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서리를 아세요?

2008. 3. 26. 07:50카테고리 없음

아마도 70~80세대 중에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서리라는 직접 경험해본 사람 많을 것이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던 시골에서는 철마다 과일들이 많아서 눈독을 들이는 도둑(?)들이 많았다.도둑이라야 다 아는 동네 아이들이라서 걸려도 요즘처럼 경찰서에 불려갈 일은 없었다.길 옆에 흔한 것이 복숭아요 자두였고 과수원도 많았다.서리를 하다 걸려도 '너무 표나게 많이 따지는 말거라'하며 타이르는 할아버지도 계셨고 모르는 척 눈감아 주는 아저씨도 계셨다.그런데 유독 한 집 동네에서 과수원을 제일 크게 하는 복이네 집은 달랐다.서리하다 걸리면 동네 창피를 당하기 일쑤였고 변상하지 않으면 경찰서에 끌고 간다고 협박까지 하였다.복이네집은 복숭아.사과,배나무가 많았고 여름에는 그 아래 딸기를 가득 심었다.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복이네 딸기 서리를 하던 유년의 추억 한토막 풀어놓고자 한다.


때는 바야흐로 등판에 허벌나게 땀나는 한여름 조금 못미친 어느 날 동네에서 제일 개구쟁이였던 나와 친구 네명이 초등학교 5학년 같은 반 복이네 과수원 아래 빠알간 딸기에 눈독을 들인지 여러 날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동네에서 딸기를 키우던 집이 복이네 집 한 곳인데 과수원과 같이 하다보니 밭을 경계로 철조망을 키보다 높게 쳐놓았었지요.
거기다가 복이네 집에는 사냥개인 셰파트를 키우고 있어 개를 풀어논 낮에는 엄두를 못내고 개를 묶어논 밤에 서리를 하기로 했지요 그래 학교가 끝나면 과수원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들어갈 곳과 나갈 곳을 제대로 살피고 또 저 넓은 과수원 중에 어느 곳이 딸기밭인지 어디가 콩밭인지 눈으로 대충 짐작해 놓았습니다.
복이네 집은 과수원과 딱 붙어있어서 뒷문만 열면 딸기밭이 훤히 보여 달도 뜨지 않은 컴컴한 날을 거사날로 잡고는 기다리길 일주일 드디어 딸기밭을 습격하기 위해 모두 모였습니다.
그런데 친구 중에 한 녀석 발이 유난히 희었습니다.
"뭐야 너 그 아래 흰 것은?"
"응 오늘 고무신을 한 짝 잃어버려서 아버지 흰 고무신을 몰래 신고 왔어"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른 친구들은 모두 검정 고무신이라서 변장이 제대로 되었는데 그 녀석만 흰 신발 때문에 금새 표시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신발이 커서 새끼줄로 잔뜩 동여맨 채......할수 없이 우리는 미리보아둔 곳의 철조망을 늘여서 혹시라도 걸렸을 때 도망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고 밭으로 들어갔습니다.
훈련도 안받은 녀석들이 어찌나 포복을 그리도 잘하는지 ~~~샤샤삭~~~샤샤삭~~~
각자 눈짐작해놓았던 곳으로 기어들어갔습니다. 나는 서리할 때 마다 늘 망만 보다가 처음 현장에 투입되서 그런지 가슴이 쿵광거리고 심장이 멎을 듯한 긴장감 때문에 눈짐작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저기 기어가도 손에 잡히는 것은 콩뿐이요 딸기밭은 어디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벌써 딸기를 따 먹는지 여기저기서 쩝쩝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살짝 머리를 들고 사방을 훑어보니 30미터쯤에서 녀석들의 머리가 보이는 것 아니겠어요?
방향을 잘못 틀어서 나는 반대 방향으로 가면서 콩밭이 딸기밭인줄 알고 주물럭 거렸던 것이지요.
할 수 없이 녀석들 있는 곳으로 다시 가기 시작했습니다.가다보니 돌뿌리가 무릎팍에 닿아 까졌는지 무릎이 쓰라렸지만 그래도 딸기를 먹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낮은 포복으로 열심히 기어갔습니다.
한참을 기어간 나는 마침내 딸기밭에 도달했습니다. 녀석들은 걸신들린양 제 배채우기에 정신 없었고 나는 이제서야 딸기 한 개를 입에 넣으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개새끼가 컹컹컹 짖어대는 것 아니겠습니까?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나는 놀라 손에 쥐었던 딸기를 떨어뜨리고 도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아 복도 지지리도 없는 놈아 복이네 딸기밭에 들어왔으면 딸기 맛이라도 보고 가야할 것 아녀"
"걸릴 때 걸리더라도 몇 개 따먹고 와 임마!"
도망을 치면서 친구녀석은 나를 놀리면서 잡을테면 잡아 봐 하며 휙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긴 저녀석은 학교에서도 유명한 달리기 선수니 저리도 여유가 있는게야...
어른들과 달려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잘 달려 별명이 오토바이였으니..그리고 서리도 하도 많이 해봐서 간이 부은 놈이라 여유가 있구나" 생각이 들더군요.
문제는 나였습니다. 방향 감각을 상실한 나는 들어온 것의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작아보이던 콩대는 왜 이리 길어보이는지 무릎에 치여 제대로 뛸 수도 없었습니다.
개는 벌써 풀어 놓았는지 왈왈왈 짖으며 점점 가까워지고 복이네 아버지도 그 소리를 듣고 후레쉬를 들고 나와 과수원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녀석들은 벌써 다 튀었는지 과수원은 나혼자 미친놈처럼 뛰어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아 이거 걸리면 뭔 창피다냐..주인은 아버지 친구요 복이는 같은 반인데..걸리면 복이가 학교에 금방 소문낼텐데....."
나는 예정에도 없던 곳으로 가서 철조망을 벌리고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엉덩이가 따끔하더니 갑자기 쓰라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메 이거 또 엉덩이 작살나버렸구만"
'그래도 걸리면 안되지 쪽팔린 것보다는 엉덩이 까진게 낫지 암 그렇고 말고'
엉덩이 까지고 걸리기 까지 하면 어쩔껴...... 하며
간신히 철조망을 빠져나와 둘러보니 복이네 아버지는 다행이 떼로 도망친 친구녀석들 있는 곳으로 가고 있더군요.
문제는 셰파트인데 나와 가까운 곳에서 계속 짖어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아니겠어요?
몸을 숨길 곳을 찾다 보니 논에 물을 대려고 공사하는 수로가 보이더군요 아직 공사중이라 물이 없어 그곳으로 기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무릎팍은 다까지고 엉덩이는 끈적거리고 아 생각만해도 열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 딸기 하나라도 먹어봤으면 좀 덜 아팠을텐데.....이게 뭐람 콩밭만 주물르다가 무릎팍 깨지고 엉덩이 작살나고...' 혼자 중중거리며 열심히 기어가는데 아 이건 또 뭡니까?
컴컴한데 갑자기 내 손이 무언가에 쑥 빠져드는 것이 아니겠어요?
'철퍼덕' 소리와 함께 쭈욱 미끄러지듯이 슬라이딩.........
아 코끝을 징하게 하는 이 냄새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어떤 놈이 몰래 화장실 거시기를 퍼다가 여기다 부어놓았는지 한무더기의 변...변...변............
며칠 되었는지 겉에는 약간 마르고 속은 숙성이 잘된 ..........아.............정말 환장하겠다.
순간 그 상황에서 번개처럼 스치는 어머니의 말.....
"똥독이 오르면 살이 썩는단다 그러니 잽싸게 씻어야 한다.걸리면 약도 없다더라"
그 생각을 하니 딸기 서리 하다가 도망치던 일은 까맣게 잊고 빨리 씻어야겠다는 생각만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일어나서 강물을 향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다행이 강물은 비가 제법 내린 후라 물이 많았습니다.
풍덩 뛰어 들어가서 몸부림을 쳤습니다.몸을 흔들고 비틀고 물속에 들어갔다 나옸다를 몇번 반복하다 보니 건더기들은 다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옷을 하나 둘씩 벗어서 물속에 헹구기 시작했습니다.
옷으로 물을 철퍼덕 철퍼덕 때리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으~~~~~~아.....난생 처음 현장에 투입되었는데 나만 왜 이고생을 해야하는 거야"
한참을 그렇게 옷을 두들기다 보니 사방이 너무나 조용해졌습니다.
그제서야 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앞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밤 적막강산에 혼자 물쇼를 끝내고 집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아 나의 첫 딸기밭 습격 사건은 이리도 허망하게 끝나버리는 구나....상처뿐인 영광이 아니고 상처뿐인 쪽팔림만 남긴 채....' 웃옷은 냄새가 나서 차마 입지 못하고 팬티만 입은 채 집으로 몰래 기어들어갔습니다.
수돗가에 옷을 홀딱 벗어놓고 비누로 몸을 씻는데 어머니 목소리가 들립니다.
'어디 갔다 이제 오니?'
"예,엄마 친구들과 놀다가 좀 늦었어요 씻고 들어가 잘테니 주무세요"
그런데 아무리 씻고 씻어도 그놈이 냄새는 지워지지를 않았습니다.
'아 변들이 살속을 파고들어 간거 아녀? 그러면 똥독이? 하는 불길한 생각에 씻고 또 씻었습니다.
그리하야 고단한 딸기 습격사건은 콩밭 습격사건으로 마무리된 채 끝나버렸습니다.
'그래도 걸리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야...걸렸으면 집안 망신에 학교에 까지 소문이 쫘악 퍼질텐데 불행중 다행이구먼.......
시큰거리는 무릎팍 따끔거리는 엉덩이의 아픔을 참으며 무사히(?)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이었습니다....눈을 뜨니 집안 분위기가 참 이상합니다.
어머니의 표정하며 아버지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다이너마이트 같았습니다.
"야,이눔아 너 어젯밤에 어딜 갔다 왔어?
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올것이 왔구나...그래도 한 번은 버텨 봐야지 하며
"친구네 집에서 놀다가 왔는데요, 아버지!
"뭐야! 네 친구네 집이 복이네 콩밭이냐,이눔아?"
'음마, 이거 어쩐일이다냐...분명 내가 맨 꽁지로 도망쳐서 잡히지 않았을텐데...'
"전 몰라요 아버지!"
다시 한번 시치미를 떼려는 순간
어머니가 옆에서 한 말씀 하십니다.
"아이고 이눔아 동구가 벌써 다불었어 어젯밤 아버지 흰고무신 신고 딸기 서리하다 걸려 철조망을 넘어 도망치다 고무신 한 짝이 철조망에 걸려있는 걸 복이 아빠가 알고는 아침에 가서 확인했대 이눔아"
"그리고 너 저 밖에 담궈논 옷은 어찌 된 일이냐"
"옷에 변으로 물감 들으니라 늦었냐 으이구 사고뭉치"
아 그렇습니다...문제는 그놈의 흰고무신이었습니다.
그때 흰고무신이 귀해서 고무신 마다 각자 표시를 해놓는데 동구 아버지 신발은 신발 윗부분에 바느질 실로 열십자 꿰매 놓은 것이라서 복이 아버지가 쉽게 범인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동네에는 소문이 쫘악 퍼졌습니다. 물론 학교에도 복이가 이야기 해서 선생님께 불려가 다섯 명이 화장실 청소를 일주일 했습니다.
다행히 내가 변무덤에 묻혔던 사실은 아무도 모른 채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것을 소상히 알고 계시던 어머니는 작년 12월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는데 이글을 쓰면서 더더욱 어머니가 그리워집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유년의 추억......이제는 모두 그리움의 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