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중의 사씨남정기 줄거리 읽기

2008. 2. 26. 12:17마음의 양식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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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大明) 가정연간(嘉靖年間) 금릉 순천부에 유현(劉炫)이라는 명환이 있었다. 늦게야 일자를 낳고 연수라 이름하였다. 유공의 부인 최씨는 연수를 낳아 놓고 자라는 것도 보지 못하고 졸하였다. 연수의 나이 10세에 이르매 문장재화(文章才華)가 대성하여 향시(鄕試)에 장원급제하고, 15세에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급제하였다. 그는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었으나 연소(年少)하므로, 10년을 더 수학하고 나서 출사(出仕)하겠다고 천자에게 상소하였다. 천자는 특별히 본직(本職)을 띠고 6년 동안의 여가를 준다.
유한림(劉翰林)은 섭덕(涉德)과 재학(才學)을 겸비한 사씨와 결혼하였다. 금실이 좋았으나 사씨는 유씨 가문에 들어온 지 9년이 되어도 출산을 못한다. 사씨는 후일 조상의 향화(香火)를 받들지 못할까 근심한 나머지 유한림을 권하여 새로이 여자를 보게 하였다. 유한림은 거절했으나 여러 번 권하매 마지 못하여 교씨(喬氏)라는 처녀를 맞아들인다.
교씨는 천성이 간악하고 질투와 시기심이 강한 여자였다. 겉으로는 사씨를 존경하는 척하나 속으로는 증오하였다. 그러다가, 잉태하여 아들을 출산하고는 자기가 정실(正室)이 되려고 마음먹고, 문객(門客) 동청(董淸)과 모의하여 남편 유한림에게 사씨를 가지가지로 참소한다. 유한림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부정한 자취를 드러내어 모략하는 데는 마음이 굳은 유한림도 미혹되어, 그 모략을 사실로 알고는 사씨를 폐출(廢黜)시키고 곧 교씨를 정실로 맞이한다.
남편 유한림에게 축출을 당한 사씨는 남으로 남으로 정처없는 방랑을 계속하면서도 온갖 풍파와 고난을 겪는 가운데 몇 번이나 자살하려고 한다. 자살하려고 할 때마다 신명의 계시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순제(舜帝)의 두 비(妃)인 아황, 여영의 혼령의 교시를 받고 어느 산사에 들어가서 의탁하게 된다.
정실 사씨를 축출하는데 성공한 교씨는 자기가 정실이 되었으나, 그의 간악은 그에 그치지 않고, 다시 문객 동청과 간통하면서 유한림을 귀양 보내고 유한림의 전재산을 탈취해 가지고 도망가서 살기로 약속하고는, 유한림을 천자에게 참소하여 원배(遠配)시키는 데 성공한다.
문객 동청은 유한림의 천자에 대한 불평을 고발했다는 공에 의하여 지방관이 되어 부임하게 된다. 그는 유한림의 전재산을 가지고 교씨와 같이 부임하다가, 도중에서 강도를 만나 전재산을 다 빼앗기고 궁경(窮境)에 빠진다 이 때, 조정에서는 유한림에 대한 혐의가 풀려 소환하고, 충신을 참소한 동청은 처형하기고 한다.
정배(定配)를 당한 유한림은 비로소 교씨와 동청의 간계(奸計)에 속은 줄 알고 전죄(前罪)를 대오(大悟)한다. 마침 조정에서 해배(解配)의 통지가 왔는지라, 고향으로 돌아와서 사방으로 탐문하여 사씨의 행방을 찾는다. 한편, 남편 유한림이 해배되어 돌아왔다는 소문을 들은 사씨는 산사에서 나와 남편을 찾으러 나선다. 사씨와 유한림은 도중에서 해후한다. 유한림은 사씨에게 전죄(前罪)를 사과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간악한 교씨와 동청을 잡아 처벌하고 나서 사씨를 다시 정실로 맞이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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