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남기고 간 마지막 음식

2008. 4. 8. 10:43세상 사는 이야기

2007년 12월 16일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임종도 지켜보지 못하고 황망하게 가신 어머니의 병명은 심근경색이었다.평소에 고혈압과 류마티스관절염으로 고생은 하셨지만 졸지에 변을 당하시리라곤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어머니는 틀니와 손에 끼셨던 옥가락지 한쪽만을 갖고 가셨다.
벌써 100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머니는 늘 내곁에 머물러 계시는 듯하다.
고향에 자주 오지 못한다고 늘 바리바리 싸다 주신 음식들 냉장고를 열때나 주방을 기웃거리다 보면 어머니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제는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어머니의 손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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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요즘 중국산 김치 때문에 말이 많은가보더라 이번에는 좀 더 갖다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꺼내 먹으렴 ...괜히 사먹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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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김치는 내게는 늘 특별했다. 어머니는 젓갈을 넣지 않고 김치를 담그고 늘 김장독에 묻으셨다. 김치냉장고도 김장독 만큼의 맛을 내지 못한다며 조금씩 갖다 먹으라고 하셨다.....맛이 깔끔해서 주변 사람들도 좋아했던 마지막 김치....벌써 속이 많이 물렀다....시큼하지만 그래도 너무나 소중한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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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깨를 터는 곳에 갔다가 본 깨망아지...지금도 끔찍하고 싫다....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얼마나 고소하면 저 것이 여기 딱 붙어서 살겠니...자꾸 보면 나름대로 귀여운 녀석들이란다....."
손으로 만지는 어머니를 보고 질색하여 멀리 도망가던 유년의 추억처럼 이제는 바닥을 보이는 들기름 .....
아내가 마지막 찌꺼기 밖에 남지 않았다며 버리려고 하는 것을 내가 보관하고 있다.
먹지 않고 바라보고 있어도 고소하다.....어머니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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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방학 때면 농한기라 우리 집으로 놀러 오시곤 했다.아이들에게 팥죽이며 감자,고구마,등 바리바리 싸오셔서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시곤 했는데.......남아있는 이 팥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내는 팥죽을 쑬줄 모른다..........그냥 밥에다 넣어서 먹어야 하는지 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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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우리집은 고추농사를 많이 지었다.가식하고 이식하고 고추는 손이 많이 간다.특히 고추를 따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가을 뙤약볕에 쪼그려 앉아 고추를 따다보면 현기증이 나곤 했다......고추를 따기 싫어 도망을 갔던 기억이 가슴 아프다....어머니는 고추농사로 아들 4형제를 키우셨다.....마지막 고추가루가 유독 맵게 느껴지는 것은 어머니의 땀과 눈물이 배어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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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기름과 함께 보내주셨던 참깨......볶아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것인데..냉동실에 넣어 두었어도 개봉을 하니 고소한 냄새가 확 오른다........한알 한알 씹어보는 고소함........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모두 고소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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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에 담궈주신 마늘장아찌와 된장........내가 좋아하는 무국을 끓일 때 어머니표 된장만큼 맛난 것은 없다....어릴 적 부터 길들여진 맛이라 그런지 사먹는 조미료 투성이의 일반 된장보다 투박한 어머니 손맛의 된장이 좋다.
특히 어릴 적 메주를 만드는 날 모락모락한 콩을 밥삼아 먹던 유년의 기억 그때는 어머니가 참 고우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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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부실하면 안된다며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주신 복분자.......흑설탕만 넣어서 재운 것인데 냉수에 조금씩 타서 먹으면 기운이 불끈 솟는다......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복분자.....아껴먹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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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추장 마저 다 먹으면 이젠 어머니가 해주신 고추장 맛을 더 이상 맛볼 수 없다.
어머니는 아들 4형제 뿐만아니라 작은아버지 고모댁 까지 고추장을 담궈 주셨다. 오래전 부터 해오던 일이라 담글때 조금 더 담그는 것 뿐이라고 하셨지만 고추장 담그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일인가....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생전에 해주셨던 고추장 맛에 대해 이야기 하곤 했다.....이젠 얼마 남지 않은 고추장......어머니 생각날 때 마다 조금씩 꺼내 비벼 먹어야 겠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유효기간이 얼마남지 않은 어머니의 마지막 음식들.......하지만 마음 속 어머니의 사랑은 유효기간이 없으므로 그 안에 어머니의 맛을 고이 간직해야겠다. 그리움으로 포장된 음식은 상하지 않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