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조(이문열) 줄거리 읽기
사군자 중에서 석담이 특히 득의해하던 것은 대나무와 매화였다. 그런데 그 대나무와 매화가 한일합방을 경계로 이상한 변화를 일으켰다. 대원군도 신동(神童)의 그림으로 감탄했다는 석담의 대나무와 매화는 원래 잎과 꽃이 무성하고 힘차게 뻗은 것이었으나 그때부터 점차 시들고 메마르고 뒤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은 후년으로 갈수록 심해 노년의 것은 대 한 줄기에 잎파리 세 개, 매화 한 등걸에 꽃 다섯 송이가 넘지 않았다. 고죽에게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어째서 대나무의 잎을 따고 매화의 꽃을 훑어 버리십니까?" 이제는 고죽도 장년이 되어 석담선생이 전처럼 괴퍅을 부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 고죽이 그렇게 물었다. "망국(亡國)의 대나무가 무슨 흥으로 그 잎이 무성하며, 부끄럽게 살아남은 유신(遺臣..
2008.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