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아버지가 고추농사를 고집하는 이유

2009. 1. 4. 22:09세상 사는 이야기

해마다 가을이면 고향에 계신 팔순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봄에는 고추를 심으러 가고 여름과 가을에는 고추를 따러 가고 늦가을에는 하우스에서 잘 말린 고추를 배달하기 위해 고향에 갑니다. 올해로 고추농사 지은지 35년째 입니다. 형님이 농업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제대로 된 고추농사를 터득하고 난 후 한해도 거르지 않고 농사를 지었습니다.졸업 후에는 농민후계자로 소를 키우면서도 고추농사를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또 형님이 농사를 포기하고 군무원이 되었을 때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추농사를 지었습니다.이렇게 지금껏 어려운 가운데서도 고추농사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해마다 정성들여 재배한 고추를 기다리는 단골 고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동안 고추농사를 지으면서 단골고객들이 하나 둘 늘어나 늘 고추 팔 걱정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친척집들은 물론이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 그리고 알음알음 찾아온 고객들까지 해마다 500근 정도의 고추를 보내주었습니다.
지난 해에는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고추재배를 줄여 300근 밖에는 수확하지 못했는데 한 근에 12000원씩 팔아 360만원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속에는 농약값과 자재값 그리고 팔순 아버지와 형님과 나와 동생들의 인건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따지면 몇푼 남지 않는 돈이지만 그래도 면적당 경제성을 따지면 고추를 따라갈 것이 없다며 올해도 변함없이 고추 추 농사를 짓겠다는 팔순 아버지....이제는 힘에 부치시니 자식들이 농사를 그만두라 하셔도 고집을 꺽지 않으셔서 걱정입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고추 농사를 고집하는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가장 큰 이유는 평생 어머니와 함께 일구던 고추 농사를 어머니가 안계신다는 이유로 포기할 수 없었나 봅니다. 지난해 추석날 고추를 따다 쉴 때 고추밭 한귀퉁이에서 담배를 물고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어머니를 생각하는 아버지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잊지 않고 해마다 아버지의 고추를 기다리는 단골 고객과의 약속 때문입니다.
햇볕에 잘 말린 고추를 받을 때 마다 고향 생각이 난다는 교감 선생님댁과 10년 단골 서울 아줌마 그리고 직접 고추를 가지러 내려오는 오씨 아저씨 그동안 오랜동안 믿고 고추를 사준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농사를 지을 동안은 고추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아들 사형제가 짬을 내어 고향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고추를 심을 때나 수확할 때 언제나 팔순 아버지 곁에는 어머니 대신 아들 사형제가 고추 농사를 지을 것입니다. 사실 먼거리를 오가는 것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아버지와 형제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더 기분 좋고 그것이 팔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라는 것을 모두 알기에 웃으며 고향에 갈 것입니다.
올해도 고추농사가 대풍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