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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처럼 사라진 내 친구

2008. 3. 28. 09:01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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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는 나이가 48입니다. 저와는 어릴 적 고향에서 함께 자란 개구장이 불알친구이고 초등학교 졸업하자 마자 서울로 상경하여 살았는데요.고향이 그리워 가끔 내려오곤 했었지요.집이 워낙 가난해서 중학교를 갈 수 없던 친구는 서울에서 안해본 일이 없었습니다.막노동꾼,지게꾼,신문배달,중국집 배달원,등등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는 친구였습니다.그런데 그 친구에게 한 가지 단점이 있었습니다.그것은 자신을 깔보거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었지요.하는 일들이 다 힘든 일이고 부딪치는 일이 많다보니 경찰서에도 들락거리고 폭력으로 소년원에도 갔다오기도 했습니다.본성이 착한 것을 아는 친구들은 소년원에 면회도 갔다오고 늘 그를 도우려고 했습니다.그렇지만 그놈의 자존심을 꺽지 못하고 늘 주변사람에게 따돌림을 당하곤 했습니다.
그때는 핸드폰도 없었고 전화 하기도 여의치 않은 시절이라 편지가 아니면 그 친구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없었지요.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담배농사를 짓고 있을 때였습니다.바로 그 친구가 불쑥 찾아와서 나에게 부탁을 합니다.
"친구야, 어려운 부탁 하나만 들어다오"
"뭔데,,,,,,,,"
'네 고등학교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좀 빌려다오"
"아니 ,내 것을 무엇에 쓰려고?"
"응,솔직하게 말할께......그동안 서울에서 내가 고등학교 나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는데, 내가 잘 아는 형님이 회사를 소개시켜 주겠다며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떼어 오라는 거야."
"그것만 갖고 오면 취직시켜 준다는데 달리 방법이 없어서....."
순간 나는 정말 고민이 되었습니다.나도 지금 형편이 좋지 않아서 야간대학을 준비하고 있는데 만에 하나 저 친구부탁을 들어주었다가 잘못되면 어쩌나....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학교에 가서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떼어 친구에게 보내주었습니다.
그뒤 그 친구는 그 회사에 취직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게되었습니다.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가 들통나서 내가 피해볼까 열심히 하다보니 회사에서 직급도 높아지고 좋은 일만 생긴다고 좋아했습니다.
5년이 지나는 동안 대학을 진학하고 또 졸업을 한 나는 원하던 교사를 하지 못하고 가구점을 차렸는데 또 그 친구가 불쑥 찾아왔습니다.결혼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그동안 착실하게 저축도 하고 좋은 여자도 만나서 결혼식은 나중에 올리고 먼저 신혼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제가 살고있는 곳으로 무작정 왔다는 겁니다.
밤새도록 함께 술을 마시며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는데...날이 훤하게 밝도록 둘이 이야기를 하다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습니다. 그 친구가 또 부탁을 하더군요......자식을 나면 네가 이름을 지어다오.....꼭 부탁을 들어다오....
하는 수 없이 또 그러마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1년 뒤에 전화가 왔습니다.아들을 낳았다고.....틈틈히 작명에 관해 공부한 나는 그 친구 아들 둘의 이름을 모두 지어 주었습니다.
늘 나에게 부탁만 하는 친구였지만 그래도 싫지 않았지요....왜냐하면 우리는 불알친구였으니까요.....*^*
그런데 친구의 생활이 안정되면서 조금씩 못마땅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오래 전에 끊었던 술을 입에 대더니 또 과음하면 술주정도 심해졌습니다.
알코올 중독은 아닌데 평소 모습과는 달리 자신에 대한 콤플렉스가 술의 힘으로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그해 친구가 갑자기 종적을 감추어 버렸습니다.친구의 휴대폰도 꺼져있고 친구의 아내도 전화를 바꾸었는지 전화가 되지 않았습니다.물론 집의 전화도 불통이고 그야말로 감쪽 같이 증발되었습니다.종적을 감춘 것을 3개월 뒤에야 안 나와 친구들이 그가 살던 부천의 집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3개월 전에 부랴부랴 어디론가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어디로 가는지 말하지 않아 이사간 곳은 모른다고 하더군요.그래도 다행이구나 사고가 아니고 이사를 갔다고 하니 ....그렇게 헤어지고 난 후 2년간 친구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늘 어디서 잘 살고 있으려니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기가 팍팍 살아있던 예전의 목소리는 어디가고 아주 차분한 목소리의 친구 목소리는 마치 유령같았습니다.
"오랜만이야 친구, 그동안 잘 있었는가?"
"어찌된 일인가?"
"응,그럴 일이 있었네 내려가면 술 한 잔 사주게...."
친구가 내려와서 하는 이야기는 어이없게도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는 겁니다.
처음에 아이를 낳고 나서 아내가 아이들만 큼찍하게 위하고 자신에게는 점점 소원해지는 것이 못마땅 하지만 아이들 위하는데 하면서 참고 살았다고 하더군요.부부간에 잠자리도 소원해지고 그런 관계가 지속되니 술도 다시 입에 대기 시작했고 술을 마시면 그동안 억눌렸던 마음에 술주정도 늘게 되고....그러던 어느 날 평소에 알던 형님과 술을 먹고 만취 상태로 집으로 간 기억은 나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옛날 소년원 있을 때 철창과  비슷한 곳에 갇혀 있더랍니다.하룻밤 사이에 지옥에 떨어진 느낌이었다고 하더군요.아마도 가족 동의하에(가족이라봐야 친구의 아내와 아들 둘 )밤사이 정신병원으로 옮겨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영문도 모른체 시작된 병원생활은 울분과 반항과 눈물로 지샜다고 하더군요.그런데 이상한 것은 자신도 모르게 성격이 순해지더랍니다.(아마도 날마다 주는 약 속에 신경안정제가 포함되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속에서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아내가 자신을 이곳에 보냈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고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어떡하면 이곳을 나갈 수 있을까?.....날마다 고민하는 것이 일과였고 더 이상 소란도 피우지 않았다고 합니다.마치 빠삐용처럼 탈출할 생각만 하였다고 합니다.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말을 잘 들으니 병원 안에서의 활동 폭도 커지고 허드렛일도 맡아서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병원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곳이 어디쯤일까 병원으로 자주 면회오는 사람이 누굴까? 그 사람은 내 옆 병실에 있는 사람인데 이곳에 있으면 급격히 병이 호전되었다가 집으로 가면 이상하게 다시 병이 도져 다시 오는 환자라 했답니다.말을 걸어보니 너무나 사람이 똑똑하고 맑아보였다고 합니다.대화를 해도 정말 환자라고 느껴지지 않더랍니다.(하긴 환자가 자신을 환자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지요)병원에서도 가장 아내와 자유롭게 면회를 하는 사람이 그 사람밖에 없었습니다.(다른 사람들은 거의 면회 오는 사람이 없었다네요)
그 환자와 친해지기 위해서 날마다 지극 정성을 들였다고 합니다.그가 하는 일 그가 좋아하는 것 그와 친구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했다고 하더군요.그러면서 작은 메모지를 구해 짧게 편지를 썼답니다.
"형 나 좀 구해줘"  라는 짧은 글과 함께 사촌형의 전화번호를 적었다고 합니다.
손톱만하게 동글동글 말아서 그 친구의 귀에 넣어주었답니다.병원 사람 모르게 아내에게 주라고 말입니다.다행히 친척들에게 연락이 닿아 경찰을 대동하고 와서 다른 정신과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현실 생활에서 판단력 장애 문제 등 뚜렷한 정신질환이 없다'라는 확정적 판결을 받고 풀려 나왔다고 합니다.
구구절절 이야기 하던 친구의 눈에 눈물이 흐릅니다.나도 가슴이 미어터집니다. 친구가 그러더군요.그 안에 있을 때는 아내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는데 막상 나와보니 아이들도 보고싶고 아내의 행동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도 모르게 아내도 그동안 많이 스트레스 받고 상처도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그놈의 욱하는 성질과 술 먹고 아이들 보는 앞에서 심하게 주정하는 것을 아내가 못견
뎌 그랬을 거라고.....아이들과 아내를 다시 찾고 싶다고.....
2년동안 격리되었다가 나온 세상은 참 너무도 달라보였다고 합니다.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열심히 살거야"
그러면서 다시 서울로 올라간 친구....전화는 자주 하는데 가족을 만났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습니다.다만 초등학교 친구들이 많이 보고싶다. 언제 한 번 다함께 모이자는 전화는 자주 하던 친구......그 친구가 어느 날 유령처럼 또 사라졌습니다.예전처럼 전화도 받지 않고 흔적도 없이 종적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주변에도 친척들도 그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친척들도 뿔뿔이 흩어져 연락이 닫지도 않을 뿐더러 내 앞가림도 하기 바빠 찾을 생각이 없다는 군요.
내 친구는 스스로 잠적한 것일까? 아니면 지난번 처럼 또 알수 없는 병원에 갇혀 있을 까?
유령처럼 사라진 내 친구 .........소식이 끊긴지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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