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콜 중독에 빠진 후배에게

2008. 4. 1. 00:00세상 사는 이야기

잘 가셨는가 후배님,먼저 지난 밤 자네와 만나고 난후 밤새도록 잠을 설쳤다네
왜냐하면 술을 마시면서 내게 보여준 자네의 행동이 내게는 오래오래 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 같으니 말일세.....
자네와 내가 헤어진 것이 아마 대학 3학년 때인가?.....군대를 간다고 휴학계를 내고 입영전야에 원없이 마시던 술..그때만큼 의미있게 마신 술은 아마 없었을 걸세.......그뒤 까맣게 잊여젔던 자네가 불쑥 찾아왔을 때 정말 나는 반가웠었네. 세월이 주는 훈장처럼 흰머리 날리며 들어오는 자네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었네....그러나 그보다 더 놀란 것은 너무나 앙상하게 말라버린 자네의 모습 때문이었지. 한눈에 봐도 병색이 완연한 모습인데 딱히 대놓고 왜 그렇냐고 물어 볼 수가 없었네.
되돌아 갈 수 없는 젊은 날의 꿈들이 이젠 술과 추억이라는 안주로만 위안 된다며 술을 들이키는 자네를 보며 왜이리 낯설게만 느껴졌는지.....자네의 꿈은 교사였고 가능하면 교육재단을 설립해보고 싶다고 했었지.글씨를 아주 잘 썼으며 늘 학업에 열중하는 모범생이었고.집은 가난했지만 늘 열정적이고 과대표를 할 정도로 능동적인 학생이었지 않았나.
선배들은 대부분 교사발령을 받았는데 군대 갔다오는 사이 순위고사가 생기고 또 순위고사에도 떨어졌을 때의 충격.......물론 실력이 부족해서 떨어졌겠지만 왜 하필 그때 순위고사가 생겨났는지 모르겠다며 운명이 자꾸 자신을 비켜간다는 생각에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아졌다고 했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심장판막증이라는 진단을 받아 없는 돈에 빚을 내 수술을 받았을 때의 절망감.......말로만 들어도 정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으리라 짐작되네.4년내내 장학금(근로장학금)을 타고 다녔으나 졸업 후 빚낸 수술비와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학원강사로 나가게 되었고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는 듯 했다지....
하지만 늘 가슴이 텅빈 것 같은 외로움과 공허감 때문에 학원이 끝나면 혼자서 술을 마시는 버릇이 생겼고 술의 양도 점점 늘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지 ....... 적어도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마신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술의 양은 늘어갔고 끝내는 동네에 알콜중독자라는 소문이 나돌아 직장마저 잃어버렸다고 했지.
늘 다람쥐 챗바퀴 돌듯 되풀이 되는 일상 속에서 오직 위안이 술이었다며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자네를 보며 딱히 뭐라 위로의 말을 해야할지 몰랐네.
혼자 몰래 병원에 찾아가 진단을 받아보니 의사가 아직 입원할 만큼 중한 상태는 아니지만 더 심해지면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으니 처방 약을 먹고 당장 금주하라고 했지만 술의 유혹에 벗어날 만큼 강한 의지가 남아있지 않았다고 했지.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입원을 했고 넉 달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나오니 멍하고 사회에 대한 적응이 안돼 자연스럽게 또 술을 마시고 그렇게 병원을 가는 일이 되풀이 되었다지
결국 아내와 아이마저 친정으로 가버리고 혼자 남으니 아예  밥보다 술을 먹는 날이 많아졌다고 했지.
알콜 중독자라는 소문이 도니 주변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다 떠나고 오직  혼자 방에 쳐박혀 술을 마시던 어느 날 그날도 예외없이 만취가 되어 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간에 문득 젊은 날  가장 유쾌하고 재미있던 대학시절 나와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나 그리워서 무작정 여행을 떠났고 우여곡절 끝에 물어물어 나를 찾아 온것이라했지.서로 살기 바쁘다 보니 연락도 못하고.... 아니 까맣게 잊고 지내는 사이 자네가 알콜중독자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너무나 미안하고 안타까웠네.
가장 아플 때 곁에 있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지 아무도 모른다는 자네의 넋두리가 아직도 내 가슴에 비수처럼 박혀있네....
여행이 끝날 쯤이면 술을 끊든 인생을 끊든 둘 중에 하나는 분명히 끊을 것이라는 자네의 마지막 말이 무서웠지만 한편으로 비장한 의지의 표현이라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기로 했지.
병원이든 어느 곳이든 힘들 때면 꼭 연락하시게....꼭 달려 가겠네...
어떤 이유로 알콜 중독자가 되었든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다시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옛날로 함께  돌아가 봄세.
자네가 알콜 중독에서 벗어날 분명한 의지를 갖고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겠네
지금 어딘지 모를 여행지에서 힘겹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을 후배님...
힘내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