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목마와 숙녀의 박인환 시비

2008. 7. 12. 10:38사진 속 세상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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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와 숙녀''세월이 가면'하면 떠오르는 시인이 있다. 바로 한국 모더니즘의 대표 박인환 시인이다.
강원도 인제가 고향인 박인환 시인은 8·15 해방 후 혼란의 소용돌이와 6·25 전란 속에서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 70여편의 시를 남겨 한국현대 모더니즘 시인으로서 현대시의 토착화에 기여하였고 문학사에 큰획을 남긴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7080세대나 그 이전의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읊조렸을 낯익은 시 한 편을 읽어보자
 
 

        목마와 숙녀

                   박 인 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6 25 전쟁이 가져다 준 허무와 절망, 시대적 불안과 애상을 노래한 전후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품으로 평가 받은 이 작품과 함께 시비의 뒤에 새겨진 '세월이 가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고 대중가요로도 만들어져 가수 박인희의 노래로도 불려지기도 했다.
     1949년 "경향신문"의 기자와 1951년 종군기자로 활약하였던 그는 한창 문학의 꽃을 피워야할 나이인 1956년 3월20일 저녁9시  세종로의 자택에서 눈을 감지 못한채 심장마비로 요절하였다

    인제군은  3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박인환 시인을 기념하기 위해 1988. 10. 29 인제읍 남북리 아미산공원에 시비를 건립하으나 국도터널공사에 의해 1998. 6. 20 현재의 합강정 소공원에 이전하였다. 시비가 이전된 후 10년이 지났는데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늘 지나치던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박인환 시비를 둘러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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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번국도를 따라 서울에서 양평 홍천 인제를 지나며 굽어진 곳에 합정강 휴게소가 보인다.이곳은 미시령과 한계령에서 흐르는 물과 내린천 계곡에서 흐르는 물과 합치는 합강에 위치한 휴게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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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강정에서 내려다보는 강은 푸르고 시원해서 많은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인데 여름에는 번지 점프장으로도 유명한 곳이다.이곳 맨 왼쪽에 박인환의 시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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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광이 좋은 곳에 있는 박인환 시비. 올라가려고 하니 한 가족이 그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빠는 아이에게 친절하게 박인환 시인에 대해서 설명했고 또 세월이 가면 이라는 시를 보지도 않고 줄줄 외웠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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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올라갈 곳을 둘러보아도 갈곳이 없어 왼쪽으로 돌아가니 그곳에 계단이 있었다.그런데 올라가는 곳이 모두 파여있었다. 처음부터 돌로 쌓은 것이 아니라 대리석으로 해놓은 것이 모두 떨어진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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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떨어진 대리석은 그 위에 버려져 있었다. 버려진지 꽤나 오래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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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에 꽃을 꽂아 놓는 곳에는 쓰레기통이나  재털이로 착각한 사람들이 버리고 간 것들이 남아있었다.
    알면서 버리고 간 비양심이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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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환 시인의 약력은 읽기가 어려울 정도로 흐릿했다. 담배꽁초로 비빈 흔적인지 세월의 녹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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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비 뒷편에 새겨진 세월이 가면 시 전문이 생전의 육필원고 그대로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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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시비 바닥이 모두 들떠서 불안했다 틈이 갈라지져 화초가 자라고 심지어 담배꽁초까지 끼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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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비의 앞쪽이 보기에도 틈이 벌어져 있다. 발로 밟으면 들썩들썩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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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면에서 바라보니 다른 곳과 확연이 다르다. 오래전에 통채로 뜯어진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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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으로 들어보니 그대로 들렸다.저렇게 놔두면 금새 깨어질 듯 불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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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에는 벌써 깨진 곳도 있었는데 발로 밟다가 떨어지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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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비를 올려놓은 곳의 하단부...안전하게 올려놓아겠지만 보는 내게는 불안해 보였다.


박인환 시인은 인제군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문화인물이고 한국 시단에도 큰 족적을 남긴 시인이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옮겨 놓고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해마다 박인환 문학축제를 열고 기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가꾸려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여름 또 이곳은 수많은 피서인파로 북적일 것이다. 행여나 훼손되거나 관람객이 다치지 않도록 미리미리 보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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