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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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대출 신용점수가 높다고 안되다네요!
벌써 연말이 다가 오네요, 연말이 다가와도 마음은 점점 급해져 갑니다. 그동안 개인사업을 하면서 요즘 처럼 힘든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고 지금은 경기불황으로 부침을 겪다보니 정말 사업하는데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동안 17년을 한 사업장에서 조그만 의류점을 운영하며 버텨왔는데 정말 막막해서 소상공인 대출을 받아보려고 인터넷으로 대출이나 대환대출을 신청해보려고 하였습니다.먼저 소상공인정택자금 사이트로 들어가서 회원가입을 하고 내게 가능한 대출이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사업자번호와 주소 개인정보를 가입하고 신청을 하려고 하니 신청 가능한 것이 자동으로 뜨더군요. 그런데 내가 대출받고 싶은 것은 예전에 소상공인대출로 3천만원을 받은 것이 약 1천만원 남았는데 이번에 은행에서..
2024.11.04 -
틀니 때문에 식욕을 잃어버린 팔순 아버지......
고향을 갈 때 마다 마음 아픈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꾸 야위시는 아버지의 얼굴 때문입니다. 노화로 인해서 얼굴에 생기는 주름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기력을 잃어가는 아버지를 뵐 때 마다 마음이 너무나 아픕니다.아버지가 살이 많이 빠지신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신 충격과 외로움 때문에 한동안 음식을 제대로 드시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틀니 때문이었습니다. 3년전 완전 틀니를 하신 아버지는 그때부터 평생 즐겨드시던 돼지고기를 전혀 드시지 않습니다.예전에는 싱싱한 가리비며 도치 그리고 오징어회를 사가면 성치않은 이로 맛있게 드시곤 하셨는데 이제는 싱싱한 횟감이나 생선도 잘 드시지 않을 뿐더러 기껏해야 흐물흐물한 물곰탕을 드..
2024.11.01 -
품바각설이와 인생각설이, 품바각설이 인생각설이 노래듣기 가사첨부
각설이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각설이는 한국의 전통적인 거리 공연 예술로, 그 기원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원효대사가 불교의 가르침을 민중에게 전하기 위해 각설이 타령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각설이는 본래 거지나 떠돌이로서의 삶을 살던 이들이 주로 공연을 하였고, 그들의 노래와 춤은 서민들의 애환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각설이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서민들의 삶을 대변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각설이가 서민들의 삶을 대변하는 이유는 그들의 공연이 항상 사회의 부조리와 고난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각설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고, 그들의 노래는 슬픔과 기쁨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각설이..
2024.10.29 -
품바 각설이의 역사와 유래 그리고 축제장의 꽃 품바와 각설이
품바와 각설이는 한국의 전통 공연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공연자가 아니라, 한국 민중의 삶과 감정을 대변하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품바와 각설이의 역사, 각설이 타령의 의미, 그리고 이들이 한국 문화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품바와 각설이는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한국의 전통 공연 예술입니다. 품바는 주로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각설이는 걸인이나 하층민의 시각에서 사회를 풍자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대중과의 소통을 통해 그들의 고난과 슬픔을 노래하며, 때로는 유머를 통해 사람들을 웃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공연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해왔습니다.각설이 타령의 의미와..
2024.10.15 -
명태균 그는 누구인가? 정치적 성장 과정과 논란
명태균은 최근 정치권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그가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인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명태균의 배경, 정치적 성장 과정, 그리고 그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해요.명태균은 경남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는 학창 시절부터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여하며 리더십을 발휘했어요. 이러한 경험이 그를 정치의 길로 이끌었고, 이후 그는 정치적 경력을 쌓기 시작했죠.이미지 출처정치적 성장 과정명태균의 정치적 경력은 그가 대학 시절부터 시작되었어요. 그는 학생회 활동을 통해 정치적 감각을 키웠고, 이후 지역 정치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죠. 그는 여러 선거에서 후보로 나서며 점차 ..
2024.10.10 -
탐스런 가을 밤 감상하세요, 밤의 역사와 영양성분은?
올 가을에도 어김없이 수확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농막 주변의 밤나무에도 밤이 주렁주렁 열렸고 탐스럼 밤송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밤은 한국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귀한 식재료로, 그 맛과 영양이 뛰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밤이 한국에서 약2000년 전부터 재배되었고 고대문헌에도 밤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고 하니 그 역사에 다시 한번 놀라곤 합니다.밤은 주로 5월에 꽃을 피우고, 9월에서 10월 사이에 수확을 하죠. 밤나무는 보통 5~6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는 매년 수확이 가능해진다고 합니다. 제가 사는 곳에 밤나무가 많은 이유는 예전에 산불이 나고 난 후 대체 나무로 밤나무를 식재했는 지금은 모두 아람드리로 자라 해마다 밤을 주우러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밤은..
2024.10.10 -
알몸 때문에 죽다 산 창녀 프뤼네
매춘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이것은 '매춘의 역사'라는 책의 제1장 모두에 나오는 화두다. 인류 역사상 매춘의 시작이 언제인가를 두고 논쟁이 있을 수 있다는 조심스런 견해에서 출발한다는 이책은 고대 오리엔트에서부터 그리스인 로마인 그리고 기독교와 이슬람교와 인도와 중국 미국등 역사속으 매춘에 대해 다양한 참고문헌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그중에 그리스의 고급창녀였던 프뤼네의 이야기가 나의 귀를 솔깃하게 한다. 헤타이라(hetaira)라 불리는 그리스의 고급매춘부였던 프뤼네는 그저 '몸을 파는' 여자가 아니라 철학, 정치, 예술 등을 토론할 수 있는 교양을 갖춘 여성으로 당대의 저명한 정객, 철학자, 장군 등의 비공식파트너였다고 한다. 헤타이라가 되기 위해서는 몸을 치장하는 법과 대화술, 남성의 욕구를 ..
2024.09.26 -
기획부동산에서 산 땅좀 팔아주세요
가끔 이런 전화를 받는 경우가 있다.'공시지가보다 싼 땅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땅의 크기는 얼마든 상관하지 않습니다.'이것은 00개발이라는 유령회사를 만들어놓고 전국의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밑밥을 뿌리는 기획부동산의 수법 중에 하나다.우선 싼 땅을 매입해놓고 이것을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한다.정부에서 나온 개발계획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세워놓은 개발계획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또 자신들이 직접 테마파크를 만든다,전원단지를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투자자를 끌여들여 땅을 팔고 사라지기도 한다.요즘 가장 많이 받는 전화가 시세문의와 땅좀 팔아달라는 전화다.번지를 물어보고 지번도를 보면 80%가 기획부동산에서 산 땅이다.기획부동산에서 산 물건을 후손에게 물려줘도 본전을 건지기 힘들다. 산..
2024.09.25 -
아직도 남아있는 주식에 미쳤던 흔적들
주식에서 손을 끊은 지가 벌써 6년이 다되어 가는 듯하다. 한때는 주식이 하루 생활의 전부였다시피 했고 데이 트레이딩 하느라 밥을 거른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당시 잘나가는 스타의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밤낮없이 공부도 했었고 팍스넷 동호회에 가입해서 활발한 활동을 하기도 했었다.처음에 데이 트레이딩으로 코스피종목과 코스닥 종목을 매매하며 잠시 재미도 보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손실액이 늘어나기 시작했다.여유자금으로 장기적인 안목으로 우량 종목에 투자하라는 기본을 무시하고 또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부화뇌동하던 매매 습관이 나중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했었는데 상장폐지된 대우전자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미어지는 종목이었다. 대우전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을 준 종목으로 기억되는데 당시 많은 사..
2024.09.25 -
갈 수 없는 전쟁기념탑이 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이맘때면 늘 중학교 때 있었던 6.25 기념 행군이 생각난다.지금으로 부터 33년전 일이다. 해마다 6월이면 6.25 행사가 있었는데 중학교 2학년이던 1975년에는 육탄용사전적비 까지 행군을 하는 것이 그 해의 행사였다.홍천지역은 유난히 부대가 많아 어려서부터 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은 우리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자랐고 10km행군도 당연한 줄 알던 시절이었다.날은 무더웠지만 전교생이 비포장 도로를 걷고 있을 때 군용차량이 지나가면 자욱한 먼지를 그대로 뒤집어 쓰곤 했다. 아마도 지금 걸어서 그곳까지 가라면 절대 갈 수 없을 만큼 먼 거리였지만 어설프게 배운 군가를 부르며 전쟁기념탑 육탄용사 전적비까지 행군을 하였다. ..
2024.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