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감상) 빈집 /신경숙

2008. 1. 1. 13:43마음의 양식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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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신경숙



스페인은 언제 가시우?

밤이 되면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을 흠뻑 맞아 눈사람이 되어 스튜디오 경비실을 막 지나려는 그를 보며, 아니 그의 어깨에 걸린 기타를 보며, 늙은 경비원이 습관처럼 물었다. 봄이 오면....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어 대답을 줄여 버리려는 참인데 스튜디오 뜰의 거위 우리의 꽉꽉 소리가 그의 소리를 잘라먹었다. 웬 뜰의 거위를?

그가 늙은 경비원이 거위를 기르고 있었던 걸 모르고 꽉꽉 거리는 소리에 짜증을 내며 물었을 때 경비원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엄한 표정을 지으며 벌떡 일어났었다. 집 지키는 덴 거위가 최고요. 나는 이때껏 거위만큼 집 잘 지키는 사나운 놈은 못 봤소. 나 어려서두 산골짝에 있는 내 집도 거위 두 마리만 있으면 하나도 안 무서웠으니까. 그러니 상관 마오. 댁은 여기 사는 사람도 아니잖우. 후에 알고 보니 늙은 경비원의 그런 신경질적인 반응은 그에게만 보이는 반응이 아니었다. 도저히 주거용 건물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시내의 한복판에 이 스튜디오는 뭔가 비현실적으로 삐딱하게 서 있었다. 평수는 가장 넓은 게 14평이고 가장 많은 게 10평짜리의 원룸 형식의 방들이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살림을 하는 이들은 없고, 시내에 직장을 둔 혼자 사는 사람들이나, 혹은 굽이진 사연을 안은 채 둘이 사는 사람들, 간혹 신혼부부들도 있는 것 같았으나, 그는 지난 일년을 그녀의 집에 드나들면서 여기에서 어린아이가 달린 가족들을 본 적은 없었다.

 

스튜디오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 주인은 따로 있고 모두들 보증금 얼마에 다달이 집세를 치르며 살고 있었다. 건물 주인의 먼 친척이라는 경비원은 여기에 채용이 되자마자 스튜디오 뜰에 거 위 우리를 만들었고, 스튜디오보다 거위 보살피는 일에 더 시간을 보냈다. 늘 게으르게 눈이 내려뜨려져 있는 늙은 경비원의 눈이 부라려지는 순간은, 바로 사람들이 거위에 대해 불만을 드러낼 때였다. 한밤중 혹은 새벽 아무때나 거위들은 꽉꽉거렸고, 그 소리에 잠깬 피곤하고 창백한 얼굴들이 창에 얼굴을 내밀고 거위 욕을 하면 경비원은 대번 그 창쪽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집 지키는 데는 거위가 최고라니께.

 

갑자기 웬 눈인지 모르겠구먼요. 눈을 보니 조놈들도 발 시렵고 깜짝 놀라겠는가 봐요. 눈 내리게 시작할 때부텀 저리 꽉꽉거리느만요. 아, 내 정신 좀 봐 스페인은 언제? 봄이 오면, 이라고 다시 대답했던가? 겨울이 오면, 이라고 했지 겨울이 오면 가야지요. 소양 교육도 받아 놨으니.

스페인. 그는 웃고 있는 자신의 입꼬리를 갈무렸다. 겨울에는 스페인의 봄, 갈리시아의 이끼 낀 교회에 내리는 비를 생각하며 봄이 오면, 이라고 말했고, 막상 봄이 오면 스페인의 여름, 나자레 해변을 씻어 내리는 대서양의 물결을 생각하며 여름이 오면, 이라고 했다. 그렇게 또 여름이 오면 스페인의 가을, 한낮의 공원에서 푸른 거울 같은 하늘을 보며 빠져 들은 그들의 낮잠을 생각하며 가을이 오면, 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시에 스타라 불리는, 낮잠 자는 시간을 기준으로 하루를 두 번 산다, 했다. 겨울에는 겨울에는? 지금은 겨울인데 스페인의 겨울은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계절을 넘어, 변해 가는 것과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의 공전을 넘어, 피레네 산맥이 있을 거였다.

 

지금은 겨울이다. 그래 겨울이지. 특히나 오늘은 갑자기 기온이 영하 7도로 떨어져서 그는 학원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어깨에 질머진 기타를 한번도 손으로 잡지 않았다. 눈바람 속에 칼날 이 느껴져 주머니 속에서 손을 꺼내기만 하면 그대로 얼음 조각으로 만들어 버릴 듯했다. 그래, 겨울이다. 무방비 상태로 내놓아진 얼굴, 살갗 밑에 살얼음이 쌓인 듯 시려운 겨울. 어깨에, 머리에, 기타에 쌓인 눈을 툭툭 털며, 신발 위에 쌓인 눈도 털기 위해 발을 툭툭거리며, 계단으로 오르려는 그를 이보우, 하며 경비원이 다시 불러 세웠다. 돌아다보니 경비실 창으로 경비원의 늙고 핼쑥한 얼굴만 나와 있다. 깜박했는데 그 꽃 만드는 처녀 이사갔수? 아우? 그는 대답 대신 낮에 그녀가 이삿짐이 실린 트럭에 올라타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았던 스튜디오 입구의 건물에 시선을 주었다.

 

하긴 말두 안하고 이사했을 리는 없고. 그럼 이 밤중에 뭐하러 빈집으로 올라가우? 뭘 놓고 갔다허우? 열쇠는 있소? 그래, 그녀가 떠난 줄을 알면서 나는 왜 저 빈집에 들어가려 하는가? 무의식적으로 이끌려 온 걸음도 아니다. 학원 야간반 수업을 진행중일 때, 수업을 마치고 미끄러운 학원 현관을 나설 점점 굵어지는 거리의 눈발 속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우두커니 서 있을 때, 그는 분명 그녀가 갔음을 느꼈다. 그는 거리에서 스스로를 향해 속삭이기까지 했다. 낮에 몰래 숨어 그녀를 실은 트럭이 그녀를 태우고 스튜디오를 빠져나가는 걸 보지 않았더냐, 한달 전부터 그녀가 그녀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걸 느끼고 있었으면서 마치 그녀가 떠나기를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 모른 척하다 맞이한 오늘이 아니었더냐, 고. 모른 척한 이유는 있었다. 나는 스페인에 가야 하니까, 언젠가는 그녀를 떠나야 하니까, 그녀가 가려할 때 보내야지, 그때 상처가 안 되게. 그녀는 갔다. 자주 그녀를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이 그녀를 붙잡지 않게 했다. 그녀가 간 줄, 이제 그녀의 집은 빈집인 줄 알면서도, 그는 여기로 오고 있었다, 한사코.

그는 현관문에 열쇠를 꽂다 말고 가만 귀를 기울였다. 그녀가 이사한 방안은 분명 텅 비어 있을 텐데 방금전 열쇠를 문에 꽂자 안에서 무엇이 놀라 후다닥거렸다. 혹시 그녀가 돌아왔나?

부질없이 귀를 기울이니 문안의 기척은 사라지고 조용했다. 그녀가 있을 리가? 그래 있을 리가. 그가 다시 열쇠를 만지려는 적막 사이로 갑자기 옆집에서 켜는 텔레비전 뉴스 소리가 쨍하니 섞여 들었다. 오늘 오후 1시쯤 동대문구 이문 2동 307번지 김선식 씨 집에 세들어 살던 아파트 청소원 부부가 나란히 숨져 있는 것을 셋째 딸인 미영 씨가 발견했습니다. 미영 씨는 회사 기숙사에서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이상한 생각이 들어 집에 와 현장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경찰은 문이 안으로 잠겨 있고 외부 침입 흔적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자살로 추정하고 있으나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가족들의 말에 따라 타살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대로 망연히 서 있었다. 바람이 뼛속까지 휙 들어오는 것 같아 그는 다시 손을 열쇠에 갖다 대기 전에 손바닥을 비볐다. 어느 날 그녀가 그녀의 손가락에서 빼 그의 왼손 가락에 끼워 준 반지가 오른손 등이며 손바닥에 스쳐졌다. 그는 문을 따로 안으로 들어와 문에 등을 대고 가만 서 있었다. 처음엔 깜깜했던 방안의 어둠이 차츰 익숙해지자, 흰 벽이 보이고 세면장 문이 열려 있는 게 보였다. 그녀가 떼어 가지 않은 선반이 구석에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것까지 눈에 잡혔을 때, 그는 기타를 풀어 문에 세워 두었다. 봄은 희망이야. 봄이 되면 스페인에 갈 거니까. 거기 가서 빠꼬 데 루시아처럼 악보 없이 플라멩고를 칠 거니까. 그래 그럴 거니까.

그녀를 만난 날도 봄이었다. 모두들 자칭 기타 리스트들인 아는 얼굴들이 모여 객석 의자가 마흔 개도 될까말까한 소극장에서 연주회를 열었을 때, 그 자리에 그녀가 왔었다. 그가 마르티니의 사랑의 기쁨과 마이어즈의 카바티나를 접속곡으로 연주하고 났을 때 그녀는 박수를 쳤다. 그가 사티의 짐노페디를 켜고 마지막으로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치고 났을 때도 그녀는 앉은 채로 계속 박수를 쳤다. 쉬지 않고 박수를 치고 또 쳤다. 그녀가 얼마나 많이 박수를 쳤는디 누구나 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의 손바닥이 얼마나 아플까를. 그래서 연주회가 끝났을 때 그가 극장을 빠져나가고 있는 그녀 곁으로 가서 물었다. 기타 소리를 좋아하는가 보군요. 그녀는 대답이 없고 그녀와 동행한 그녀 곁의 늙은 여자가 가만 웃었다. 그는 둘이 모녀 사이인 줄 알고 이번엔 늙은 여자를 향해 따님이 기타 소리를 좋아하나 봐요, 라고 다시 물었다. 그녀의 엄마가 아니고 이모라는 늙은 여자가 대신 대답했었다. 이 앤 소리를 들을 수 없어요. 귀머거린 걸요. 귀머거리? 그는 멍하니 선 채로 그녀와 그녀의 이모라는 늙은 여자가 극장을 빠져나가 바깥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는 걸 바라보았다. 그이 시야에서 두 여자가 아주 안 보이게 되었을 때 그 는 뛰어나가 그녀들을 찾았다.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고 있는 그녀들을 찾아냈을 때의 그 반가움은, 오래 전 한 여자의 정중한 이별 후 처음 느껴 봤던 것이었다. 육 년만인지, 칠 년만인지, 그 동안 그 육 년인지, 칠 년 동안, 여섯 번인지 일곱 번인지 봄을 보내면서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면서 그는 스페인에 가기라, 했다. 자그만치 저 옛날, 1600년대에 지은, 길이 94미터에 폭이 128 미터의 사방이 둘러싸인 풍취 잇는 마요르 광장에서, 화려한 왕가의 의식과 사나운 투우 축제와 종교 재판의 화형식이 있었던 그 마요르 광장에서, 유랑인들 틈에 섞여 기타를 치리라, 했다. 아, 그리고 마드리드에서 아란훼스로 가는 열차를 타리라, 황야 속에서 저 혼자 기름진 들판을 이루고 있는 아란훼스, 수많은 나무와 식물로 둘러싸여 있는 아란훼스, 그 왕가의 휴양소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기타를 치리라, 했었다. 그것만이 그에게 여섯 번인가 일곱 번 봄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는 대안이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려다 그는 다시 멈춰 섰고 그녀의 냉장고가 놓여 있던 곳, 이제는 텅 비고 어둠이 내려앉아 있는 자리에 그녀가 냉장고 문을 열며 서 있는 것 같다. 밖에 춥죠?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휜 셔츠를 입은 그녀가 입술을 달싹이며 그에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는 저절로 춥긴 별로야. 혼자 공허하게 대꾸하다가 어깨를 한번 움츠리곤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대답을 소리로 듣지도 못할 거면서 무엇이든 물었다. 텔레비전의 동물의 세계 프로그램에서 밀림의 코끼리들이 천연적으로 알콜이 만들어지는 풀들을 뜯어먹어 술취해 비틀거린다는 얘기에 코끼리들이 왜 그래요? 하고 물었다. 그는 거창한 밀림이 자꾸 파헤쳐지고 그나마 살아남은 코끼리들도 자꾸만 터를 뺏기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래. 대답하다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화면만 보고 진행자의 소리는 듣지도 못하면서 코끼리들이 뭘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것인가? 스트레스 때문이래. 라고 대답하는 그이 대답을 이해하긴 하는 것인가? 그의 의아심하고는 상관없이 그녀는 엉뚱한 말까지 더 보탰다. 코끼리들이 스트레스를 받긴 받을 거예요. 이 지구상에선 커다란 것들이 점점 없어 다음엔 자신들이 소멸할 것이라는 걸 짐작하고선 그러는지도.

마치 냉장고 앞에 서 있는 그녀를 안으려나 가는 듯 그가 안으로 성큼 들어섰을 때 세면장에서 뭔가가 화다닥 움직이는 기척이 났다. 정말 그녀가? 순간 그의 가슴에 반가움이 흘렀다. 화수?

그는 얼른 세면장 안을 들여다봤다. 그녀는 없고 세면대 위 거울 앞에 그녀가 기르던 고양이가 등을 세우고 그를 쳐다보고 있다. 그렇겠지. 그는 멋쩍게 웃었다. 낮에 건물 뒤에 숨어서 그녀의 이삿짐이 트럭에 실려 떠나는 걸 두 눈으로 지켜보았으면서도, 그랬으면서도 그녀가 아직 여기에 있으리라고 생각하다니. 어둠 속에서 사삭, 거리고 있는 고양이 눈이 새파랗다. 그녀가 기르던 두 마리의 고양이 중 점박이다. 점박이는 그녀가 원래부터 기르던 고양이었다. 갈색 털에 흰색 털이 점처럼 박혀 있어 점박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녀가 트럭에 올라탔을 때 품에 안고 잇던 고양이는 희디 흰 것이었다. 그 흰 것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 그가 어느 식당에서 얻어 온 것이었다. 이제는 쟁쟁한 기타 리스트가 되어 있는 친구의 독주회에 갔다가 저녁을 먹으러 들른 식당에 새끼 고양이들이 다섯 마리나 있었다. 태어난 지 3주나 돼 다른 놈들은 활발하게 식당 손님들의 발 밑을 기어다니고 뛰어다니는데 온몸이 하얀 고양이 한 마리만 움직이지를 않고 주눅이 들어 웅크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새끼 고양이들을 귀여워하니까 음식 시중을 드느라 왔다갔다하던 주인이 기르고 싶으면 가져가라, 했다. 어여뻐 하면서도 막상 가져가라 하니까 누구도 선뜻 나서지를 않았는데 그이 입이 어느새 내가 한번 길러 볼까요. 말하고 있었다. 그는 여러 마리의 고양이 중 가만히 웅크리고만 있는 흰 고양이를 안고 왔다. 털이 희다고 그는 그 고양이를 흰순이라 불렀다. 흰순이는 순하고 얌전했다. 하지만 전혀 그를 따르지 않았다. 너무 어려서였을까, 흰순이는 그저 가만 웅크리고만 있었다. 아침마다 배달되는 우유를 반으로 나눠 마시고 고양이들은 통조림을 좋아 한다길래 슈퍼마켓에서 참치 통조림을 사와 접시에 조금씩 덜어 주었는데, 흰순이는 그가 옆에서 쳐다보고 있으면 그걸 먹지도 않았다. 그가 모른 척하고 있어야 겨우 조금 입에 댔다. 흰순이는 간섭할 필요가 조금도 없었다. 작은 모래 상자를 만들어 옆에 뒀더니 거기에 오줌도 누고 똥도 누고는 안 그런 척 열심히 덮어놓기까지 했다.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새벽에 눈을 떴는데 흰순이가 보이질 않았다. 어디에 있겠거니 했는데 오전 10시가 돼도 안 보였다. 출입구를 열어 두지 않은 이상 흰순이가 그이 방을 나갈 도리가 없는데 이 구석 저 구석을 다 들여다봐도 기척도 없었다. 그는 정말이지 그때 코미디언처럼 책상 서랍까지 열어 봤다. 그의 방은 7층이었고, 나가면 곧 찻길이었다. 오므리고 앉아 있는 것밖에 사회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던 흰순이가 방을 빠져나갔다면 어리둥절한 채 교통사고를 당했을 게 틀림없었다. 제발 방을 빠져나가지 않았기만을 바라며 그는 책 사이사이, 악보 사이사이까지 들여다봤는데도 없었다. 정오가 되었을까, 그렇게 찾아도 기척이 없던 흰순이가 어디선가 가르룽, 소리를 내는 게 아닌가. 소리 난 곳을 헤쳐 보니 악보들 사이사이 뒤켠 그이 옛사진들을 담아 놓은 노란 봉투 속이었다. 폭삭한 솜까지 깔아 준 집을 마다하고 흰순이는 그렇게 구석쟁이를 찾아 들어갔고, 그는 매일 구석을 쑤시고 다니느라 애를 먹었다. 흰순이는 책상 밑바닥에 달라붙어도 있었고, 싱크대 서랍에 들어가 있기도 했으며 이젠 그가 신지 않는 낡은 신발 속에 웅크리고도 있었다. 한번 구석을 파고들면 그가 찾아낼 때까지 거기 오므리고 앉아 있었다. 그게 저 사는 방법이었는지 몰라도 음식을 먹질 않으니 걱정이 드는 건 그이 성가심이었다. 그는 정말이지 그의 방에서 죽은 고양이를 집어내는 일 같은 건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겨우겨우 찾아내서 밥을 먹이곤 하는 일을 얼마간 하다가 그는 흰순이를 그녀에게 안고 갔다. 그녀가 흰순이의 터였을까? 흰순이는 그녀의 손안에서 금방 투실해서 어린 티를 벗었다. 처음에 흰순이 등장에 성을 돋우던 점박이는 나중엔 제 집을 흰순이에게 내주고 저가 냉장고 위나 신발장 위, 아니면 흰순이가 자고 있는 집 옆의 방바닥에서 잤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거울 속으로 비친 점박이의 등이 실제의 등과 겹쳐 점박이는 아주 커다랗게 보였다. 그가 세면장으로 들어가서 웅크리고 있는 점박이의 두 눈을 가리며 안아 내려니 점박이는 갑자기 베란다 쪽으로 화다닥, 튀어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점박이의 뒤를 따랐다. 한 마린지 두마린지 생쥐가 찌익- 소리를 내며 어디론 가로 사라졌다. 점박이는 아쉽다는 듯 생쥐가 사라진 쪽을 파란 광채의 눈으로 쏘아보고 있다. 아직도 쥐덫이 있군. 그는 점박이 뒤에 서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어지는 좁은 베란다 끝에 아직 쥐덫이 놓여져 있는 걸 쳐다봤다. 어느 날 그가 그녀에게 쥐가 있나 보다고, 아주 가까운 데서 생쥐 소리가 들린다고 해도 그녀는 설마 쥐가 있을라구요,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은 쥐덫을 사다 베란다에 설치한 뒤 노트에 썼다. 정말이었어요. 새벽에 세면장에서 생쥐가 비누를 갉아먹고 있는 걸 봤어요. 그는 새벽에 그녀의 세면장에서 비누를 갉아먹고 있는 생쥐의 모습이 어땠을까?를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떠올려지지가 않았다. 그는 쥐의 소리만 듣고 그녀는 쥐의 모습만 봤을 뿐이었다. 소리는 모습보다 질기다. 어느 날 새벽에 비누를 갉아먹느라 그녀에게 모습을 들킨 생쥐는 더 이상 음식이나 비누를 갉아먹지 않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랬다. 생쥐는 그녀가 귀머거리인 걸 알게 된 모양이었다. 쥐덫을 피해 구석구석 어딘 가로 생쥐는 찌익- 소리로만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모습이 안 보이니 그녀는 곧 생쥐도 쥐덫도 잊었다. 모습만 나타내지 않으면 생쥐는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를 완벽히 숨길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이 귓속에서 생쥐는 찌익 - 소리가 존재했다. 그녀가 못 보는 생쥐의 존재를 그 자신 혼자서 소리로 느끼며 그는 외로웠다. 그 외로움은 언젠가 한 여자가 느닷없이 그를 떠난다고 했을 때, 당신의 기타 소리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낍니다. 정중하게 말하고서 가 버렸을 때, 그가 그저 담배나 피우고, 얼마간 걸어다니다가 돌아와 기타를 치던 손톱을 깎고, 두 계절인가를 창 가까이에 앉아서 천정을 지나가는 거미나 바닥을 기어가는 바퀴벌레 같은 걸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을 때 느끼던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빈방에 앉아 그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낍니다. 라는 여자의 말을 웅얼거릴 때마다 마음에 스며들던 그것과. 이제 더 앉아 있지 말자, 무슨 일인가 하자, 마음먹으며 다시 기타를 메고 학원에 나갔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기타 소리가 더 좋아졌네, 그로서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는 생쥐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가르릉- 거리는 고양이를 향해 엎드렸다. 그이 손이 닿자 점박이는 이미 세운 등 더 세우고는 파다닥 튀어 나갔다. 점박이는 방바닥을 딛고, 창틀을 딛고, 그녀가 떼어 가지 않은 선반 위에 사뿐히 올라가 앉았다. 그곳에서 얇은 책 한 권이 툭 떨어졌다. 다가가서 집어 보니 몇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된 얇은 팩 속에 편지 봉투가 끼워져 있다. 그는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또 시작이군. 봉투 속의 편지를 꺼내려는데 그의 귓속으로 망치 소리가 신경을 끊듯 섞여 들었다. 도대체 저들은 벽에 무엇을 저토록 박는 걸까? 그녀와 함께 있을 때도 위층에서는 자주 벽을 망치로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곤 저들은 한번 망치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적어도 두 시간은 소리를 냈다. 두 시간 동안 내내 두들기는 건 아니었지만 십분 간격에 오 분 간격에 이십여 분 간격에 어김없이 쾅쾅 소리를 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다가, 다음에는 그 벽이 아니라 아래층 이 벽이 허물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다가, 그도 저도 지나가면 그댄 그 층의 벽이 망치에 얻어맞는 게 아니라, 그이 머리를 망치가 내려치는 것 같아졌다. 그 소리에 그는 괴로워 죽을 것 같은데 그녀의 검은 눈은 산 속처럼 고요했다. 그는 기가 막혀 노트를 꺼내 썼다. 저 소리가 안 들린단 말이야? 그러구선 내 기타 소리를 듣고는 어떻게 그토록 박수를 쳤지? 그녀가 받아썼다. 당신 손가락이 기타 위에서 소리를 냈어요. 나의 손가락이? 겉봉에는 어떤 글씨도 없다. 그는 벽에 등을 대고 앉아 봉투 속에서 편지를 꺼냈다. 편지지의 글자 위로 위층의 쾅쾅거리는 망치 소리, 어딘 가로 도망치는 생쥐의 찌익찌익 소리, 스튜디오 뜰의 거위가 화다닥 거리며 꽉- 하는 소리가 끼여들었다.

 

이 글을 그쪽이 읽게 될는지요.

한번은 그쪽이 이 빈집에 올 것이기에 나도 한번은 내 마음이 그쪽에게 읽힐 기회를 만들어 봅니다. 그쪽이 선반 위에 놓여질 이 편지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만이고 만약 발견한다면 내가 그쪽 몰래 이 집을 비우고 가는 것이 언젠가 한번 그쪽을 떠난 여자 때문이 결코 아님을 알아주세요.

 

그는 머리가 띵해 잠시 읽는 것을 멈췄다. 위층의 망치 소리가 천정을 흔들고 그가 기댄 벽을 흔들었다. 그 진동에 점박이가 놀라 그이 배 위로 폴짝 뛰어내렸다. 그는 지진 같은 진동을 이루는 망치 소리가 마치 자신의 손등을 내리치고 지나간 것 같은 타격을 느꼈다. 그녀가 그를 떠나간 여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가? 그는 다시 편지에 눈길을 돌렸다.

 

두통 때문이에요.

 

두통? 그는 눈을 번쩍 떴다. 두통 때문이라고? 그녀는 단 한번도 그에게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쪽에서 기타 줄 위에서 춤추듯 움직이는 그쪽 손가락을 보고 있으면 내 귀는 그 손가락들이 내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지만 나는 그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그쪽 손가락이 가장 자리에서 새어나오는 진짜 소리를 듣고 싶은 욕망이 싹텄어요. 그 소리 속에 사랑하고 욕망하고 후회하며 살아가는 모든 것이 다 담겨 있을 것만 같았어요. 나는 그날부터 두통에 시달렸어요. 그쪽의 손가락이 튕기는 소리를 한번만 한번만 내 귀로 듣고 싶어한 그 순간부터요. 어제는 한줌 먹은 알약을 토해 냈어요. 의사는 내가 마음속으로부터 아무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된다고 했어요. 그의 진단처럼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지요. 하지만 나날이 너무나 괴로워서 슬퍼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어요. 머리를 한쪽으로 매어 두고 두 손으로 꼭 껴안고 있어도 두통은 거기까지 따라와서 나를 한밤중에 침대에서 떨어뜨리곤 했어요. 머리 한 군데가 피투성이로 늘어진 것같이 아팠어요. 때로 바로 앞에 앉아 있는 그쪽도 알아보지 못했답니다. 울거나 웃으면 두통은 입 모양이 만들어지는 쪽으로 왈칵 쏠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답니다. 한번만 당신이 내는 소리를 듣고 싶어한 대가가 너무 슬퍼요. 너무 아파서 이젠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어느 날 자다가 일어나 찬물에 머리를 넣고 나와 머플러로 침대와 내 머리를 묶어 두고 배 위에 양손을 포개고서 한번만 그쪽 손가락이 내는 소리를 듣고자 했던 원을 놓았어요. 그러니 머리가 편안해졌습니다. 안녕, 내 사랑. 차라리 이 빈집에 들어와 이 편지를 읽지 말길. 내가 집 정리를 하는 줄 알면서도 그쪽의 또 다른 마음이 모른 척하였듯 차라리 내가 두통 때문에 그쪽을 버리고 가는 걸 영원히 모르길. 그러면 뒷날 그쪽 마음에 내가 가엾을는지.

 

아아아, 그는 소리를 지르며 편지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이 비명은 쾅쾅거리는 망치 소리를 이기지 못했다. 무엇에 놀랐는지 뜰의 거위들 꽉 외마디를 지르며 파드득거렸다. 망치의 쾅소리와 거위의 꽉 소리 사이로 어디선가 찌익하며 생쥐가 지나갔다.

 

철커덕 철커덕 지하철 지나가는 소리, 자동차 끼익 급정거하는 소리, 후다닥 계단을 뛰어가는 소리, 오래된 아파트 무너뜨리는 소리, 셔터 내리는 소리 속에 끼어 있을 때마다 그는 생각했었다. 저 소리 소리들이 결국 살아가고 싶은 욕망을 균열 지게 할 거 라고. 봄이 되도 햇볕이 들지 않는 그늘진 육교를 지나거나, 강습 시간은 늦었는데 트럭과 소형차들 속에 끼어 움직이지 않는 버스 기타를 메고 거리를 내다보면서도. 그런데 그녀는?

 

그랬으면서, 그가 사티의 짐노페디를 칠 때면 그 곁에 바짝 앉아 마치 자신의 귀에 기타 소리가 들리는 듯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짓다니, 사실은 그 미소가 한번만 그이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간절한 괴로움인 줄도 모르고서 손가락을 보고 있으면 소기가 들린 다는 그녀의 말을 단 한번 의심도 없이, 누구 앞에서보다 그녀 앞에서 손가락을 더욱 깊이 더욱 사삭거렸다니. 그럴수록 그녀의 두통이 더 깊어졌으련만. 편지를 든 채로 멍하니 앉아 있는 그에게로 점박이가 다가왔다. 그는 편지를 떨어뜨리고 점박이를 안았다. 그녀가 떠날 때 너는, 너는 어디 있었니. 그녀는 이삿짐을 실은 트럭을 기다리게 하고 흰순이를 품에 안은 채 애타게 점박이를 찾았다. 어딨니? 그녀는 점박이를 찾으려고 이미 열쇠를 채우고 나왔을 여기로 몇 번을 오르내렸고 트럭 위로 올라가 거꾸로 세워진 의자 사이, 탁자 사이 책 사이사이를 들여다보았고, 우편함까지를 열어 보았고, 어디 갔을까요? 방금 까지 있었는데 경비실을 서성였고, 딱 두 동밖에 없는 스튜디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스튜디오의 황폐한 겨울 뜰과 5층 꼭대기 옥상을 향해 어딨니?를 외쳐 대었다.

 

그는 점박이의 양 겨드랑에 손바닥을 집어넣고 그녀의 침대가 놓여 있던 자리에 길게 누웠다. 그는 그의 배 위에 점박이를 내려놓았다. 금세 점박이가 앉아 있는 자리에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배 위에 웅크리고 있는 점박이를 쳐다보았다. 너 그때 어디 있었어? 그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그녀의 살림이 빠져나간 일곱 평의 실내를 떠돌았다. 흰순이를 품에 안고 애타게 점박이를 찾고 있던 그녀의 초췌한 모습이 떠올라 그는 지금 그이 배 위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놈이 야속해졌다. 어떻게 들어왔을까? 현관문도 창문도 다 닫혀 있었는데 그는 망치 소릴 이제 혼자 들으며 자신의 손가락을 쳐다봤다. 그녀가 끼워 준 반지. 정말 아무것도 세상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느껴지던 날 금은방에 가서 사서 낀 거예요. 귓속의 깜깜한 칠혹을 이 반지가 위로해 줄 거라고 혼자 최면을 걸었죠. 그러고 나니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이 반지를 만지고 있으면 불안하지 않아요. 그는 말했었다. 앞으론 어쩔려고? 이젠 괜찮아요.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살 수 있어요. 무슨 힘으로? 그녀는 썼다. 그쪽이 내 곁에 있는 힘으로.

언제부턴가 자주 그녀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그랬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 눈물의 어림이 그치면 그녀가 가리란 것을. 그는 그녀가 풍기는 이별의 냄새 앞에 무얼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간 후로, 그저 담배를 피우고, 얼마간 걸어다니다가 돌아와 기타를 치던 손톱을 깎고, 한 계절이거나 두 계절 창 가까이에 앉아 있으리란 걸. 저것 봐라. 여기도 거미가 있지 않은가, 창문 위. 물방울무늬의 거미가 스륵, 제가 짜 놓은 거미줄을 타고 기어 내려오고 있다. 나무나 수풀, 돌 밑이 나 풀속, 바닷가나 사막, 물 속이거나 꽃 위가 아니라 저 거미는 왜 여기에서 기어다니는 건지. 그러다가 어느 날 이제 더 이상 앉아 있지 말자. 무슨 일인가 하자, 마음먹으며 다시 기타를 메고 학원에 나가면 그때도 사람들은 그를 향해 기타 소리가 더 좋아졌네. 그로서는 알 수 없는 말을 할 것이었다. 그는 점박이 머리를 쓰다듬던 팔을 아무렇게나 떨어뜨려 버렸다. 그의 팔은 그에게서 버림받고 바닥에 축 처졌다. 그이 눈에 흰순이를 품에 안고 이놈을 못 찾아 허둥거리던 그녀의 모습이 어려졌다. 찾다가 찾다가 다시 한 번 이미 열쇠를 채운 이 텅 빈 공간에 올라갔다 내려온 그녀는 체념한 듯 고갤 수그리며 인부들에게 품삯을 계산하는 것 같았고, 그리고는 다시 한 번 3층, 그들이 자주 창가의 의자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고 하던 그 창을 잠시 바라보더니 트럭에 올라탔었다. 그녀는 그 트럭 기사와 함께 오늘 종일 고속도로를 달렸을 것이다. 그녀가 이 도시를 아예 떠나겠다고 그에게 말한 바도 없는데 그이 생각은 그녀의 이삿짐을 실은 트럭은 이 도시의 톨게이트를 지나 온종일 고속도로를 달렸을 거라는 생각이다. 언젠가는요. 내가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그녀가 떠나온 곳이 어디인지 그는 모른다. 거기가 어딘데? 라고 그는 묻지 않았다. 단지 그곳이 아주 먼 곳일 거라는 생각, 여기 바깥일 거라는 생각, 그는 거기까지만 생각했다. 그녀가 그녀의 살림들을 싣고 고속도로로 나갔든 아니든 트럭기 옆에 앉은, 어딘 가로 옮겨가는 그녀 곁엔 그가 아니라 한 마리의 고양이가 있어 줬다. 품속에 그 고양이만이 따뜻한 체온으로 안겨 있었다. 어쩌면 지금쯤 그녀와 고양이 한 마리는 종일 고속도로를 달려. 지금쯤 그녀가 떠나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그녀의 그곳에 닿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낮에 함께 갔으면 너도 그랬을 텐데 너는 왜 여기 이 빈집에 홀로 있니? 그는 누운 채로 자신의 버려져 있는 듯한 팔을 모아 배 위의 고양이를 안았다. 고양이의 부드러운 등털 속에서 그녀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랬을 거라고, 그녀도 이렇게 어느 순간 순간을 이 부드러운 등털 속에 손을 묻으며 밤과 낮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는 얌전하게 점방이의 등을 만지고 있을 수가 없어졌다. 그의 손길에 힘이 들어가고 어지러워지니 천년이라도 그의 배위나 손바닥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을 것 같던 점박이는 그를 차내고 가볍게 창틀을 딛고 이젠 비어 있을 벽의 선반 위에 가 사뿐히 앉았다. 그가 그의 배 위를 떠나 버린 고양이를 누운 채 우두커니 올려다보고 있는데 포포롱 포포롱― 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새 소린 망치 소리에 섞여 그리고 거위 소리에 섞여 있어 생쥐 소리에 섞여 있어 그는 포포롱, 포포롱, 소리가 초인종 소리라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이 집에 초인종이 있었나? 그는 벌떡 일어섰다. 포포롱 포포롱 소리가 잠시 멎어 그는 잘못 들었나, 하는데 다시 포포롱 포포롱, 거린다. 혹시 그녀가? 그는 성큼성큼 현관 쪽으로 가 문을 땄다. 문 밖에 한 남자가 흰 마스크를 입에서 턱으로 밀어 내리고 있다. 누구세요? 관리실 직원이에요. 그런데? 소독 좀 하려구요? 그러고 보니 남자의 다른 손엔 분무기가 들려 있다. 그는 어이가 없어 분무기를 든 남자를 빤히 쳐다봤다. 밖에 아직도 눈이 내리는가? 남자의 어깨에 머리에 눈이 소복하다. 허연 남자는 그의 시선을 떨쳐 내고 그를 밀치고선 안으로 한 발 들어섰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그가 아아니, 하며 막은 손바닥이 남자의 가슴을 친 격이 되어 버렸다. 그의 제지에 남자가 멈칫 섰다.

잠시면 되는데요.

밤 열 시에 무슨 소득을 하겠다는 거요.

다른 집은 낮에 다 했는데 문이 잠겨서..... 경비원이 지금 문이 열렸다 길래..... 댁이 가면 또 잠길 것 같으니까.

소독 한번 안했다고 무슨 일 나오? 유령같이 한밤에 무슨 소독을 하겠다는 거요?

그는 말하고 나니 섬뜩해졌다. 정말 분무기를 들고 서 있는 남자가, 눈을 흰 모자처럼 쓰고 있는 남자가, 유령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유령 같은 남자를 밀어내고 문을 닫아 버렸다. 문이 닫힌 후에도 소독하는 걸 포기하지 못한 유령 같은 남자는 초인종을 다시 눌렀다. 포포롱 포포롱― 새우는 소리. 그녀는 듣지도 못하면서 초인종을 왜 달아 놨을까? 이 집에 들어올 때 그는 언제나 그녀가 어느 날 손바닥에 얹어 준 열쇠로 직접 따고 들어왔다. 관리인이 초인종을 누르기 전엔 이 집에 초인종이 달려 있었는지조차 그는 알지 못했다. 안에서 그가 대답이 없자, 밖에서 유령 같은 남자가 문을 주먹으로 쿵쿵 두드린다. 문 두드리는 쿵쿵, 소리는 쾅쾅거리는 망치 소리에 비하면 소리도 아니다. 유령 같은 남자는 그걸 알았는지 분무기를 들어 철제 현관문을 부술 듯 두드렸다. 발끈한 그는 안에서 따는 보조키를 따고 문 을 와락 밀쳤다. 그 바람에 유령 같은 남자는 소독 분무기를 든 채로 반은 넘어져 있다. 이 방은 소독할 거 없소! 문 두드리는 양으로 봐서는 지금 어떻게든 소독을 하고 갈 기세더니 유령 같은 남자는 몸을 일으키며 턱에 내려가 있는 마스크로 다시 입을 가리고는 힘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현관문의 보조키를 잠그고 그는 방으로 성큼 걸어 들어와 방 가운에 망치 소리와 거위 소리와 생쥐 소리 속에 오래 서 있었다.

한 시간이나 지난 후에 그는 그 자리에 스스륵 무너져 누웠다. 점박이가 요기롭게 가르릉, 거리며 선반 위에서 내려와 그의 이마 위에 몸을 오그리고 앉았다. 이마가 점박이의 발톱에 패인 듯 아파 왔다. 하지만 그이 팔은 방바닥에 버려져 있을 뿐 힘을 내어 이마에 앉아 있는 점박이를 들어올릴 줄을 몰랐다. 그가 겨우 점박이를 향해 혼잣말로 너, 저 편지를 내게 읽게 해주려 남아 있었구나, 하는데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던 점박이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부드러운 털 속에 숨기고 있던 발톱을 카르릉, 세우더니, 마치 금방 잡은 살코기를 팽개치듯 힘껏 그의 이마를 찼다. 아악, 그가 비명을 지르는 사이 고양이는 날듯이 창틀을 한번 딛고는 다시 선반 위로 옮겨가 앉았다. 점박이 발톱에 할퀴어진 그이 이마는 짝― 금이 가더니 금세 핏물이 그이 눈으로 흘러들었다. 그는 팔을 들어 팔 소매로 핏물을 닦았다. 자꾸만 핏물이 눈으로 들어가 그가 몸을 일으켜 고개를 숙이자 핏물이 방바닥에 투둑, 떨어졌다. 그는 얼굴을 천정을 향해 들고서 웃옷을 벗었다. 어깨선에서 소매가 붙어 있는 곳을 찢어 이마를 감싸서 뒤로 묶었다. 그렇게 그는 누워서 벽의 선반 위에 올라가 새파란 눈을 빛내고 있는 고양이를 올려다보았다. 너는, 너는 내 두 마음을 보았지? 붙잡고 싶으나 보내고도 싶은 내 두 마음을. 너는 알고 있지 마침내는 보내고 싶은 내 마음이 이기는 걸. 그른 방바닥에 팔을 버렸다. 점박이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두통을, 점박이는 보았을 것이다. 그녀가 밤에 자다가 일어나 기어서 세면장으로 기어가 찬물에 머리를 담그는 것, 머플러로 침대와 그녀의 머리를 꽁꽁 묶는 것을. 점박이는 느꼈을 것이다. 그녀가 한번만 그의 손가락이 내는 소리를 듣고 싶어한 것, 그녀 깜깜한 귓속 칠혹의 외로움을. 그래서 너 지금 내게 이러는 거다. 그럴 게다. 그녀. 여기에 앉아 책을 읽을 때도 그토록 머리가 아팠었을까? 그 아름다운 색색의 꽃들을 만들 때도? 그녀의 손끝은 마술에나 결린 듯 색색의 종이 위에서 섬세하고 빠르게 움직여 금세 꽃을 만들어 놨다. 장미, 안개, 아이리스, 백합, 그녀가 조용히 앉아 만든 꽃은 그녀 이모가 하는 서점을 겸한 장식품 가게에 진열되어 팔려 나가곤 했다. 책을 사러 온 손님들이 책을 구경하다 말고 그녀가 만든 꽃에 시선을 주면, 서점에서 책방 점원으로 서 있는 그녀를 두고도 그녀 이모는 말했다. 아름답죠, 귀머거리가 만든 꽃이랍니다. 그는 그녀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기타는 마음에다 대고 환하게 말하는 진짜 노래야. 아무리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거지. 라고 하지만 그가 한번 해야 할 말은 그 말이 아니었다는 걸 그는 느꼈다. 그가 했어야 할 말은 그녀가 꽃을 만들 때 나는 사삭사삭 소리에 대해서였다. 그 소리들이 얼마나 아늑한가에 대해 말했어야 했다.

그의 마음 깊게 반향 되어 외려 앞을 가리는 기타. 그는 악기 중에 피아노와 기타가 가장 좋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두 악기만이 화음과 멜로디 다 할 수 있는 것이라서, 였는가 보았다. 피아노가 멀어진 건 가지고 다닐 수가 없어서였다. 가지고 다닐 수 없는 피아노가 멀어지는 대신 기타는 그이 신체 중의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녀처럼.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서 떨어졌다. 헝겊으로 줄을 하나씩 훑어서 깨끗이 닦아주던 그녀가. 그는 팔을 바닥에 버린 채 소리 소리들 속에서 오래 그러고 있었다.

어느 땐가 그는 버려 놓은 양팔을 들어 허공을 향해 휘저어 보다가 손가락을 깍지껴 팔베개를 했다. 다시 얼마 후 그는 담배를 한대 피웠으면 싶었지만 팔을 푸는 게 귀찮아 그대로 가만있었다. 그가 그러고 있는 동안 창밖의 세상으로는 눈이 내렸다. (오랫동안 기타를 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그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 커피도 마셨으며 눈이 오는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기타를 치지 못했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 기타를 치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그때 알았다. 그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 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그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못할 것이다.) 저기가 텔레비전이 있던 곳, 오디오가 놓여 있던 곳, 그녀는 들리지도 않을 소리들을 언제나 켜 놓았다. 어느 땐 너무 크게 틀어 놓아 그가 볼륨을 줄여야 했을 정도였다. 저기는 이 인용 식탁과 의자가 있던 곳. 그는 빈방에 누운 채로 옷장이 빠져나간 곳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그는 가만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 빈 방안을 그는 성큼성큼 걸었다.

그녀가 식탁에 앉아 있다. 그녀가 옷장 문을 열고서 옷걸이를 꺼내 그의 웃옷을 받아 걸고 있다. 그녀가 거울 앞에 서서 로숀을 바르고 있거나, 그녀가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고 있다, 그녀가 세 면장 문을 빠끔히 열고 수건을 그에게 넣어 주다가 닿은 그의 손을 잡는다. 싶었을 때 그는 방바닥에 내팽개치듯 버려져 있는 그녀의 편지를 주워들었다. 그는 사진을 찍듯 선 채로 편지의 글씨들을 마음에 찍었다.

 

이 글을 그쪽이 읽게 될는지요.

한번은 그쪽이 이 빈집에 올 것이기에 나도 한번은 내 마음이 그쪽에게 읽힐 기회를 만들어 봅니다. 그쪽이 선반 위에 놓여질 이 편지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만이고 만약 발견한다면 내가 그쪽 몰래 이 집을 비우고 간 것이 언젠가 한번 그쪽을 떠난 여자 때문이 결코 아님을 알아주세요. 두통 때문이에요. 그쪽에서 기타 줄 위에서 춤추듯 움직이는 그쪽 손가락을 보고 있으면 내 귀는 그 손가락들이 내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지만 나는 그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그쪽 손가락이 가는 자리에서 새어나오는 진짜 소리를 듣고 싶은 욕망이 싹텄어요. 그 소리 속에 사랑하고 욕망하고 후회하며 살아가는 모든 것이 다 담겨 있을 것만 같았어요. 나는 그날부터 두통에 시달렸어요. 그쪽의 손가락이 튕기는 한 한번만 한번만 내귀로 듣고 싶어한 그 순간부터요. 어제는 한줌 먹은 알약을 토해 냈어요. 의사는 내가 마음속으로부터 아무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된다고 했어요. 그의 진단처럼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지요. 하지만 나날이 너무나 괴로워서 슬퍼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어요. 머리를 한쪽으로 가만히 두고 두 손으로 꼭 껴안고 있어도 두통은 거기까지 따라와서 나를 한밤중에 침대에서 떨어뜨리곤 했어요. 머리 한 군데가 피투성이로 늘어진 것같이 아팠어요. 때로 바로 앞에 앉아 있는 그쪽도 알아보지 못했답니다. 울거나 웃으면 두통은 입 모양이 만들어지는 쪽으로 왈칵 쏠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답니다. 한번만 당신이 내는 소리를 듣고 싶어한 대가가 너무 슬퍼요. 너무 아파서 이젠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어느 날 자다가 일어나 찬물에 머리를 넣고 나와 머플러로 침대와 내 머리를 묶어 두고 배 위에 양손을 포개고서 한번만 그쪽 손가락이 내는 소리를 듣고자 했던 원을 놓았어요. 그러니 머리가 편안해졌습니다. 안녕, 내 사랑. 차라리 이 빈집에 들어와 이 편지를 읽지 말길. 내가 집 정리를 하는 줄 알면서도 그쪽의 또 다른 마음이 모른 척하였듯 차라리 내가 두통 때문에 그쪽을 버리고 가는 걸 영원히 모르길. 그러면 뒷날 그쪽 마음에 내가 가엾을는지.

 

"이젠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부분의 '사람'이란 글씨에 핏물이 튀어 '람'자가 일그러져서는 '랑'으로도 읽혔다. 그가 핏물이 일그러뜨려놓은 부분을 이젠 사랑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라고 되읽고 있는 틈 망치의 쾅쾅 소리 사이로 고양이가 카르릉, 소리를 내며 뭐에 놀란 듯 팔짝 그의 어깨 위에 뛰어올랐다. 고양이를 놀라게 한 건 악― 비명을 지르며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소리였다. 그는 그이 어깨 위에 내려앉은 고양이와 함께 창가로 가서 바깥을 내다봤다.

 

광장이랄 것도 없는 스튜디오 앞 작은 뜰로 머리가 헤쳐지고 긴치마를 입은 여자가 눈이 쏟아지고 있는 뜰로 튀어나왔다. 차가운 눈바람이 여자의 치마를 위로 확 제치니 그 바람에 뜰에 내려앉아 있던 눈이 쿨렁거렸다. 수은등 불빛이 눈빛 위에 창백하게 쏟아지고 있다. 그 불빛에 비치는 살려줘요, 외치며 죽어라 도망치는 여자의 발은 눈 위에 맨발이었다. 온몸이 두려움에 질려 있는 여자의 맨발은 눈 위에 닿을 새도 없이 화다닥 내달렸다. 잠잠해져 있던 거위 우리 속에서 거위들이 동시에 후다닥거리며 꽉― 소리를 내질렀다.

 

아이구 이 사람들이 거위가 놀라잖우.

늙은 경비원이 뛰어나와 거위 우리로 가는데, 맨발의 여자가 뜰을 막 돌아서는데.

거기 섰지 못해.

사나운 소리와 함께 여자가 튀어나온 자리에서 시커먼 남자가 튀어나왔다. 거위들이 다시 후다닥거리며 꽉― 질겁했다.

이 사람들아.

늙은 경비원은 마치 남자가 여자를 향해서가 아니라 거위 우리를 향해 뛰어오기라도 하는 양 눈발 속에서 거위 우리를 가로막고 섰다. 거위 우리를 늙은 몸으로 막고 서 있는 경비원과 사납게 여자를 뒤쫓아가는 성난 남자를 쳐다보는 그의 머리가 띵했다. 저게 뭔가. 눈 속에서 여자를 뒤쫓아가는 남자의 손에서 뭔가 섬뜩하게 번득였다. 처음에는 눈빛인가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가 팔을 저으며 내달릴 때마다 휘둘러지며 푸른빛을 냈다. 설마, 그는 한 걸음 물러섰다. 그것이 식칼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그는 그만 아득해졌다. 거위 우리를 막고 서 있던 늙은 경비원도 남자의 손에 들려진 것이 식칼인 줄을 알았던지 그 자리에 철버덕 주저앉아 버렸다. 그는 놀란 가슴으로, 그의 어깨 위의 고양이는 새파랗게 광채를 내며, 식칼이 어둠 속에서 휘둘러 질 때마다 내는 칼빛을 창가에 서서 쳐다보았다.

저 남자는 저 여자를 붙잡으면 정말로 저 식칼을 내꽂을 것인가? 얼마 후에 그도 거위 우리 앞의 늙은 경비원처럼 창틀 밑에 철버덕 주저앉아 버렸다. 그 통에 그때껏 그의 어깨 위에 파란 눈빛을 내며 앉아 있던 고양이가 가르릉, 거리며 바닥으로 뛰어 내렸다. 처음 보는 싸움 구경이 아니다. 저들은 자주 저렇게 싸웠다. 윗집도 아니고 아랫집도 아니고 옆동인데도 그들의 싸우는 소리는 요란하게 벽을 뚫고 들려 왔다. 그러다가 가끔 저렇게 살려줘― 외마디 소 지르며 여자가 아파트 뜰로 튀어나왔고, 뒤이어 남자가 거기 섰지 못해, 를 외치며 따라나왔다. 그녀는 창에 서서 그들을 구경하다가 늘 피식 웃곤 했다. 그가 왜 웃는가? 물으면 그녀는 그럼 울까요? 했다. 빈손으로가 아니라 식칼을 들고 여자를 쫓아가는 남자를 보고도 그녀는 웃을까? 싸움 때마다

살려줘― 하는 여자의 외마디를 듣지 못한다 해도 저 남자의 손에 들려진 저 식칼은 보일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웃을까? 웃는 그녀를 보고 그가 여전히 왜 웃는가 물을 수 있을까? 그때도 그녀는 그럼 울까요? 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괜찮아. 괜찮다. 주저앉혀진 몸을 일으켜 세워 다시 창밖을 내다보니 남자가 휘두른 식칼에 놀라 거위 우리 앞에 폭삭 무너졌던 늙은 경비원이 바닥에서 겨우 몸을 일으켜서는 거위들을 달래고 있다. 도망치는 여자와 식칼을 들고 쫓아가는 남자와 거위를 달래고 있는 늙은 경비원과는 상관없이 눈은 하염없이 내렸다. 바람이 불 때면 순간 순간 눈은 그가 서 있는 창으로 달려와 판화처럼 어렸다. 그는 주저앉아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었다. 그녀의 편지가 얌전히 끼워져 있던 단편소설 책 저만치 내팽개쳐져 있다. 그는 편지를 처음과 같이 책에 끼워 두었다. 그가 그러고 있는 동안 위층의 쾅쾅 망치 두들기는 소리, 스튜디오 뜰의 거위가 꽉― 거리는 소리, 어디선가 생쥐가 찌익― 하며 몸을 숨기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빈방에 홀로 앉아 있는 그의 귀에 망치, 거위, 생쥐 소리들이 채워져 그는 감각을 잃어 가며 앉아 있다.

그가 편지를 다시 끼워 넣은 책갈피를 막 닫을 때였다. 그의 옆에 등을 세운 채 가만히 앉아 있던 고양이가 현관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 움직임이 얼마나 날새던지 휙― 바람이 일었다. 점박이는 현관문 밑을 발톱으로 마구 긁어 댔다. 그러다간 그를 돌아다봤다. 점박이 눈의 새파란 광채가 더욱 파래져 있었다. 고양이가 이상해 그는 몸을 일으켰다. 분명 바깥에서 긁는 소리다. 무슨 소리지? 망치, 거위, 생쥐 소리들 사이로 문 긁는 소리는 신선하게 끼어들었다.

누구요?

그의 목소리가 새 나가자 조용하다. 그러다가 다시 문을 긁기 시작한다. 무얼까? 그는 조심스럽게 보조키를 따로 현관문을 밀었다. 문밖에 희디흰 고양이 한 마리가 긴장한 채 앉아 있다. 그녀가 안 트럭에 올랐던 고양이 흰순이다. 안의 점박이는 바깥의 흰순이를 보자마자 야용, 몸을 완전히 말았다가 폈다. 점박이는 흰순이에게 화다닥 달라붙어 나뒹구는데 흰순이는 무엇에 질린 둣 등을 세운 채 꼼짝 않고 있다. 그는 눈이 휘둥그래 진 채 두 고양이들을 내려다봤다. 두 고양이들을 밀어서 안으로 들여놓고 그는 어두운 계단을 쳐다봤다. 누군가 돌아온 고양이 뒤에 서 있을 것 같았는데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어둡기만 하다.

 

그가 다시 문을 닫고 들어왔을 때도 흰순이는 세운 등을 펴지 않고 질려 있다. 점박이만 흰순이에게 몸을 비비며 발을 들어 얼굴을 쓸어 보고 드러누웠다가는 발딱 일어나며 흰순이와 한몸이되어보려 하지만 흰순이의 몸은 외려 바들바들 떨리기까지 했다. 그는 돌아와서 떨고 있는 흰순이의 머리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얼마나 먼 밤길을 달려왔는지 등의 털이 차갑디 차갑다. 너 왜 그러니? 그는 흰순이의 목을 만지고 등을 쓸어 내리다가 섬뜩했다. 흰순이의 등에 붉은 핏방울이 점점으로 떨어져 있다. 흰털에 바싹 말라붙어 있긴 했으나 그건 분명 핏방울이었다. 그가 핏방울을 내려다보자 점박이도 피냄새를 맡았는지 수선을 그치고는 흰순이의 등털에 말라붙은 핏방울을 핥아 본다. 무엇을 본 게야? 그는 흰순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점박이는 핏방울을 핥다 말고 흰순이의 얼굴에 제 얼굴을 대며 시무룩해졌다. 그렇게 얌전히 그에게 목이며 등에 얼굴을 대보던 점박이가 갑자기 등이 휘도록 몸을 사리더니 베란다 쪽으로 홱 내달렸다. 그 날쌤 사이로 생쥐의 찌익 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찌익 찍― 거리는 소리엔 두려움이 섞여 있다. 점박이다 그렇게 홱 내달아도 흰순이는 가만있다. 그가 점박이를 따라가보니 베란다의 쥐덫에 생쥐 세 마리가 갇혀 있다. 쥐덫 바깥에서 발을 동동거리고 있던 어미 쥐는 그와 고양이의 출현에 기겁을 한 듯 몸을 사리면서도 새끼가 갇힌 쥐덫 곁을 떠나지 못하고 질려 있다. 카르릉 카르릉, 덫에 갇힌 생쥐와 어미 쥐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물어뜯고 싶은 점박이는 베란다 문을 사납게 긁어 대며 몸을 부딪혔다. 그는 베란다 문을 더울 꽉 잠그며 점박이를 안으로 몰랐다. 겁에 질린 어미 쥐가 잠시 옆 벽으로 물러섰다가는 다시 쥐덫 가까이로 다가오며 까만 두 눈으로 그를 쏘아봤다. 흰순이의 등에 떨어진 핏방울을 핥아 줄 때만 해도 다정히 느껴지던 점박이가 얼마나 맹수 같은지, 그는 순간 자신이 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고맙게 여길 지경이었다. 점박이는 숨기고 있던 발톱과 이빨을 들어내고 화다닥 문 위로 튀어 올랐다가 그의 머리고 팔딱 내려앉았다가 다시 문을 요란하게 긁어 댔다. 그 통에 그의 이마에 동여매져 있던 셔츠 팔 소매가 풀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점박이를 향해 꽥 소리를 지르면서 안으로 몰 떨어진 피묻은 셔츠 팔 소매를 주워 다시 이마에 친친 맸다.

안으로 몰아도 다시 베란다 창으로 향하는 점박이를 안으로 몰고 몰다가 그는 현관문 곁에 세워 둔 기타를 들고와 기타 집에서 기타를 꺼냈다. 그의 손가락이 다섯 개의 기타 줄을 퉁겼다. 그가 그녀의 청에 의해 기타를 켤 때 그녀의 무릎 위에 나란히 웅크린 채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그녀 대신 그의 기타 소리를 들던 점박이였다. 그는 덫에 갇혀 온몸이 겁으로 단단해진 생쥐들이 찌익 찍― 거리는 소리 속에서, 윗층의 탕탕거리는 망치 소리에 약이 올라 등털과 꼬리털이 뻣뻣해진 점박이의 카르릉 카르릉 소리 속에서, 피묻은 셔츠의 팔소매를 이마에 동여맨 채로 세살 때 실명한 로드리고의 아라훼스 협주곡을 튕겼다. 로드라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눈으로 어떻게 왕궁의 영화와 향수를 느낄 수 있었을까. 그래, 거기라면 고원 여기저기에 왕궁이 흩어져 있는 아란훼스라면,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여 있는 아란훼스라면. 왜 달라졌을까? 처음 그녀가 그의 손가락을 봤을 때 그녀는 그의 손가락 움직임만 보고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는데, 무엇이 그 소리를 넘어 그녀로 하여금 한번만, 이라는 원을 품게 하였을까.

 

그의 손가락은 그의 슬픔을 타고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러나 봄이 오면, 혹은 여름이 오면, 가을이거나 겨울이 오면, 다시 또 봄이 오거나 여름이 오면, 가을이 오면, 혹은 겨울이 오면 가 볼지도 모를 스페인의 사방에 흩어져 있는 고성과 폐허, 아란훼스나 알함브라 궁전에서 있을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그의 추억을 연주했다. 거위와 생쥐와 어미 쥐와 고양이와 망치 소리를 상대로 기타를 뜯는 그의 모습은 고즈넉했으나, 그의 손은 그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음량을 어느 순간 넘어가고 있었다.

 

창에 어리는 눈처럼 그의 마음에 그녀가 어렸다. 스페인에 가면 시작만 할 것이야. 곡이 끝난다는 이미지조차 머릿속에서 지워 버릴 것이야. 시계는 열둘까지의 숫자를 두 번 돌면 하루가 지날 테지만, 스물 여덟 번 돌면 쉽사리 일이 잘 테지만, 그곳에서 나는 그것을 거스를 것이야. 내 소리로 시간을 정할 것이야. 그의 기타 소리가 깊어지자, 베란다 문 앞에서 발광을 하던 점박이가 천천히 돌아와 흰순이의 등에 제 얼굴을 묻고 땅바닥에 이따금 바르르, 떨던 흰순이가 먼저 잠들었다. 이어 점박이가 잠들었다. 쥐덫 속의 생쥐가 잠들고, 어미 쥐가 갇힌 새끼들 곁에서 잠들고, 윗층의 망치 소리가 잠들었다. 싱크대 밑의 바퀴벌레와 천정을 기어가던 거미도 납작하게 엎디어 잠들었다. 그래, 소리여, 자유로이 쾅쾅, 찌익찍, 꽉, 찌익, 가르릉, 을 넘어가라, 울타리를 넘고, 하수구를 넘고, 공기를 넘고, 행렬을 넘고, 자꾸만 멀리 가서, 그녀의 귓결, 그 어두운 속에 닿아라. 그는 기타를 기타 집에 넣어 어깨에 메고, 그녀의 편지가 끼워진 책을 처음대로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방안의 불을 끄고 쥐나 고양이가 잠이 깨지 않게 가만가만 걸어 문밖으로 나와 빈집의 문을 잠그는데 옆집에서 막 켜는 텔레비전 자정 뉴스 소리가 확 퍼져나왔다.

 

....오늘 전라남도 광양의 국도에서 1.5톤 트럭이 눈길에 미끄러져 가로변이 미루나무를 박고 추락해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운전기사로 보이는 남자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고,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사망했습니다. 트럭에 이삿짐이 실려 있는 걸로 보아 이사중이었던 것 같은데 남자가 중상이라 아직 정확한 신원이 밝혀지질 않고 있습니다. 사고 시간은 오후 6시로 추정되고 발견된 시간은 밤 10시경입니다. 늦게 발견된 것이 여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 같습니다........

그는 진저릴 쳤다.

밤 10시라면? 관리인이 분무기를 들고 소독을 하겠다고 하던 무렵이었다. 그는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여자가 그녀라는 법이 있나? 다짐을 두는데 그이 안에서 또 다른 얼굴이 반문했다. 그녀가 아니라는 법은 또 어디 있지? 그는 경비실 앞을 지났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가 뜰의 거위 우리 앞을 지나려니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늙은 경비원이 그이 이마에 매져 있는 피묻은 셔츠 팔 소매를 올려다봤다. 경비원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상관 않고 눈을 맞으며 순하게 잠든 거위만 들여다봤다.

이상한 일이구랴, 갑자기 이리 순하게 잠들다니.

그는 눈 속에 서서 그녀가 살았던 3층을 한번 올려다봤다. 그녀가 없는 빈집의 창은 어두웠다. 빈집을 뒤로하고 고개를 떨구는 그이 내부가 빈집만큼 어두워졌다. 그가 막 스튜디오 입구를 빠져나가는데 순하게 잠든 거위 우리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늙은 경비원이 놀란 듯 외쳤다.

스페인은 언제 가시우?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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