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 찜질방에서 삶을 엿보다

2008. 7. 23. 08:03세상 사는 이야기

예기치 않게 급한 볼일이 생겨 3박 4일 집을 떠나게 되었다. 사흘간 머물 곳은 변함없이 찜질방이다.
찜질방 마니아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나는 찜질방을 좋아한다. 예전과 다르게 찜질방 시설이 좋아진 곳이 많아 한곳에서 논스톱으로 모든 업무를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컴퓨터로 확인해야할 일이 많고 또 식사와 시원한 맥주가 있는 곳.....스트레스를 받을 때 찜질방에서 땀을 쫘악 빼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잡담을 하는 소리. 아이들 뛰며 떠드는 소리,그중에 가장 못참는 것은 코고는 소리다.찜질방에 코골이 환자만 없다면 최고의 잠자리로 손색 없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인간의 오욕칠정이 모두 녹아있는 듯한 찜질방......그곳에서 삶의 희노애락을 엿듣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첫날 청주의 보석찜질방에서 대화를 나눈 사람은 올해 나이가 60인데 사업을 하다 부도를 맞고 재기를 위해 이곳저곳 다니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남들은 은퇴를 할 나아에 그동안 모아놓은 재산을 모두 잃고 재기를 위해 몸부림 치는데 어려운 점이 한 둘이 아니라고 했다. 이젠 체력이 받쳐주지를 않고 요즘 세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한다.
가장 힘든 점은 자금이 부족한 것인데 이곳저곳 투자처를 찾아보고 중기청이나 신용보증기금을 통해서도 알아봐도 담보가 없이는 너무나 힘들다고 했다.
이곳에 오게 된 것도 누군가 투자자를 소개시켜줘 오게되었는데 기술만 믿고 선뜻 투자하려는 사람이 없어 힘들것 같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찜질방 내에 있는 호프집으로 옮겨 시원한 맥주를 곁들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듯 친숙하게 느껴졌다.
12시쯤 수면실이 아닌 한적한 곳에서 잠을 청하는데 옆에서 아줌마 셋이 수다를 떨고 있다.
두 아줌마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는데 한 아줌마는 남자같은 괄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큰소리로 웃었다.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 아줌마의 용기(?)가 대단했다
두 아줌마는 고등학생을 둔 학부모인듯 입시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괄괄한 아줌마는 일찍 시집을 가서 한 아이는 군대를 가고 또 한 아이는 직장에 다니는 듯 했다.
단연 화제는 입시교육에 관한 불만이 주를 이뤘다.
이명박 정부의 갑작스런 영어정책 테솔과 수능 등급제 폐지로 자신의 아이들이 피해를 보게 생겼다며 언성을 높였다.그렇지 않아도 영어가 부족한데 갑자기 영어로 수업을 한다면 다른 과목에 까지 영향을 줘 더 성적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고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수능등급제 폐지가 그야말로 자폭하라는 폭탄과도 같다며 열을 냈다.
목소리 괄괄한 아줌마는 입시에는 관심없는 듯 벌써 코를 골았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찜질방 관리인이 좀 조용히 해달라며 제지하기 전까지 두 사람은 자녀의 입시교육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를 모두 다 풀어낸 듯 했다.
어쩌면 아줌마의 수다가 스트레스 해소에 좋겠구나 하며 늦은 잠을 청했다.

둘째날은 경주에서 잠을 청하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도대체 찜질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택시에게 물어보려해도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할수없이 근처의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며 찜질방이 있는 곳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늦은 시각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이 모른다고 고개를 젓는다.
궁여지책으로 114 전화로 찜질방을 안내받아 찾아간 곳은 아뿔사......너무나 오래되어 시설이 낙후된 찜질방이었다.그야말로 간이 찜질방이었는데 찜질방도 달랑 두 개 ...샤워실은 어릴 적 동네 목욕탕 같은 분위기였다.
어쩔 수 없이 짐을 풀고 샤워을 한 후 찜질방에 들어가보니 세 사람이 수건을 뒤집어 쓰고 있다.
팔뚝에는 용문신을 새긴 것이 꿈틀꿈틀 거리는데 모두 아는 사람인듯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들어왔다 그냥 나가기 멋적어 그냥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수건으로 나도 얼굴을 가렸다.
"야,너 수금을 제대로 못하는 이유가 뭐냐?...얘를 봐라 시간 날짜 어기지
않고 제때 꼬박꼬박 수금을 해오잖아"
"예, 형님,사정이 너무 딱하고 또 평소에 아는 사람이라서 모질게 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야, 임마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라고 했지?....우리가 자선 사업가냐 일일이 남의 사정 다 봐주게....아무튼 이번주 안에 모두 매듭을 지어 놔 ..그렇지 않으면 어찌 되는지 알지?"
"예,형님 ,죄송합니다. 꼭 매듭짓겠습니다."
가만히 듣고보니 아마도 일수를 하거나 아니면 술집을 돌며 관리비 명목으로 다달이 일정금액을 받는 듯 했다.
예전에도 밤늦게 찜질방에 들렀다 깍두기를 만난 경험이 있는데 또 깍두기들과 마주치다니......
땀도 제대로 빼지 못한 채 나와서 샤워를 하고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수면실이 꽉찼다.
하긴 5~6명이 잠을 청하니 마땅히 누울 공간이 없다.
할수없이 탈의실 있는 곳으로 나와 얇은 매트리스를 깔고 잠이 들었다.
곤하게 잠이 든 새벽녁 소곤거리는 말소리에 눈을 떴는데 탈의실 구석에서 누군가 통화를 하고 있다.
"어머니, 죄송해요 제가 급한 일이 있어 이번 주에도 못내려갈 것 같아요"
"이번 일이 끝나면 바로 내려가서 찾아뵐께요"
"00이 학원비와 급식비 그리고 생활비는 송금했으니 찾아쓰세요 어머니....."
구석에서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은 여의치 못한 사정 때문에 자식을 어머니에게 맡겨놓고 이곳에서 직장을 다니는 듯했다. 숙박비를 아끼려 달방을 얻지 않고 시설이 낙후된 저렴한 찜질방을 찾아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찜질방에서 잠을 청하는게로구나.....
가장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는 사내의 마음이 잔잔하게 내 안을 파고 들었다.
그날 아침 서울로 향하면서 앞으로는 찜질방도 미리미리 알아보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는 늘 가는 찜질방이 있어 여유있게 일을 볼 수가 있다.
대부분 만나는 사람들이 오래 거래했던 사람들이라 일사천리로 일을 마치고 새벽시장을 둘러보았다.
아내가 새로 시작할 사업에 대한 시장조사는 그리 쉽지 않았다. 좀더 많은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새벽 두 시에 모든 일을 마치고 동대문 의류상가 주변에 있는 24시 찜질방에 들어갔다.이곳은 아이들과 젊은 사람이 적은 곳이라 다른 찜질방에 비해 조용한 것이 좋다.
하지만 지난번 혼자 샤워하다 깍두기를 만나 움찔했던 곳이다.....옷을 벗고 샤워만 잽싸게 하고 다시 2층으로 올라왔다.
수면실에 들어가니 사람들로 꽉 차있다. 전국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라 늦게 오면 수면실에서 잠을 청하기 어렵다. 할수없이 영화상영관으로 들어갔다.군데군데 사람이 누워있다. 영화를 보는지 잠을 자는지 알 수가 없다.
이 새벽녘에 무슨 전쟁영화람.......;투덜거리며 맨 구석에서 담요를 덮고 잠이 들었다.
두 시간이 좀 넘었을까...요란한 코골이 소리에 잠을 깼다. 찜질방에서 가장 고통스런 기차화통 삶아먹은 사람이다. 작은 영화관이 쩌렁쩌렁 울린다. 거기에 술냄새가 진동을 한다. 잠에 취한 채 영화관에서 나와 무작정 수면실로 들어갔다.컴컴한데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구석자리에 비집고 누웠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더 잠을 잘 수가 없다.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잠꼬대하는 소리,방귀 뀌는 소리, 이 가는 소리 잠 안자고 도란도란 떠 드는 소리.....이곳에 올때는 늘 피곤해서 모르고 잠을 잤는데 오늘은 한 번 잠을 깨고 나니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는 것이 이렇게 괴로운 줄 몰랐다. 밤새 잠을 설쳤다.

숙면을 취할 수 없었던 3박 4일의 찜질방 체험은 피로누적이라는 후유증을 남겼다.
그렇지만 형편이 넉넉치 않은 사람들에게 찜질방은 분명 좋은 잠자리임에 틀림없다.
찜질방 마다 시설이 다르고 만나는 사람이 다르고 또 갖가지 사연이 공존하는 곳에서 내가 그 환경에 맞추어 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도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생각이다.
다만 한 가지 만약에 불이 나거나 안전상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탈출할까?......하는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늘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전국 찜질방 지도나 안내서를 만들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