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의 사원매춘에 관한 일화

2008. 7. 21. 16:21세상 사는 이야기

요즘 날이 참 덮다.
이런 날은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집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 재미도 피서의 한 방법인듯 싶다.
그동안 서가에 방치되었던 책들을 하나 둘 닦으면서 새록새록 책읽는 재미에 빠져있는데 오늘은 그중 까치글방에서 번역한 번 벌로와 보니 벌로 부부의 매춘의 역사"속에 이야기 한토막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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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도 매춘에 대해서 언급된 것처럼 유대교 경전에서도 매춘부는 대개는 필요악으로써 매춘을 용인한 듯 하다.
이 책에서는 이스라엘의 매춘의 역사에 대해 기술하면서 세 가지의 나누어 설명했는데 그중 첫번째가 신성매춘이고 그 다음이 사원매춘 그리고 세속매춘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그중 요시아의 치세이후, 신성매춘이 사라지고 두번째 종류인 사원매춘 , 즉 여성이 매춘으로 얻은 수입을 신전에 바치는 매춘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유다와 다말의 일화에 나오는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유다가 자신의 며느리를 사원창부라 착각하고 며느리를 범했다는 일화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창세기에 의하면 다말은 유다의 장남 에르의 아내였다. 에르가 살해되자 수흔(남편이 죽었을 때, 그 형제가 형수와 결혼하는 풍습)의 관습에 따라서 유다의 차남인 오난에게 시집가게 되었다. 그런데 오난은 다말과 결혼해야 하는 형제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신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유다는 다말이 화근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그녀를 그의 막내 아들인 세라와 결혼시키는 것을 거절했다. 따라서 그녀는 과부 차림으로 친정으로 돌아갔으나 아이도 없이 홀로 남겨졌기 때문에 남보기에도 떳떳하지 못했고 스스로도 불행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시댁의 자손을 단절시키지 않으려고 결심한 다람을 과부차림을 버리고 두꺼운 베일로 얼굴을 가린 매춘부로 변장하고  유다가 양털을 깍으러 가는 길목에 서 있엇다. 그곳을 지나가던 유다는 그녀를 발견하고 사원창부로 생각했다. 그녀가 마음에 든 유다는 그녀의 몸을 사려고 교섭을 벌였다. 다말은 이를 받아들였으나 공교롭게도 유다에게는 마침 갖고 있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다말은 그의 인장과 팔찌와 지팡이를 담보로 받았다.
그후 유다는 친구를 보내서 화대로 새끼양을 주고, 담보를 돌려받으려고 했으나 그 매춘부는 벌써 그 자리에 없었다. 유다는 그 여자에게 대금을 지불할 수 없음을 알자 세상의 비난을 몸시 두려워했다. 즉 사원창부를 사는 것은 상거래로 생각되었으나 그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불명예로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않았던 유다도 며느리가 임신하고 몸을 팔았다는 얘기를 듣고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곧 그녀에게 간음죄로 화형에 처하겠다는 엄명을 내렸다.
다말은 시댁에 찾아와서 유다에게 그의 인장과 팔찌,지팡이를 보이고 자신이 유다보다도 옳으며, 유다가 세째 아들을 자기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유대인에게 이러한 매춘이 어느정도 행해지고 있었는지는 자료상으로 분명하지 않고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가기 수세기 전에 시작되었는지 모르며 혹은 그들의 이웃인 가나안인으로 부터 받아들였지도 모른다.
그 기원이 어떻든 매춘부를 대동하는 것은 물론 매춘부에게 줄 돈을 갖고  주 여호와의 신전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곧 엄중한 금지령이 내려졌다.

이 책속에서는 신성매춘과 사원매춘이 사회의 필요악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지만 일반인과 제사장간에 엄격한 잣대를 갖고 매춘을 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세는 아버지가 딸에게 매춘을 시키는  일을 금하는 율법을 내렸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딸을 첩으로 파는 것을 허용하기도 한 것이나  일반일들은 매춘부와 결혼할 수도 있었고 딸들이 이직업을 선택해도 살해되는 일이 없었지만  제사장이나 그의 가족이 매춘부와 이혼여성과의 결혼은 철저하게 금지시켰다.
제사장의 딸이 매춘부가 되었을 때 화형에 처한 것으로 보아서는 역사속 유대인들은 매춘에 있어서 만큼은 일반인과 제사장간의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적용한 것 같다.
이런 기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듯하지만 지금이 옛날보다 도덕적인 기준이 많이 흐려지지 않았나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