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느티나무 (강신재) 줄거리 읽기

2008. 2. 22. 16:29마음의 양식 독서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오빠’ 그는 나에게 그런 명칭을 가진 사람이었다. 재작년 늦겨울 무슈 리에게 손목을 끌리다시피 하여 여기에 도착했다. 그 -현규- 는 엄마에게 예절바르고 친절하고 무슈 리는 내가 건강하고 행복스런 얼굴만 하고 있으면 만족해한다. 그 -현규- 를 사랑한다는 일 가운데 죄의식은 없었다. 그러나 엄마와 무슈 리를 그런 의미에서 배반한다는 것은 네 사람 전부의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엄마와 나는 사변과 함께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살아왔다. 아버지에 관하여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윤이라는 내 성이 그로부터 물려받은 유일한 것이다. 무슈 리가 피난지에서 할아버지의 과수원을 찾아온 것은 어떤 경위를 지난 뒤 였는지 알 수 없다. 얼마 후 엄마는 상경하였다. 나는 서울 E여고로 전학을 하였다. 무슈 리와 엄마는 부부이다. 현규와 나는 순전한 타인이다. 스물 두 살의 남성이고 열 여덟 살의 계집 아이라는 것이 진실의 전부이다. 일요일 아침 엄마가 지수가 써보낸 러브 레터를 들어 보였다. 지수는 K장관의 아들이다. 나는 두어 번 그의 차를 얻어 탄 일이 있다. 그날 아침 풀밭을 거니는데 지수가 걸어왔다. 우리는 잠자코 한동안 함께 걸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현규가 몹시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수의 편지를 본 것이다. 별안간 그의 팔이 쳐들리더니 나의 뺨에서 찰싹 소리가 났다. 전류 같은 것이 내 몸 속을 달렸다. 현규가 그처럼 자기를 잃은 까닭을 알고 부풀어 오르는 기쁨으로 내 가슴은 금방 터질 것 같았다. 밤에 우리는 어두운 숲 속을 손을 잡고 걸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안겨 버렸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슈 리를 따라 엄마도 일년쯤 미국엘 가야 할 일이 생겼다. 현규와 단 둘이 있어야 할 일을 생각하니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었다. 견딜 수 없어 서울을 떠나 할머니댁에 갔다. 다시는 그 곳에 돌아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나는 날마다 뒷산에 올라갔다. 어느 날 현규가 급한 비탈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 때 숲 속에서의 일은 어찌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만나기 위해 헤어지는 거야” 내 삶은 끝나버린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집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해 주겠지” 바람이 마주 불었다. 나는 젊은 느티나무를 안고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