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의 '돈' 줄거리 읽기

2008. 2. 22. 16:10마음의 양식 독서

 

식이는 세금이 밀려오는 농가의 형편에 돼지보다 좋은 부업은 없다고 생각하고 지난여름 마을 사람들을 본받아 푼푼이 모은 돈으로 갓난 양돼지 자웅을 사 온다. 그런데 애지중지하던 수놈은 한 달이 못되어 죽는다. 그는 단 한 벌인 밥그릇에 물을 받아 먹일 정도로 정성을 들여서 암놈을 키우는데 육 개월쯤 되자 암퇘지 티가 나기 시작한다. 달포 전에 피돈 오십 전을 내서 시험삼아 십리가 넘는 종묘장까지 와서 씨를 받으려고 하나 종시 붙지를 않는다. 때마침 좋아하고 지내던 이웃집 분이가 늘 쌀쌀하게 대꾸하더니 어디론가 도망을 친다. 식이는 분이 아버지 박초시가 원래 속깊은 사람이기 때문에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는 암퇘지의 불을 붙이기 위해 종묘장에 간다. 말뚝을 싸고도는 씨돋은 암퇘지에게 접근을 하나 암퇘지는 날카로운 비명을 울리면서 전신을 요동한다. 반시간이 넘도록 씨돋의 접근이 계속되나 일이 잘 되지 않고 끝내 육중한 씨돋의 힘에 말뚝이 무너지면서 밑에 깔린 암퇘지가 말뚝 테두리를 벗어난다. 종묘장 기수가 어려서 안 되겠다고 소리친다. 농부가 뛰어가는 돼지의 앞을 막자 식이는 겸연쩍어서 달포 전에 왔다 간 일을 이야기한다. 어린 돼지가 요동하지 못하게 얽어매자 씨돋은 미처 식이의 손이 떨어지기도 전에 말뚝 위를 엄습한다. 이 때 식이는 분이의 자태를 떠올린다. 딴전만 보고 있던 식이는 농부가 다 됐다고 하자 그 쪽을 보니 씨돋이 만족한 듯이 꿀꿀거리고 있다. 식이는 암퇘지와 분이의 자태가 서로 얽혀서 정신을 혼란시키자 몹시도 겸연쩍어서 한층 얼굴을 붉힌다. 장부에 이름을 올리고 오십 전을 치러 준 뒤에 종묘장을 나오니 오후의 해가 느지막하다. 일전에 나남에서 있은 차장 시험에 분이가 뽑혀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성안에서 달려오는 버스를 피해 길 왼편가로 간 식이는 버스 안을 살펴본다. 성안 남문 거리를 향하던 그는 석유 한 병과 마른명태 몇 마리를 사 들고 장판을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마을로 향한다. 돼지가 어기적거리면서 올 때만큼 걸음이 재지 못하였으나 식이는 매질할 용기를 잃고 철로를 끼고 오촌동 한길로 나선다. 아련히 기차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이 길로 아무 데로나 도망을 가서 분이를 만나 함께 산다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날카로운 소리에 번쩍 정신을 깬 식이는 찬바람이 휙 앞을 스치고 지나가자 일신이 딴 세상에 뜬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열차가 쏜살같이 눈앞을 달아난다. 성난 철로지기로부터 따귀를 얻어맞은 식이는 두 번이나 종묘장에 가서 씨받은 돼지가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없어진 것을 알고 정신이 아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