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20억 수렁'서 기적같은 탈출

2008. 1. 26. 16:19편리한 생활정보

잘나가던 직장인이 있었다. 성실과 신의로 위 아래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았다. 속한 직장은 톱 클래스였다. 월급 많이 주고 회사의 전망 역시 밝았다. 그런데 어느날 사표를 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신용불량자와 다름없는 '적자인생'으로 추락했다. 그러다 인생역전을 했고, 지금은 훨훨 날고 있다.

'참좋은여행'사 윤대승 대표의 요약본 이력이다. 대체 직장을 관둔 이유는 뭐고, 빚더미에 앉게된 사연은 뭘까.

현재 '참좋은여행'사는 국내 9천여 개의 여행사 중 상위 5위에 랭크되어 있다. 요즘엔 코스닥 '위즈정보기술'의 자회사로 편입되었다. '10배수' 가까이 자금을 유치했다. 출범후 10년의 활주로를 타고 마침내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한 셈이 됐다.

돌이켜보면 10년의 세월 중 절반은 활주로라기 보다 터널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혜롭게 헤쳐나왔다. 멋진 단어를 써서 그렇지 어디 지혜로 표현될 낭만은 전혀 없다. 예컨대 윤대표는 현재의 심정을 이렇게 한마디로 표현한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입니다."

86년 대학 졸업후 윤대승은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대학 입학할 당시 막연한 정치의 꿈(정외과 졸업)은 가슴 속에 묻고 평범한 직장인이 됐다. 직장에서 잘 나갔다.

여객담당 카운터에서 기획파트까지 다양하게 업무를 경험한 뒤 당시 새로 생긴 아시아나 항공사에 스카우트되어 이직했다. 아시아나는 신규 항공사였기에 대우가 좋았다. 일 하는 재미를 느끼며 열심히 직장 생활을 했다. 뭐 하나 부러울 게 없는 그 시절엔, 불과 몇 년후 닥칠 거센 비바람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어느 날이었다. 윤대승은 아시아나 직장 동료인 대만인 친구로부터 사업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들었다. 20만 달러의 자금을 대겠다는 것이었다. 조건은 없었다. 뭘 바라고 한 일이라기보다 '잘 할 것 같으니깐 밀어준다'는 의도였다.

평소 사업에 적성이 맞는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지만, 윤대승은 그 제안을 흘려버리지 못했다. 뭘 막 시작할만큼 '준비된 사업가'가 아니었기에, 사업을 하려는 후배에게 자금을 대줬다. 그렇게 해서 예식 이벤트 사업이 시작됐다.

그런데 사단이 났다. 후배는 불성실했고, 사업에 무지했다. 종자돈은 1년만에 날라갔고, 이후 수억의 적자가 쌓였다. 그 상황에서 선택은 하나였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빚을 갚기위해 사무실 키를 건네받아야 했다. 그 좋은 직장을 그렇게 허무하게 나왔다.

수습하려고 뛰어든 사업은 하마처럼 돈을 집어삼켰다. 빚을 막기위해 아는 사람 돈을 '투자'받고, 나중엔 사채까지 끌어썼다. 이미 빠져버린 수렁에서 좀처럼 헤어나올 수 없었다. 결국 부채는 눈덩이처럼 쌓여 20억 가까이가 됐다.

흥미로운 점은 8년의 직장생활 동안 쌓은 신용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인간성이 나빠 돈을 빌릴 데가 없었으면, 그 사태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그 신용은 나중에 복으로 돌아왔다. 사업이 실패하자 전 직장 동료들과 상사들은 회사 복귀를 권했다. 그러나 거절했다. 윤대승 대표의 말.

"죽어도 사업하다 죽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사업한다고 그 많은 돈을 퍼부었는데, 중도에 그만둘 수 없었지요. 끝장을 봐야겠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아시아나를 나와 사업을 시작한 뒤 5-6년은 정말 악몽같은 세월이었습니다."

'참좋은여행' 윤대승 대표에게 90년 초에서 중반까지 기간은 암흑이었다. 뜻하지 않게 시작한 사업이 유능하고 성실한 샐러리맨을 벼랑으로 내몰았다.

당시 300만원 보증금에 40만원짜리 지하 셋방에서 살았다. 사채업자에게 쫓기며 불면의 밤을 지새웠다. 그 때문에 몸이 많이 망가졌다.

아는 사람들로부터 빌린 사업자금이 가장 큰 마음의 짐이었다. 자신을 믿고 돈을 투자한 친구와 전 직장 동료들을 위해 어둡고 긴 터널을 고독하게 헤쳐나갔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거듭된 고민 속에서 얻은 결론은 여행업이었다. 가장 잘 아는 분야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창업의 최우선 고려사항 역시 바로 '아이템'에 대한 경험치다.

"바닥 아니 그 이하의 마이너스에서 시작한 새 사업이었습니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잃을 것도 없었죠."

96년에 발을 들여놓은 여행사업은 뿌리를 내릴 즈음 IMF라는 복병을 만났다. 경기에 민감한 여행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외국에 나가는 여행객이 없으니 또다시 망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인 법.

"IMF가 오히려 기회가 됐습니다. 항공 티켓만 팔다가 여행상품을 직접파는 여행사로 변신을 하게 된 것이죠. 아는 사람을 통해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신문 광고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2000년 창업 때 지은 '태승관광개발'이라는 상호를 현재의 '참좋은여행'사로 바꿨다.

모든 사업이 그렇듯 난관은 여전했다. 하지만 죽기살기 식으로 매달린 사업은 서서히 열매를 맺어갔다. 거기엔 직장 다닐 적에 쌓은 신용이 큰 도움이 됐다.

"이전에 다녔던 직장(항공사) 동료나 상사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못난 저를 믿고 큰 힘이 되어 주었죠."

영문으로 ‘Very Good Tour'인 '참좋은여행'은 부인이 지어준 것으로 윤대표의 마음에 쏙 들어왔다.

"여행업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서비스를 하는 것이 여행업의 목적이라고 생각했지요. 고객이 부담하는 비용 이상으로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편안하고 감동이 있는 여행, 바로 그것입니다."

후발주자가 시장에 진입할 때 필요한 게 차별화다. 천편일률적인 여행 상품을 다변화하고 경쟁력 확보에 주력했다. 2000년 이후 회사는 쑥쑥 자라 현재는 130여명이 일하는 '빅5'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윤대표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현재 우리 여행업은 아직 완숙된 시장이 아닙니다. 좀 더 멀리 나가고 좀 더 깊이있게 나가야합니다."

여행업은 국내의 다양한 전통과 문화, 트렌드에 연계된 여행상품을 발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윤대표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윤대표는 여기에 시야를 지구촌으로 넓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계적 여행사로 발돋움할 꿈을 가지고 있다.

최근 회사는 '위즈정보기술'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코스닥에 우회상장됐다. 새 도약을 위한 안정된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따뜻했던' 직장을 나와 혹독한 수업료를 지불하며 얻은 귀한 열매다.

'747이론'이란 게 있다. 비행기처럼 이륙후 곧바로 일정 궤도에 진입해야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윤대표는 날지 못하고 퍼덕거리는 새처럼 많은 시간을 소비한 후에야 비상의 기쁨을 맛보았다. 하지만 앞으로의 인생과 사업에 있어서의 '긴 여행'을 상상한다면 그 시간들은 참으로 '짧은 이륙'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이 없는 자가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참좋은여행'의 윤대승 대표는 직원들에게 해줄 삶의 조언 하나를 부탁하자 이렇게 말했다.

잘나가는 직장인에서 사업에 손을 댔다 밑바닥까지 추락했고, 이후 10년만에 성공한 사업가 소리를 듣는 한 회사의 대표가 하는 말인 만큼 남다른 느낌을 준다. 다음은 윤 대표와 일문일답.

-후배 직장인들에게 해줄 말이 있나요.

"일단 꿈을 가져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구체적인 상상'을 하지않는 것 같습니다. 진지하지 않은 것 같구요. 성공이란 말만 하면 뭘 합니까.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이 있어야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목표를 크게 잡으란 이야깁니다. 생각해 보세요. 60살이 됐을 때 매달 1천만원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과 1백만원을 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르지 않겠습니까."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생활을 패턴화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아침 일찍 출근해야하는 샐러리맨이라면, 저녁에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패턴화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어떤 직원이 호감이 갑니까.

"눈에 기운이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뭔가를 할려는 마음이 있으면 눈빛이 달라집니다. 예컨대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은 눈빛이 다르죠. 회사에 대한 열정이 있으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회사가 성장하는데 사내에선 어떤 '비책'을 쓰셨습니까.

"나름대로 월급을 무리할 정도로 많이 줘왔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주면서 좀 더 일하도록 했죠. 동기부여가 되니 뜻을 먼저 알고 열심히 해줬습니다. 회사가 잘 된 것은 직원들 덕분이기도 하죠."

-아들이 사업을 한다면 어떻게 하실건가요.

"무조건 말려야죠.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똑같은 논리로 사업체를 물려줄 생각도 없습니다.

-사업가 이전의 직장인 시절 모습은 어땠습니까.

"글세요. 사업가적이 기질은 있었나 봅니다. 남보다 일처리를 시원스럽게 해줬습니다. 예스나 노가 분명했고, 옳다고 생각한 일이면 남들 보기에 모험스런 일도 너끈히 해냈습니다."

'평생 직장'이 사라진 요즘, 직장생활과 사업 사이에서 갈등하는 직장인들이 적지않다. 윤대표의 다음과 같은 생각은 충분히 귀담아 들을 가치가 있다.

"사업은 다이나믹하죠. 성취감이 큽니다. 그 점이 대기업 임원과 다른 것 같습니다. 34살에 사업을 시작했는데, 늦었으면 아마 재기불능이었을 것 같습니다.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니 친구들이 실무자들이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업이란 게 초기엔 열정으로 할지 모르지만,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초인적인 힘이 있어야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대한항공에서 아시아나로 직장을 옮길 때 농담삼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한항공에선 사장을 안시켜 줄 것 같다. 하지만 아시아나에 가면 사장되는 꿈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사업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사업 초기엔 서너명 데리고 사업하는 친구들이 너무 존경스러웠습니다. 사업은 구도의 길이고 사업가는 구도자입니다. 사업가는 도를 닦듯 청렴하고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합니다. 직원들을 돈 벌게 해주는게 리더의 의무입니다."

윤 대표는 최근 '기억에 남는 책' 한권으로 '순종'을 꼽았다.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경우에 따라선 삶에 대한 생각이 바뀔 지 모른다는 말을 덧붙였다. 윤 대표의 인터뷰를 마치고 오는 길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