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과 에디슨이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2008. 3. 25. 08:20세상 사는 이야기

고3 수험생과 고1 학생을 둔 아빠로 요즘 아이의 교육 생각만 하면 잠이 안온다.입시를 목전에 둔 아이는 자신의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듯 요즘 너무 힘이 없다.예고를 다니는 아이가 그동안 실기 위주로 열심히 했는데 올해부터는 논술도 줄어든다고 하고 수능 등급제도 폐지된다고 한다.정부가 갈릴 때 마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교육.....백년지대계가 아니라 단 5년을 못 넘긴다.그렇지않아도 힘이 든 수험생들에게 입시제도가 바뀐다는 것은 가장 큰 스트레스다.왜 우리는 믿고 쫓아갈 교육정책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너무 똑똑한 사람이 많아서? 사공이 많아서? 어쩌면 우리 교육 시스템은 초등학교 부터 대학까지 오로지 성적과 입시를 위해 존재하는 입시 올인정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학생들의 재능보다는 진학위주의 학습만 강조하고 평가하고 그 기준에 맞는 인재들만 양성하는 붕어빵 정책이다.
일전에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특기 적성으로 아이들 글짓기를 가르칠 때의 일이다. 부모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글짓기는 취미삼아 가르치는 것이고 영어와 수학은 필수 국어는 곁다리로 생각하고 있었다.
체험 글쓰기라고 해서 아이들을 현장에 데리고 나가 직접 체험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쓰는 글쓰기나 독서감상문이나 상상을 통한 글쓰기등 아이들이 자신만의 의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부모들은 그것은 고등학교에 가서 논술과외로 따라잡으면 되고 지금은 영어와 수학을 빡세게 해야한다는 것이다.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어떤 과목이든 아이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중요하지 않다면 굳이 과목에 넣어서 수업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이런 한국의 교육정책에 대해서 일전에 교육부장관을 지낸 서울대 문용린 교수의 '자력혁명'이라는 책속의 일화가 생각난다.
이것은 한국의 교육정책을 우회적으로 빗댄 것인데 정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조선 고종 때의 개화파로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김옥균이 옥황상제를 만났다.만나서는 옥황상제에게 자신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했다.이에 옥황상제는 내기 바둑을 두어서 이기면 소원을 들어주마 했다. 최선을 다한 김옥균은 다행히 옥황상제를 이길 수 있었다.약속대로 옥황상제가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묻자
"다름이 아니라 아직 우리나라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의든 자의든 자기가 무엇을 잘하는 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그러니 귀감이 될 만한 위대한 천재 세 사람만 한국에 다시 태어나게 해주십시오."
옥황상제는 곰곰 생각하다가 한국의 이공계 기피 현상을 고려하여 아인슈타인,에디슨,퀴리부인,을 한국에 다시 태어나게 해주었다.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한국의 발전이 되지를 않자 세 사람을 찾아가 보았다.
먼저 아인슈타인을 만나 보니 그는 대학에도 못 가고 허드렛일만 하고 있었다.
옥황상제가 이유를 물었더니 수학에는 가장 자신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대학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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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에디슨을 찾아가면서 '에디슨은 원래 대학을 안 나왔으니 잘되었겠지'하고 가보니 골방에서 육법전서를 읽고 있었다.뭐하는 것인고 하고 물으니 발명은 했는데 특허를 얻기가 힘들어서 특허 관계법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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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퀴리부인을 찾아가니 할 일 없이 집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왜 그러고 있냐고 물으니
"여자라고 교육도 잘 시켜 주지 않고 잘 써주지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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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수상한 퀴리 부인의 집안은 4대에 걸쳐 과학자를 배출했으며, 여기서 모두 네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가 퀴리 부인이며, 어머니의 뒤를 이어 과학자가 된 큰딸 이렌느(왼쪽 두 번째), 퀴리 부인의 전기를 쓴 둘째 딸 이브(맨 오른쪽)가 양 옆에 있다. >

이 이야기는 현장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낸 사람으로서 교육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왜 교육의 수장으로서 스스로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잘못되어 있는 줄 알면서도 고치지 못했을까?
그건 아마도 교육이 정치논리로 휘말리며 멀리 보지 못하고 근시안적 처방만 하다보니 확고한 교육정책을 세우지 못하고 늘 흔들렸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마다의 각자의 재능이 다르고 성향도 다른 법인데 획일화된 교육의 틀안에 가두어 놓으니 어찌 훌륭한 인재가 배출될 수 있겠는가.
아인슈타인과 에디슨 퀴리부인과 같은 위인들이 재능만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우리 학생들 중에서도 당연히 위대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온통 입시위주의 교육정책으로 올인하고 있지 않은가. 모든 교육과정이 입시로만 직결되어 있으니 아이들에게 자율적 창의성이나 재능을 계발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내 아이도 아침 7시에 나가서 11시나 되어야 들어온다.타켓은 역시 입시다.아이들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교과과정은 뒷전이고 하루종일 그리고 385일 입시를 목표로 가고 있다.  이제 고 1인데 말이다.나라 전체의 교육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전국의 학교들은 서열화를 따지면서 치열하게 경쟁을 할 것이다.그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모들은 감당할 수 없는 교육비를 지출하면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따라갈 것이고......
교육의 목표나 계획을 세울 때는 학생의 입장에서 학생의 재능과 학생의 미래를 위해서 어떤 교육이 가장 좋은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틀에 박힌 교과서의 내용만 주입시킬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능력이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고 재능을 꽃 피울 수 있는 전인교육이 되어야한다.
정치논리나 해묵은 이해논리로 적당히 타협하는 교육정책을 지양하고 백년이 지나도 믿고 따를 수 있는 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 미래의 수많은 아인슈타인 ,에디슨,퀴리부인이 입시지옥에 묻혀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길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