이의 표정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하고 싶은 말 다하다간 괜히 뒤에 있는 칼을 들고 뭔일을 저지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알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가게로 들려주시지요.. 다시 들리겠습니다" 하고는 집을 나서려는데 등 뒤에 대고 또 한 마디 한다.
"다음에 올때는 아저씨가 오지 마시고 아주머니를 보내세요...아저씨 하고는 더 이상 볼일이 없으니까...."
그 이야기를 들으니 칼은 들지 않았지만 등 뒤에서 비수를 찌른 듯이 서늘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니 깜짝 놀라며 '아니 그곳이 그렇게 무서워?' ....갖다 주기 전에는 찾아가면 안되겠네"
 "에이.....진작에 그냥 잊어버릴걸 ...며칠 사이 신경을 썼더니 머리만 아프네.."하며 방으로 들어가는 아내....
혼자 가만히 생각해보니 점쟁이가 미리 이런 상황을 알고 연출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준다는 소리는 안하면서 제풀에 나가떨어지도록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아내나 나나 악착같은 성격이 아니다. 경찰을 부르거나 멱살을 잡고 다그쳐 옷값을 받아내라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니다. 그날 이후로 점쟁이의 집으로 찾아가지 않았고 점쟁이도 아내의 가게에 오지 않았다.
아내는 마음 속으로 점쟁이가 복채라 생각하고 외상값 만큼 가족 건강과 사업이 번창하기를 빌어주었으리라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