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이 읽어야할 소설 현진건/운수 좋은 날

2008. 1. 8. 05:59마음의 양식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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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이 날이야말로 동소문(東小門) 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김 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문안에(거기도 문밖은 아니지만) 들어간답시는 앞집 마나님을 전찻길까지 모셔다 드린 것을 비롯으로, 행여나 손님이 있을까 하고 정류장에서 어정어정하며, 내리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교원인 듯한 양복쟁이를 동광 학교(東光學敎)까지 태워다 주기로 되었다.

첫째 번에 삼십 전, 둘째 번에 오십 전―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흉치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한 김 첨지는 십 전짜리 백동화 서 푼 또는 다섯 푼이 ‘찰각’ 하고 손바닥에 떨어질 때,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더구나, 이 날 이 때에 이 팔십 전이라는 돈이 그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몰랐다. 컬컬한 목에 모주 한 잔도 적실 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앓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도 사다 줄 수 있음이다.

그의 아내가 기침으로 쿨룩거리기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조밥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약 한 첩 써 본 일이 없다. 구태여 쓰려면 못 쓸 바도 아니로되, 그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信條)에 어디까지 충실하였다. 따라서, 의사에게 보인 적이 없으니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으되, 반듯이 누워 가지고, 일어나기는커녕 세로에 모로도 못 눕는 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병이 이대도록 심해지기는 열흘 전에 조밥을 먹고 체한 때문이다. 그 때도 김 첨지가 오래간만에 돈을 얻어서 좁쌀 한 되와 십 전짜리 나무 한 단을 사다 주었더니, 김 첨지의 말에 의지하면, 그 오라질 년이 천방 지축(千方地軸)으로 냄비에 대고 끓였다. 마음은 급하고, 불길은 달지 않아 채 익지도 않은 것을, 그 오라질 년이 손가락은 고만두고 손으로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불거지도록 누가 빼앗을 듯이 처박질하더니만, 그 날 저녁부터 가슴이 땡긴다, 배가 켕긴다.

“에이, 오라질 년, 조랑복은 할 수가 없어. 못 먹어 병, 먹어서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루 뜨지 못해!”

하고, 김 첨지는 앓는 이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홉뜬 눈은 조금 바루어졌건만 이슬이 맺히었다. 김 첨지의 눈시울도 뜨근뜨근한 듯하였다.

이 환자가 그러고도 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다.

“이런 오라질 년! 조밥도 못 먹는 년이 설렁탕은, 또 처먹고 지랄을 하게.”

라고 야단을 쳐 보았건만, 못 사 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설렁탕을 사 줄 수도 있다. 앓는 어미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개똥이(세 살먹이)에게 죽을 사 줄 수도 있다.――팔십 전을 손에 쥔 김 첨지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땀과 빗물이 섞여 흐르는 목덜미를 기름주머니 다 된 왜목수건으로 닦으며, 그 학교 문을 돌아 나올 때였다. 뒤에서 ‘인력거!’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난다. 자기를 불러 멈춘 사람이 그 학교 학생인 줄 김 첨지는 한 번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학생은 다짜고짜로,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요?”

라고 물었다. 아마도 그 학교 기숙사에 있는 이로, 동기(冬期) 방학을 이용하여 귀향하려 함이리라. 오늘 가기로 작정은 하였건만, 비는 오고 짐은 있고 해서 어찌할 줄 모르다가, 마침 김 첨지를 보고 뛰어나왔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왜 구두를 채 신지도 못해서 질질 끌고, 비록 고쿠라 양복일망정 노박이로 비를 맞으며 김 첨지를 뒤쫓아 나왔으랴.

“남대문 정거장까지 말씀입니까?”

하고, 김 첨지는 잠깐 주저하였다. 그는 이 우중(雨中)에 우장도 없이 그 먼 곳을 철벅거리고 가기가 싫었음일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고만 만족하였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러고 집을 나올 제 아내의 부탁이 마음에 켕기었다.――앞집 마나님한테서 부르러 왔을 제, 병인(病人)은 그 뼈만 남은 얼굴에 유일의 생물 같은 유달리 크고 움푹한 눈에 애걸하는 빛을 띠며,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제발 덕분에 집에 붙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라고 모기 소리같이 중얼거리고 숨을 그르렁그르렁하였다. 그 때에 김 첨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아따, 젠장맞을 년, 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맞붙들고 앉았으면 누가 먹여 살릴 줄 알아?”

하고 훌쩍 뛰어나오려니까, 환자는 붙잡을 듯이 팔을 내저으며,

“나가지 말라도 그래. 그러면 일찍이 들어와요.”

하고 목메인 소리가 뒤를 따랐다.

정거장까지 가잔 말을 들은 순간에, 경련적으로 떠는 손, 유달리 큼직한 눈, 울 듯한 아내의 얼굴이 김 첨지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그래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란 말이오?”

하고 학생은 초조한 듯이 인력거꾼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잣말같이,

“인천(仁川) 차가 열한 점에 있고, 그 다음에는 새로 두 점이던가?”

라고 중얼거린다.

“일 원 오십 전만 줍지요.”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김 첨지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 엄청난 돈 액수에 놀래었다. 한꺼번에 이런 금액을 불러라도 본 지가 그 얼마만인가! 그러자, 그 돈 벌 용기가 병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내로 어떠랴 싶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 일, 제 이의 행운을 곱친 것보담도 오히려 갑절이 많은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하였다.

“일 원 오십 전은 너무 과한데.”

이런 말을 하며 학생은 고개를 기웃하였다.

“아니올시다. 이수(里數)로 치면 여기서 거기가 시오 리나 넘는답니다. 또, 이런 진 날은 좀 더 주셔야지요.”

하고 빙글빙글 웃는 차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러면, 달라는 대로 줄 터이니 빨리 가요.”

관대한 어린 손님은 이런 말을 남기고, 총총히 옷도 입고 짐도 챙기러 제 갈 데로 갔다.

그 학생을 태우고 나선 김 첨지의 다리는 이상하게 거뿐하였다. 달음질을 한다느니보다 거의 나는 듯하였다. 바퀴도 어떻게 속히 도는지, 구른다느니보다 마치 얼음을 지쳐 나가는 스케이트 모양으로 미끄러져 가는 듯하였다. 언 땅에 비가 내려 미끄럽기도 하였지만.

이윽고 끄는 이의 다리는 무거워졌다. 자기 집 가까이 다다른 까닭이다. 새삼스러운 염려가 그의 가슴을 눌렀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이런 말이 잉잉 그의 귀에 울렸다. 그리고 병자의 움쑥 들어간 눈이 원망하는 듯이 자기를 노리는 듯하였다. 그러자, ‘엉엉’ 하고 우는 개똥의 곡성을 들은 듯싶다. ‘딸꾹딸꾹’ 하고 숨 모으는 소리도 나는 듯싶다.

“왜 이러우, 기차 놓치겠구만.”

하고, 탄 이의 초조한 부르짖음이 간신히 그의 귀에 들어왔다. 언뜻 깨달으니, 김 첨지는 인력거 채를 쥔 채 길 한복판에 엉거주춤 멈춰 있지 않은가.

“예, 예.”

하고, 김 첨지는 또 다시 달음질하였다. 집이 차차 멀어갈수록 김 첨지의 걸음에는 다시금 신이 나기 시작하였다. 다리를 재게 놀려야만, 쉴 새 없이 자기의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을 듯이.

정거장까지 끌어다 주고, 그 깜짝 놀란 일원 오십 전을 정말 제 손에 쥐매, 제 말마따나 십 리나 되는 길을 비를 맞아가며 질퍽거리고 온 생각은 아니 하고, 거저나 얻은 듯이 고마웠다. 졸부나 된 듯이 기뻤다. 제 자식 뻘밖에 안 되는 어린 손님에게 몇 번 허리를 굽히며,

“안녕히 다녀옵시오.”

라고 깍듯이 재우쳤다.

그러나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며 이 우중에 돌이킬 일이 꿈 밖이었다. 노동으로 하여 흐른 땀이 식어지자 굶주린 창자에서, 물 흐르는 옷에서 어슬어슬 한기가 솟아나기 비롯하매, 일 원 오십 전이란 돈이 얼마나 괴치 않고 괴로운 것인 줄 절절히 느끼었다. 정거장을 떠나가는 그의 발길은 힘 하나 없었다. 왼 몸이 옹송그려지며, 당장 그 자리에 엎어져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젠장맞을 것! 이 비를 맞으며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고 돌아를 간담. 이런 빌어먹을, 제 할미를 붙을 비가 왜 남의 상판을 딱딱 때려!”

그는 몹시 홧증을 내며, 누구에게 반항이나 하는 듯이 게걸거렸다. 그럴 즈음에 그의 머리엔 또 새로운 광명이 비쳤나니, 그것은 ‘이러구 갈 게 아니라, 이 근처를 빙빙 돌며 차오기를 기다리면, 또 손님을 태우게 될는지도 몰라.’란 생각이었다. 오늘은 운수가 괴상하게도 좋으니까, 그럴 요행이 또 한번 없으리라고 누가 보증하랴. 꼬리를 굴리는 행운이 꼭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내기를 해도 좋을 만한 믿음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고, 정거장 인력거꾼의 등쌀이 무서우니 정거장 앞에 섰을 수는 없었다. 그래, 그는 이전에도 여러 번 해 본 일이라, 바로 정거장 앞 전차 정류장에서 조금 떨어지게, 사람 다니는 길과 전찻길 틈에 인력거를 세워 놓고, 자기는 그 근처를 빙빙 돌며 형세를 관망하기로 하였다. 얼마 만에 기차는 왔다. 수십 명이나 되는 손이 정류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손님을 물색하는 김 첨지의 눈엔, 양(洋)머리에 뒤축 높은 구두를 신고 망토까지 두른 기생 퇴물인 듯, 난봉 여학생인 듯한 여편네의 모양이 띄었다. 그는 실근실근 그 여자의 곁으로 다가들었다.

“아씨, 인력거 아니 타시랍시요?”

그 여학생인지 만지가 한참은 매우 태깔을 빼며 입술을 꼭 다문 채 김 첨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김 첨지는 구걸하는 거지나 무엇같이 연해 연방 그의 기색을 살피며,

“아씨, 정거장 애들보담 아주 싸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댁이 어디신가요?”

하고, 추근추근하게도 그 여자의 들고 있는 일본식 버들고리짝에 제 손을 대었다.

“왜 이래, 남 귀치않게.”

전차는 왔다. 김 첨지는 원망스럽게 전차 타는 이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전차가 빡빡하게 사람을 싣고 움직이기 시작하였을 제, 타고 남은 손 하나이 있었다. 굉장하게 큰 가방을 들고 있는 걸 보면, 아마 붐비는 차 안에 짐이 크다 하여 차장에게 밀려 내려온 눈치이었다. 김 첨지는 대어 섰다.

“인력거를 타시랍시요.”

한 동안 값으로 승강이를 하다가, 육십 전에 인사동까지 태워다 주기로 하였다. 인력거가 무거워지매, 그의 몸은 이상하게도 가벼워졌다. 그리고 또 인력거가 가벼워지니 몸은 다시금 무거워졌건만, 이번에는 마음조차 초조해 온다. 집의 광경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어, 이제 요행을 바랄 여유도 없었다. 나무 등걸이나 무엇 같고 제 것 같지도 않은 다리를 연해 꾸짖으며 갈팡질팡 뛰는 수밖에 없었다. “저놈의 인력거꾼이 저렇게 술이 취해 가지고 이 진땅에 어찌 가노.”라고 길 가는 사람이 걱정을 할이만큼 그의 걸음은 황급하였다. 흐리고 비 오는 하늘은 어둠침침하게 벌써 황혼에 가까운 듯 하다. 창경원(昌慶苑) 앞까지 다다라서야 그는 턱에 닿은 숨을 돌리고 걸음도 늦추 잡았다. 한 걸음 두 걸음 집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마음조차 괴상하게 누그러졌다. 그런데 이 누그러움은 안심에서 오는 게 아니요, 자기를 덮친 무서운 불행을 빈틈 없이 알게 될 때가 박두한 것을 두리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불행에 다닥치기 전, 시간을 얼마쯤이라도 늘리라고 버르적거렸다. 기적(奇蹟)에 가까운 벌이를 하였다는 기쁨을, 할 수 있으면 오래 지니고 싶었다. 그는 두리번두리번 사면을 살피었다. 그 모양은 마치 자기 집― 곧 불행을 향하고 달아가는 제 다리를 제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으니, 누구든지 나를 좀 잡아 다고, 구해 다고, 하는 듯하였다.

그럴 즈음에, 마침 길가 선술집에서 그의 친구 치삼이가 나온다. 그의 우글우글 살찐 얼굴에 주홍이 듣는 듯, 온 턱과 뺨을 시커멓게 구레나룻이 덮였거늘, 노르탱탱한 얼굴이 바짝 말라서 여기저기 고랑이 파이고, 수염도 있대야 턱 밑에만, 마치 솔잎 송이를 거꾸로 붙여 놓은 듯한 김 첨지의 풍채하고는 기이한 대상을 짓고 있었다.

“여보게 김 첨지, 자네 문안 들어갔다 오는 모양일세그려. 돈 많이 벌었을 테니 한잔 빨리게.”

뚱뚱보는 말라깽이를 보던 맡에 부르짖었다. 그 목소리는 몸집과 딴판으로 연하고 삭삭하였다. 김 첨지는 이 친구를 만난 게 어떻게 반가운지 몰랐다. 자기를 살려 준 은인이나 무엇같이 고맙기도 하였다.

“자네는 벌써 한 잔 한 모양일세 그려. 자네도 오늘 재미가 좋았나버이.”

하고 김 첨지는 얼굴을 펴서 웃었다.

“아따, 재미 안 좋다고 술 못 먹을 낸가. 그런데 여보게, 자네 온몸이 어째 물독에 빠진 새앙쥐 같은가? 어서 이리 들어와 말리게.”

선술집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 김, 석쇠에서 뻐지짓뻐지짓 구어지는 너비아니 구이며 저육이며 간이며 콩팥이며 북어며 빈대떡……. 이 너저분하게 늘어놓인 안주 탁자. 김 첨지는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할 양이면, 거기 있는 모든 먹음먹이를 모조리 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하되, 배고픈 이는 위선 분량 많은 빈대떡 두 개를 쪼이기로 하고, 추어탕을 한 그릇 청하였다. 주린 창자는 음식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 들이라 하였다. 순식간에 두부와 미꾸리 든 국 한 그릇을 그냥 물같이 들이켜고 말았다. 셋째 그릇을 받아들었을 때, 데우던 막걸리 곱배기 두 잔이 더웠다. 치삼이와 같이 마시자, 원원이 비었던 속이라 찌르르 하고 창자에 퍼지며 얼굴이 화끈하였다. 눌러 곱배기 한 잔을 또 마셨다.

김 첨지의 눈은 벌써 개개풀리기 시작하였다. 석쇠에 얹힌 떡 두 개를 쭝덕쭝덕 썰어서 볼을 불룩거리며, 또 곱배기 두 잔을 부으라 하였다.

치삼은 의아한 듯이 김 첨지를 보며,

“여보게, 또 붓다니, 벌써 우리가 넉 잔씩 먹었네. 돈이 사십 전일세.”

라고 주의시켰다.

“아따 이놈아, 사십 전이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돈을 막 벌었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느니.”

“그래, 얼마를 벌었단 말인가?”

“삼십 원을 벌었어, 삼십 원을! 이런 젠장맞을, 술을 왜 안 부어……. 괜찮다, 괜찮아. 막 먹어도 상관이 없어. 오늘 돈 산더미같이 벌었는데.”

“어, 이 사람 취했군. 고만두세.”

“이놈아. 그걸 먹고 취할 내냐. 어서 더 먹어.”

하고는 치삼의 귀를 잡아치며 취한 이는 부르짖었다. 그리고 술을 붓는 열대여섯 살 됨 직한 중대가리에게로 달려들며,

“이놈, 오라질 놈, 왜 술을 붓지 않어.”

라고 야단을 쳤다. 중대가리는 희희 웃고, 치삼을 보며 문의하는 듯이 눈짓을 하였다. 주정꾼이 이 눈치를 알아보자 화를 버럭 내며,

“네미를 붙을 이 오라질 놈들 같으니, 이놈 내가 돈이 없을 줄 알고.”

하자마자 허리춤을 흠칫흠칫하더니 일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중대가리 앞에 털썩 집어던졌다. 그 사품에 몇 푼 은전이 ‘찰그랑’ 하며 떨어진다.

“여보게, 돈 떨어졌네. 왜 돈을 막 끼얹나.”

이런 말을 하며 치삼은 일변 돈을 줍는다. 김 첨지는 취한 중에도 돈의 거처를 살피려는 듯이 눈을 크게 떠서 땅을 내려다 보다가, 불시에 제 하는 짓이 너무 더럽다는 듯이 고개를 소스라치자 더욱 성을 내며,

“봐라, 봐!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돈이 없나? 다리 뼉다구를 꺾어 놓을 놈들 같으니.”

하고 치삼의 주워 주는 돈을 받아,

“이 원수엣 돈! 이 육시를 할 돈!”

하면서 풀매질을 친다. 벽에 맞아 떨어진 돈은 다시 술 끓이는 양푼에 떨어지며, 정당한 매를 받는다는 듯이 ‘땡’ 하고 울었다.

곱배기 두 잔은 또 부어질 겨를도 없이 말려 가고 말았다. 김 첨지는 입술과 수염에 붙은 술을 빨아들이고 나서, 매우 만족한 듯이 그 솔잎 송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또 부어, 또 부어.”

라고 외쳤다.

또 한 잔 먹고 나서 김 첨지는 치삼의 어깨를 치며, 문득 깔깔 웃는다. 그 웃음소리가 어떻게 컸던지, 술집에 있는 이의 눈은 모두 김 첨지에게로 몰리었다. 웃는 이는 더욱 웃으며,

“여보게, 치삼이, 내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할까. 오늘 손을 태고 정거장까지 가지 않았겠나.”

“그래서?”

“갔다가! 그저 오기가 안 됐데그려. 그래, 전차 정류장에서 어름어름하며 손님 하나를 태울 궁리를 하지 않았나. 거기 마침 마마님이신지 여학생님이신지――요새야 어대 논다니와 아가씨를 구별할 수 있던가――망토를 잡수시고, 비를 받고 서 있겠지. 실근실근 가까이 가서 ‘인력거 타시랍시요’ 하고 손가방을 받으라니까, 내 손을 탁 뿌리치고 홱 돌아서더니만 ‘왜 남을 이렇게 귀찮게 굴어!’, 그 소리야말로 꾀꼬리 소리지, 허허!”

김 첨지는 교묘하게도 정말 꾀꼬리 같은 소리를 내었다. 모든 사람은 일시에 웃었다.

“빌어먹을 깍쟁이 같은 년, 누가 저를 어쩌나. ‘왜 남을 귀찮게 굴어!’ 어이구, 소리가 채산이도 없지. 허허.”

웃음 소리들은 높아졌다. 그러나 그 웃음 소리들이 사라지기도 전에 김 첨지는 훌적훌적 울기 시작하였다.

치삼은 어이없이 주정뱅이를 바라보며,

“금방 웃고 지랄을 하더니 우는 건 또 무슨 일인가?”

김 첨지는 연해 코를 들이마시며,

“우리 마누라가 죽었다네.”

“뭐, 마누라가 죽다니, 언제?”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예끼, 미친 놈, 거짓말 마라.”

“거짓말은 왜, 참말로 죽었어. 참말로……. 마누라 시체를 집에 뻐들쳐 놓고 내가 술을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

하고, 김 첨지는 영영 소리를 내어 운다.

치삼은 흥이 깨어지는 얼굴로,

“원, 이 사람이, 참말을 하나 거짓말을 하나? 그러면 집으로 가세, 가.”

하고, 우는 이의 팔을 잡아당기었다.

치삼의 잡는 손을 뿌리치더니, 김 첨지는 눈물이 걸신걸신한 눈으로 싱그레 웃는다.

“죽기는 누가 죽어.”

하고, 득의 양양.

“죽기는 왜 죽어. 생때같이 살아만 있단다. 그 오라질 년이 밥을 죽이지. 인제 나한테 속았다. 인제 나한테 속았다.”

하고, 어린애 모양으로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 사람이 정말 미쳤단 말인가. 나도 아주먼네가 앓는단 말은 들었는데.”

하고, 치삼이도 어느 불안을 느끼는 듯이 김 첨지에게 또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안 죽었어. 안 죽었대도 그래.”

김 첨지는 홧증을 내며 확신 있게 소리를 질렀으되, 그 소리엔 안 죽은 것을 믿으려고 애쓰는 가락이 있었다. 기어이 일 원어치를 채워서 곱배기 한 잔씩 더 먹고 나왔다. 궂은비는 의연히 추적추적 내린다.

김 첨지는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 가지고 집에 다다랐다. 집이라 해도 물론 셋집이요, 또 집 전체를 세든 게 아니라 안과 뚝 떨어진 행랑방 한 칸을 빌어 든 것인데, 물을 길어 대고 한달에 일 원씩 내는 터이다. 만일 김 첨지가 주기를 띠지 않았던들, 한 발을 대문 안에 들여놓았을 때, 그 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靜寂)―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에 다리가 떨리었으리라. 쿨룩거리는 기침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깨뜨린다느니 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빡빡’ 소리는 빨 따름이요, ‘꿀떡꿀떡’ 하고 젖 넘어가는 소리가 없으니, 빈 젖을 빤다는 것도 짐작할는지 모르리라.

혹은, 김 첨지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며,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 난장맞을 년, 남편이 들어오는데 나와 보지도 안 해, 이 오라질 년.’ 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 오는 무시무시함을 쫓아 버리려는 허장 성세(虛張聲勢)인 까닭이다.

하여간, 김 첨지는 방문을 왈칵 열었다. 구역을 나게 하는 추기(麤氣)―떨어진 삿자리 밑에서 올라온 먼지내, 빨지 않은 기저귀에서 나는 똥내와 오줌내, 가지 각색 때가 켜켜이 앉은 옷내, 병인의 땀 썩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김 첨지의 코를 찔렀다.

방 안에 들어서며 설렁탕을 한 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런 오라질 년, 주야 장천(晝夜長川)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 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 때에, ‘빡빡’ 소리가 ‘응아’소리로 변하였다. 개똥이가 물었던 젖을 빼어 놓고 운다. 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 붙여서 운다는 표정을 할 뿐이라, ‘응아’ 소리도 입에서 나는 게 아니고 마치 뱃속에서 나는 듯하였다. 울다가 울다가 목도 잠겼고, 또 울 기운조차 시진(澌盡)한 것 같다.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남편은 아내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그야말로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들어 흔들며,

“이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 년!”

“…….”

“으응, 이것 봐, 아무 말이 없네.”

“…….”

“이년아, 죽었단 말이냐. 왜 말이 없어?

“…….”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죽었나 버이.”

이러다가, 누운 이의 흰 창이 검은 창을 덮은, 위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루 보지 못하고 천정만 보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롱어롱 적신다. 문득 김 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줄거리

김 첨지는 인력거꾼이었다. 장사가 잘 안되어 며칠 동안이나 돈 구경을 옳게  못했는데, 이 날은 이상하다고 하리만큼 운수가 좋았다. 앞집 마나님을 위시해서 교원인 듯 싶은 양복장이를 학교까지 태워다 주고서는 첫 번에 삼십 전, 둘째 번에 오십 전 도합 팔십 전을 벌었다.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  앓아 누워 있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을 사다 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의 아내는 앓아 누운 지 오래 되었다. 거기다 약 한첩을 못 쓰니 완치가 되기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졸라댔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비를 그냥 맞으면서 학생을 남대문 정거장까지 태워다 주고서 일 원 오십 전이란 큰 돈을 받았다. 기뻤다. 한편으로는 겁이 나기도 했다. 오늘따라 운수가 너무 좋으니 말이다.

더구나, 아침에 나올 때 아내가 오늘은 제발 나가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머리에 떠올랐다. 정거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커다란 짐을 가진 손님을 한 사람 태워다 주었다. 기적 같은 벌이었다. 아무래도 이 기쁨이 계속되지 않을 것 같았다. 불행이 곧 덜미를 내리짚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차에 마침 길가 선술집에서 나오는 그의 친구인 치삼이를 만났다. 그대로 끄고 들어가 곱배기로 넉 잔을 마셨다. 눈이 개개 풀렸다. 머리를 억누르는 불안을 풀어 버리기 위해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다가 금방 껄껄거리며 웃고, 그러다가는 또다시 목놓아 울기도 하며 법석을 떨었다. 김 첨지는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이래야 남의 행랑방이었다. 너무 조용하다. 다만 어린애의 빈 젖 빠는 소리가 날뿐이었다. 김 첨지는 목청을 있는 대로 내어 욕을 퍼부으며 발을 들어 누운 아내의 다리를 찼다. 그러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무등걸과 같다. 아내는 죽어 있었다.

어휘 및 구절 이해

첨지(僉知) : 나이 든 사람을 낮추어 칭하는 말로서 ‘영감’의 속어

마마(媽媽) : 존엄하고 귀한 여인을 높여 부르는 칭호

댓바람 : 원래 어의는 ‘맨 먼저’, 여기서는 ‘단숨에’, ‘한꺼번에’의 의미로 쓰임

백동화(白銅貨) : 구리, 아연, 니켈의 합금으로 된 돈

모주(母酒) : 약주를 뜨고 난 후의 밑술을 말함

오라질 : 욕설로 ‘못된 짓을 하여 오랏줄로 묶여 갈’의 뜻을 가짐

천방지축(天方地軸) : 어리석은 사람이 주책없이 덤벙거림

조랑복 : 짧은 동안의 복. ‘조롱복’이라고도 함

푼푼하다 : 모자라는 것이 없어 넉넉하여 마음이 느긋한 상태

왜목수건(倭木手巾) : 광목으로 된 수건

코쿠라[小倉(소창)] : ‘코쿠라오리’의 준말로 일본 코쿠라 지방에 나는 무명 옷감

노박이로 : 잇대어 있는 붙박이처럼

우장(雨裝) : 비를 맞지 않게 입는 옷

케이었다 : ‘켕기었다’의 사투리로서 무엇인가 꺼림칙스러워 마음이 불편한 상태를 말함

혈마 : ‘설마’의 옛말로서 여기서는 ‘어떠랴’와 호응 관계

깝치다 : ‘꼽치다’(갑절을 하다)의 방언투

차부(車夫) : 마차나 소달구지 등을 부리는 사람

거뿐하다 : ‘거분하다’의 센말로 ‘가볍다’의 의미

졸부(猝富) :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

재우치다 : 행동을 빨리하여 몰아치는 모습

옹송거리다 : (추위나 두려움 때문에) 몸을 궁상맞게 움츠리고 있는 상태

홧증(火症) :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화를 벌컥 내는 증세

게걸거리다 : 상스러운 말로 불평, 불만을 늘어놓으며 자꾸 대드는 것

요행(僥倖) : 예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얻은 행운

물색(物色) : 사람이나 사물을 찾아 고르는 것

양머리 : 서양식으로 만든 머리

퇴물(退物) : 물리침을 받은 사물

난봉 : 헛되고 방탕하게 하는 짓거리, 또는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

실근실근 : ‘슬근슬근’의 사투리

버들고리짝 : 옷을 넣기 위해 고리버들가지로 짠 고리

두리다 : ‘두려워하다’의 옛말

달아가다 : ‘달려가다’의 사투리

우글우글 : 주름이 마구 잡힌 모양

말 : ‘마당[場(장)]’의 의미를 가진 옛말. 여기서는 ‘하던 순간에’의 뜻

삭삭하다 : 연하고 매우 부드러운 상태

너부안굴 : 쇠고기를 양념하여서 구운 것으로 ‘너비아니 구이’의 사투리

먹음먹이 : 음식 먹는 자세나 만드는 범절을 나타낸 말. 여기서는 ‘먹음직스러운 것’의 의미

꼬바기 : 있는 그대로 기다리거나 새우는 상태나 어떤 것이 넘치는 모습. 여기서는 후자로 해석한다.

원원(元元)이 : 본래부터

쭝덕쭝덕 : 연한 사물을 큼직하게 칼로 써는 모양

사품 : 어떤 사내나 일어나는 계제나 바람

일변(一變) : 사태나 일이 아주 달라지는 것, 또는 한 번 상황이 바뀌는 것

풀매질 : ‘팔매질’의 사투리

어름어름하다 : 어설픈 행동을 우물쭈물하게 하다

논다니 : 웃음과 몸을 파는 여인

채산(採算) : ①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계산. ② 여기서는 ‘채신’ 또는 ‘처신(處身)’을 경멸하여 가리키는 말

걸신걸신하다 : ‘글썽글썽하다’의 사투리

득의양양(得意揚揚) : 소원하던 일이 이루어져서 우쭐거리며 뽐내는 모양

생때같다 : 몸이 튼튼하고 병 없이 건강하다

가락 : 일의 능률이나 상태

의연히 : 태도가 건실하고 단단함

추적추적 :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소리

허장성세(虛張聲勢) : 실속 없이 헛소문과 허세만 떠벌림

추기(麤氣) : 거칠어서 곰살갑지 못한 기습(氣習)

삿자리 :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켜켜이 : 여러 켜마다. 구석구석. 속속들이

주야장천(晝夜長川) : 밤낮으로 쉬지 않고 잇달아서

시진(澌盡) : 기운이 다 빠져 없어짐

흰 창 : ‘흰자위’의 방언. 눈알의 흰 부분

치뜨다 : 눈을 위쪽으로 향하고 뜨다

어룽어룽 : 점(點)이나 무늬 따위가 고르고 배게 촘촘한 모양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 날씨가 사실적으로 묘사한 배경 부분으로,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조팝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 : 조밥이나마 먹는 때보다 굶는 때가 더 많은 가난한 처지를 말한다.

그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 : 약으로 병을 고치게 되면 재미가 붙어 병이 자꾸 걸린다는 의미로, 우직한 주인공의 성격을 보여 주는 구절. 주인공의 이런 생각이 그의 가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냄비에 대고 끓였다. : 너무 가난해서 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하다가 모처럼 밥을 먹게 되어 앞뒤 가릴 사이도 없이 허둥대며 서두르는 모습

앓는 이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 가난과 궁핍에 대한 노여움을 엉뚱하게 아내에게 풀고 있는 모습

그는 이 우중(雨中)에 우장도 없이 그 먼 곳을 철벅거리고 가기가 싫었음일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고만 만족하얐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 갑자기 찾아 온 행운들 앞에서, 김 첨지가 당황하고, 어떻게 할지 몰라서 망설이는 내면적 상태를 표현한 부분이다.

“일 원 오십 전만 줍지요.”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김 첨지의 입에서 떨어졌다. : 돈을 벌기 싶은 욕구와 한편으로는 빨리 돌아가 아내를 간호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주인공이 갖는 심리적 갈등이 표현되어 있다.

정거장 인력거꾼의 등쌀이 무서우니 : 인력거꾼들이 장사하는 장소에 대해 텃세를 부렸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양머리에 뒤축 높은 구두를 신고 망토까지 두른 기생 퇴물인 듯, 난봉 여학생인 듯한 여편네 : 1920년대 초의 차림새를 묘사함. 인물에 대한 주인공의 생각이 다소 경멸적인 표현 부분이다.

인력거가 무거워지매, 그의 몸은 이상하게도 가벼워졌다. 그리고 또 인력거가 가벼워지니 몸은 다시금 무거워졌건만, : 인력거라는 객관적 사물을 매개로 하여 김 첨지의 내면적 갈등을 표현했다.

우글우글 살찐 얼굴에 주홍이 듣는 듯, 온 턱이 뺨을 시커멓게 구레나룻이 덮였거든 : 친구 치삼의 얼굴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부분. 다소 둔하고 비현실적인 인물로 표현되어 있다.

노르탱탱한 얼굴이 바짝 말라서 여기저기 고랑이 파이고, 수염도 있대야 턱밑에만, 마치 솔잎 송이를 거꾸로 붙여 놓은 듯한 : 치삼과 대조적인 김 첨지의 외양을 묘사한 부분으로, 매우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인물을 연상시킨다.

마음대로 할 양이면, 거기 있는 모든 먹음먹이를 모조리 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 하루 종일 노동에 시달려도 허기진 상태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허탈감을 먹고 싶은 욕구로 표현하였다.

거기 마침 마마님이신지 여학생님이신지 ― 요새야 어대 논다니와 아가씨를 구별할 수 있던가? ― 망토를 잡수시고, : 서구 문물의 도입으로 복장도 변하여, 신분에 의한 사회 계층 간의 구분이 없어져서 혼란된 상태를 알 수 있다.

소리가 채산이도 없지. : 양장 여인의 목소리가 가볍고 경박하여 점잖지 못하다는 뜻으로 풍자성이 들어 있다.

마누라 시체를 집에 뻐들쳐 놓고 내가 술을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 : 아내가 죽은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으나 병중에 있는 아내를 돌보지 않은 채, 돈 벌려 나와서 술이나 마시는 김 첨지의 심리적 갈등이 고백적으로 나타난 부분이다.

“안 죽었어, 안 죽었대도 그래.” 김 첨지는 홧증을 내며 확신 있게 소리를 질렀으되, 그 소리엔 안 죽은 것을 믿으려고 애쓰는 가락이 있었다. : 병중에 아내가 끝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그래도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엇갈린 김 첨지의 심리 상태가 드러났다.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 가지고 집에 다다랐다. : 만취가 된 몸인데도 불구하고 아내가 먹고 싶어하던 설렁탕을 잊지 않고 사들고 오는 김 첨지의 인간미를 나타낸 구절이다.

그 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靜寂)―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 : 아내가 죽은 뒤의 적막하고 처절한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누운 이의 흰 창이 검은 창을 덮은, 위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 눈을 까뒤집고 죽은 아내의 죽음을 확인하자마자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 : 김 첨지가 겪었던 하룻동안의 행운이, 오히려 자신에게 불운한 결과를 안겨 주었다는 것을 나타낸 구절로, 상황에서 오는 반어적(反語的) 표현이 보인다.


작품 해제

갈래 : 단편 소설

경향 : 사실주의

배경 : 일제 강점기의 서울

표현 : 반어, 곧 상황의 아이러니

제재 : 뜻밖의 행운으로 벌이가 좋아 기쁨과 불안에 부대끼는 인력거꾼

주제 : 일제 강점기 한국 하층민의 비참한 생활상


작품 해설

이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은 아이러니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가난한 인력거꾼에게 가장 긴박하게 필요한 것은 돈이다. 아내가 병을 앓고 누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 필요한 돈을 얻고 나자, 아내가 세상을 떠나 버린다. 돈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 식민지 시대의 궁핍한 도시 근로자의 상을 사실적으로 그려 낸 이 작품은, 결말 부분에 이야기의 역전(逆轉)을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참담한 비애를 토로하고 있다. 등장 인물의 심리적 긴장 상태도 긴박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은 1920년대 하층 노동자의 삶을 날카로운 관찰로 생생하게 그려 놓은 작가의 대표작이다. 일제 치하 서울 동소문 안에 사는 인력거꾼 김 첨지의 운수 좋은어느 하루를 담아 보이면서, 당시 도시 하충민의 비참한 생활상을 암시하고 있다. 대화에서 뿐만이 아니라 지문에서도 속되고 거친 말투를 여과 없이 드러냄으로써 밑바닥 인생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신문화에 수용되는 과정을 학생이나 양복쟁이와 같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표현함으로써 당시 급변하는 사회상의 일면을 제시하고 있다. 이 소설의 표제가 된 “운수 좋은 날”은 사실 인력거꾼으로 큰 벌이를 한 운수 좋은 날이 아니라 병든 아내가 죽은 비운의 날의 ‘반어적(irony) 표현’이다. 즉, 운수 좋아 돈도 벌고 선술집에서 건주정까지 부리는 김 첨지의 표면적 행동과 아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내면 심리가 대림과 갈등을 일으키는 독특한 아이러니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반어(反語)는 겉과 실상이 반대되어 표현의 효과를 증대시키는 방법이다. 아이러니에는 말뜻의 속과 겉이 반대가 되는 ‘말의 아이러니’와 상황이 상반되는 ‘상황의 아이러니’가 있다. 운수 좋은 날은 ‘상황의 아이러니’이다. 현진건 문학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 문학에서도 단편 소설의 한 전형으로 꼽히며, 더욱이 주인공 ‘김 첨지’에 대한 반어적 묘사는 우리 문학의 하층민 수용이라는 점에서 매우 기릴 만한 성취로 평가되고 있다.

작품 이해

“운수 좋은 날”의 구성상 특징

이 작품은 무엇보다 구성의 솜씨가 뛰어나다. 작품 속의 시간은 김 첨지가 인력거를 끌고 나선 아침부터 집에 돌아오는 저녁때까지인데, 그 동안의 사건이 평면적으로만 서술되지 않고 외면적 행동과 내면의 심리, 들뜬 즐거움과 무거운 불안감 등의 반복적 교체로서 교묘하게 엮어져 있다. 그것을 알기 쉽게 간추리자면 다음과 같은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작품이 전개되는 것이다.

<손님을 태우는 장면 - 돈을 번 데서 오는 기쁨 - 갑자기 엄습하는 불안 - 불안을 잊기 위한 행동>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을 지탱하는 구성의 주축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다른 날보다 손님을 많이 태워서 뜻밖의 액수를 벌게 되는 외면상 행운의 흐름이요, 다른 하나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멀어지는 내면의 불안 심리라는 흐름이다.

이와 같은 긴장 관계는 점점 고조되다가 선술집 장면에서 가장 괴로운 위기에 도달한다. 김 첨지는 마음속이 극도로 불안하면서도 바삐 집에 들어가지 않고 술을 마시며 돈을 뿌리고 횡설수설하는데, 이와 같은 행동은 아내의 상태에 대한 불안감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상태로까지 발전한 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우리 마누라가 죽었다네.” 하고 말했다가는 “죽기는 누가 죽어.” 하고 손뼉을 치며 웃는 행동은 매우 암시적이다. 이 행동은 단순한 농담이나 장난이 아니라 아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강한 예감의 표현이다. 그러한 예감이 너무나 뚜렷하고 무섭기 때문에 김 첨지는 집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하고 선술집에서 울고 웃으며 정신 나간 듯한 짓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감은 마침내 김 첨지가 집에 들어서는 부분에 와서 순간적인 공포로서 절정에 이르고, 곧바로 죽음의 확인이라는 비통한 결말에 도달한다. 모처럼 설렁탕까지 사 가지고 돌아왔건만 아내는 차디찬 주검이 되어 누워 있는 것이다. 이 결말은 뜻밖의 사실이 아니라 그 이전까지의 단계에서 불안의 점진적 발전에 의해 암시되었던 결과이다.

여기에서 ‘운수 좋은 날’이란 말은 가장 참혹하고 비통한 날에 대한 반어적(反語的) 표현으로서 그 참모습이 드러난다. 이 통렬한 반어로서 작품 전체의 긴장을 끝맺는 작가의 수법을 단순히 솜씨 있는 기법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식민지 시대의 궁핍한 현실 속에서 하층민들이 겪고 있던 삶의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이요 증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운수 좋은 날”의 작품 기법

인물 제시 : 서술자에 의한 직접적 제시로 되어 있으나 대화 속에서 인물의 특성이나 면모를 알 수 있는 간접적 제시 방법도 함께 쓰였다. 특히, 대화의 내용 - 김 첨지의 욕설이나 속어 등은 사회 빈민층의 심리를 단편적으로 보여 준다.

사건 전개의 방법 : 김 첨지의 행위가 추보적으로 전개되는 사건의 중간에 들어감으로써, 사건의 정황을 보다 확실히 전달하는 부분에서 요약, 압축에 의한 기교가 나타난다. 이렇게 삽입된 사건들을 부속 사건이라고 하며, 단편소설의 기법상 길게 서술되지 못한다. “운수 좋은 날”의 ‘발단’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에서 이런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갈등의 구조 : 이 작품에서의 갈등은 인물의 심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김 첨지의 심리 내부에서 반복되고 심화된 갈등으로 자리를 잡는다. ‘집’이라는 구체적인 공간도 갈등의 정도를 나타내는 기준이 된다. 즉, 집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주인공의 갈등이 심화되고, 멀어질수록 해소가 이루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집에서 멀어지는 부분에서 떨칠 수 없는 집 생각으로 갈등이 반복 심화된다. ‘집’은 김 첨지가 벗어날 수 없는 내면적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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