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 길을 따라 간 허난설헌 생가터

2008. 11. 20. 15:21여행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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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수능시험을 보는 날 기다리다 무료해서 초당동에 들렀다. 초당동에는 옛날 강릉대학교가 있었는데 지금은 지변동으로 옮기고 현재는 강릉고등학교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초당동에는 바닷물로 만드는 초당두부가 유명한 곳인데 예전에는 집집마다 초당두부를 만들어서 강릉시내로 나가 팔곤했었는데 요즘은 그 때는 없던 식당들이 즐비하다. 노송과 잘 어우러진 초당동에는 홍길동길이 있다. 홍길동의 작가 허균의 누이인 초이 허난설헌의 생가터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이곳에서는 허난설헌 문화제가 열리곤 하는데 가을이 저무는때에 찾아간 난설헌 생가터는 한적했다.




가을이 저무는 생가터 주변에는 울긋불긋한 낙엽들이 운치를 더해주었는데 생가터 입구에는 새로 만들어 놓은 우물이 눈에 띄었다.


난설헌의 생가터 뒷마당....아주 넓고 오른쪽에 김장독으로 사용하던 곳이 눈에 띄었다. 기와집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굴뚝이 아주 멋스럽게 느껴졌다.


대부분 굴뚝은 기와를 얹고 그 위에 황토를 얹어서 만들었는데 보면 볼수록 고풍스런 멋이 풍겼다.


이곳은 별채인듯 한데 손님들이 묵거나 손님을 맞이 하던 곳 같았다. 독특하게도 마루 안쪽에 나무 마루가 있고 그 안에 온돌방이 있는 것이 특이했다.


이곳은 휴지통도 멋스럽다. 투박한 나무를 이용해서 만든 휴지통과 기러기 모습의 뚜껑이 이채롭다.


난설헌 생가터에서 기념관으로 걸어가다 보면 허씨 5문장가의 기념비가 보인다.허난설헌의 친가는 조선시대 명문가인 양천 허씨로 대대로 높은 벼슬을 누렸고, 그녀의 부친 허엽은 서경덕의 문인으로 대사헌과 부제학까지 올랐다. 큰오빠 허성, 둘째 오빠 허봉, 남동생 허균까지 당대의 쟁쟁한 문장가들이었는데 이 다섯명을 일컬어 허씨 5문장가가 일컬었다. 


허씨 5문장 기념비에 적힌 난설헌의 시 죽지사


생가터 북쪽에 위치한 난설헌 기념관 이곳에는 난설헌의 작품과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난설헌의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 허엽(曄)의 딸이고, 허봉(篈)의 여동생이며, 허균(筠)의 누나이다. 문한가(文翰家)로 유명한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용모가 아름답고 천품이 뛰어났다 한다. 오빠와 동생 사이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집안과 교분이 있던 이달(李達)에게서 시를 배웠다.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 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지어 신동이라고까지 했다. 15세에 김성립(金誠立)과 혼인했으나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못했다. 남편은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으나 기방을 드나들며 풍류를 즐겼고, 시어머니는 시기와 질투로 그녀를 학대했다. 게다가 어린 남매를 잃고 뱃속의 아이마저 유산했다. 친정집에는 옥사(獄事)가 있었고, 동생 허균도 귀양가버리자 삶의 의욕을 잃고 시를 지으며 나날을 보내다가 27세로 요절했다. 시 213수가 전하며, 그중 신선시가 128수이다. 그녀의 시는 봉건적 현실을 초월한 도가사상의 신선시와 삶의 고민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으로 대별된다. 후에 허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시를 보여주어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발간되는 계기가 되었다. 유고집으로 〈난설헌집〉이 있다.<출처: 다음백과>

27세에 요절한 허난설헌의 불우했던 삶 속에서 빚어낸 문학의 향기가 새록새록한데 남매를 잃고 쓴 시가 가슴을 저미게 한다.

작년에 사랑하는 딸 잃고
올해 사랑하는 아들을 여의었네.
슬프다 광릉 땅에
두 무덤이 마주섰네.
백양나무에 바람 쓸쓸히 불고
소나무 숲에 귀화는 밝나니
지전으로 혼을 부르고
무덤에 술 한 잔 올리네.
아노라 오누이 혼이
밤마다 서로 만나는 것을
배 안에 또 아이 있으나
어찌 장성하기를 바라랴
이제 황대사를 읊고
피나게 울어 슬픔을 머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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