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가 암을 예방한다

2008. 1. 5. 12:19편리한 생활정보

최근 고추, 카레, 적포도주, 브로콜리 등 암 예방 식품의 작용 메커니즘이 분자수준에서 규명되고 있다. 더욱이 고추는 암을 예방할 뿐 아니라 암전이도 억제하고 암세포를 죽이기까지 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흔히 한국인은 고추가 든 매운 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에 위암 발생률이 높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한국인의 고추 섭취량과 위암 발생률이 상관없다는 조사 결과는 이미 1990년대에 보고된 바 있고, 고추 섭취가 상대적으로 많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에서는 다른 남방국가보다 위암 발생률이 오히려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매운 고추가 암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대 약대 서영준 교수는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캅사이신이라는 물질이 암 발생을 억제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국내 학자로는 처음 ‘네이처 리뷰’지 10월호에 식품 화학물질의 암 예방 분야에 대해 세계적 현황과 추세, 최신 연구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다룬 논문을 쓴 바 있다. 이 논문 상당 부분에 고추의 캅사이신을 비롯한 한국 고유식품성분의 발암 억제효과에 대한 연구결과가 소개됐다.

예를 들어 서 교수는 쥐 실험을 통해 캅사이신이 위에서 생성되는 대표적 발암물질인 나이트로소아민의 기능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나이트로소아민은 정상세포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후에 암세포가 되게 만든다.

또한 캅사이신은 체내 유해산소인 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작용을 일으키거나 염증을 억제시켜 암을 예방한다. 이 같은 암 예방 효과는 생강(진저롤) 마늘(아릴서파이드) 카레(커큐민) 녹차(EGCG) 적포도주(레스페라트롤) 콩(제니스타인) 브로콜리(설포라판) 토마토(라이코펜) 등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익동 박사는 “체내에 늘어난 활성산소는 발암물질의 활동을 도와줄 뿐 아니라 암 발생 과정에 관여하기 때문에 활성산소를 없애면 암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식품에 포함된 화학물질은 어째서 암을 예방할 수 있을까. 고추의 캅사이신, 생강의 진저롤, 카레의 커큐민은 화학구조가 비슷하다. 서 교수는 “육각형 벤젠고리에 붙어있는 수산기(OH-)가 활성산소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에 암 예방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놀랍게도 캅사이신은 암 예방을 넘어 암전이 억제 작용을 보여준다.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의 김옥희 박사는 “최근 식품의 안전성 연구 중 고추의 캅사이신이 동물실험을 통해 암전이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쥐의 피부암이 폐로 전이되는 것을 막는 캅사이신의 효과를 발견했고 서 교수와 공동으로 그 작용 메커니즘을 알아냈다. 이 연구결과는 10월 첫째주 이탈리아 피사에서 열린 ‘제8차 국제 항돌연변이 및 항발암 학회’에 발표돼 전세계 관련 전문가들에게 큰 주목을 받았다.

김 박사는 “이번 결과는 캅사이신을 이용한 암전이 억제용 신약의 개발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지만 작게는 암환자의 식단에 적당량의 고추를 포함해도 좋다는 뜻”이라며 “앞으로 마늘의 아릴서파이드에 대해서도 암전이에 관한 동물실험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요즘에는 식품 속의 화학물질 중 일부가 암전이 억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암세포를 죽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고추의 캅사이신이나 카레의 커큐민은 다양한 암세포의 자살을 유도하고, 브로콜리의 설포라판은 전립샘암세포를, 콩의 제니스타인은 유방암세포를 스스로 죽게 만드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물론 이들 결과는 배양된 암세포에 대한 연구결과일 뿐 실험동물에 적용된 사례는 아니다.

앞으로 식품 속의 화학물질을 세포 및 분자수준에서 잘 연구하면 특정 암을 예방하는 신약, 더 나아가 특정 암을 치료하는 신약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