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우골탑 아들은 모골탑?

2008. 12. 17. 10:35세상 사는 이야기

내가 대학을 졸업한지 벌써 22년이 지났다. 당시 국어교육과를 다닌 나는 한 학기 등록금이 40만원 조금 넘은 것으로 기억한다.
아들만 사형제인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형은 대학을 포기하고 둘째인 나는 첫 등록금만 대달라고 졸라 대학에 고교 졸업 후 2년만에 대학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농협에서 대출해준 돈으로 첫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라야 저녁무렵 식당에서 서빙하고 음식 배달하는 것이었는데 아르바이트 해서 저축을 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날마다 버스를 타고 가야하고 식사도 사먹어야 했는데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는 생활비 하기도 빠듯했고 책 한 권 마음대로 사 볼 수가 없었다. 결국 매번 등록금 때문에 아버지는 기르던 소를 팔거나 땅을 담보로 대출을 내주었다.
그러면서 늘 하시는 말씀이 열심히 해서 꼭 갚아라 말씀하셨다. 그런데 대학 4학년이 될 무렵 갑자기 순위고사가 생기면서 앞날이 불투명해졌고 결국 서울에 있는 유명한 학습지 회사에 취직을 하였다. 하지만 가르치는 것보다는 영업력을 우선시 하는 회사에 적응을 못하고 일반 회사에 취직을 하였다. 그때 아버지는 아들이 졸업하면 당연히 교사가 되는 줄 알고 있었고 전년도 선배들은 100%로 교사발령을 받았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교사발령을 받지 못한 것에 낙담하셨고 백방으로 알아보다 친구가 경기도 모 사립학교에 교감으로 있다는 것을 알고 부탁을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800만원의 돈을 기부하면 교사로 채용해주겠다고 했지만 그 돈을 마련하지 못해 혼자 애를 끓이셨다고 나중에 형님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함>

그 뒤 방과 후 특기적성 교사와 논술을 가르치며 학원을 운영했지만 사는게 늘 녹록치 않았는데 문득 대학생활을 돌아볼 때 마다 전형적인 우골탑 대학생이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와 영농 후계자였던 형의 소를 팔아 등록금을 댔고 그도 모자라 농협에서 대출까지 받았으니 참으로 기둥뿌리가 성한 것이 용했다. 물론 나중에 조금씩 빚을 가리긴 했지만 늘 죄스런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리고 22년 후 지금 아들이 대학입시를 목전에 두고 있다. 예고를 나와 예술대학 진학을 목표로 실기 준비를 하고 있는 아들을 보며 걱정이 앞선다. 그동안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에도 예고는 대학을 다니는 것만큼이나 돈이 많이 들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아내와 나는 뒷바라지에 열과 성의를 다했다. 대학 첫등록금은 아내가 적금을 부은 것으로 해결한다 치더라도 년 1000만원을 육박하는 등록금과 입학금 그리고 생활비를 생각하면 앞날이 막막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꿈꾸고 있다고 하지만 아르바이트 자리도 하늘에 별따기라고 한다. 서울시에서 모집한 아르바이트 경쟁률이 22;1을 육박하는 등 대학생들 역시 학업과 알바 사이에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한다.
작은 아들도 2년 후에는 대학생이 될 것이고 그러면 생활고는 더욱 가중될 것으로 여겨진다.맞벌이를 하면서도 뒷바라지 하기 쉽지 않은데 자신이 배우지 못한 한을 아이들에게 되물림 해주지 않겠다는 아내의 모정을 바라볼 때 마다 마음이 아프다.
내가 넉넉지 못해서 가족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본의 아니게 아들에게 모골탑의 굴레를 씌워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런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