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무명선수서 세계스타로 "시련이 나를 키웠다

2008. 1. 2. 23:42연예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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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지성, 무명선수서 세계스타로 "시련이 나를 키웠다"

    박지성(25ㆍ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거울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단다. '좀 더 잘생겼으면 어땠을까….' 한 때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던 인터뷰 내용이다. 박지성도 아직은 외모에 신경을 쓰는 젊은이다. 하지만 팬들에게 그는 '거인'이다.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폭발력과 체력, 투지에 팬들은 푹 빠져든다. 누가 뭐래도 한국스포츠 최고 스타다.

     하지만 공짜로 이뤄지는 건 없다. 좌절도 많았다. 노력과 피눈물이 있었다. 그래서 성공이 있고, 팬들의 사랑이 있다. 이제는 세계가 주목하는 독일월드컵 예비 스타. 박지성은 "4강 신화가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독일월드컵 16강은 기본이고, 그 이상을 위해 뛰겠다"고 팬들에게 약속한다.

    ▶고지식했던 '개구리 소년'

    초등학교 시절, 박지성은 너무 왜소했다. 부모님을 졸라 그렇게 좋아했던 축구를 시작한 4학년 때도 친구들보다 많이 작았다. 입도 짧았다.

    그런 그에게 부모님은 개구리를 먹였다. 체력을 키우고 키를 크게 하는 특효약이란 말에 어떻게든 개구리를 구해서 먹였다. 그런 덕분인지 고교시절부터 키가 크기 시작했다. 그나마 지금 정도(1m76)까지 자랄 수 있게 한 보양식이였다고 할까. 물론 부모님의 사랑의 힘이 더 컸지만.

    그렇게 자라는 동안 박지성은 운동밖에 몰랐다. 여자는 안된다는 말에 여자친구 한번 사귀지 않았다. 정말 고지식한 청년이었다.

    ▶선택받지 못한 선수

    박지성은 갈 대학이 없었다. 수원공고 졸업 후 발 붙일 곳이 없었다. 체격이 너무 작다는 것이 '퇴짜' 이유였다. 그러다 어렵게 명지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이학종 수원공고 감독이 강력히 추천한 덕분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때가 본격적인 성공가도의 시작이었다.

    99년 1월 올림픽대표팀과의 연습경기를 통해 허정무 감독의 눈에 띄었다. 당장 올림픽호에 탑승했고, 다음해 국가대표로 뽑혔다. 그리고 2002년 박지성은 화려한 축구인생의 막을 올렸다.

    ▶활짝 핀 축구인생

    박지성은 학창시절 누구보다 많이 뛰었다.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굳게 믿으면서 땀을 흘렸다. 지금의 강철체력은 그런 땀내나는 훈련 덕분이다. 결국 준비된 박지성을 축구의 본고장 유럽이 불렀다.

    히딩크 감독을 만난 게 행운이었다. 2002년 월드컵 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박지성은 유럽 성공시대를 열어갔다.

    성공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2005년 5월29일. 세계최고 명문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박지성을 불렀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눈여겨 본 것이었다. 그리고 그해 6월27일 맨체스터에 입성, 화려한 새 인생을 열었다.

    ▶나는 지금도 배운다

    2003년이었다. 에인트호벤시절 생전 처음으로 수술을 받았다. 통증이 심했던 오른쪽 무릎 연골을 제거했다. 그 뒤 힘겨운 재활훈련을 거쳤고, 슬럼프가 찾아왔다. 부진에 불만이 쌓인 홈팬들의 야유도 거세졌다. 박지성은 최근 출간된 자서전을 통해 당시를 회상하며 "눈에 이슬이 맺히기도 했지만 소리내어 울 수는 없었다"고 했다.

    힘든 시절을 이겨내는 법을 깨달은 게 그 때다. 거친 유럽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배웠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후에도 박지성의 배움은 계속되고 있다. "빠르고 거친 플레이에 놀랄 때가 많다. 그런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뛰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앞으로도 배울 것이 많다." 박지성은 늘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은퇴 후 유소년을 가르치고 싶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스포츠조선 신보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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