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다니엘 데포(Daniel Defoe, 1661-1731) 런던 정육점 아들로 태어나 양말 장사를 하면서 정치에 열중. 풍자시 '순수한 영국인'으로 선풍적 인기를 차지하고, 정치 평론 '비국교도의 처형은 너무 이르다'로 투옥. 58세 때 「로빈슨 크루소」를 발표, 리얼리즘을 개척, 근대 소설의 아버지로 평가된다.
줄거리
나는 로빈슨 크루츠너라는 이름이었으나, 지금은 크루소라 부른다. 1632 년에 영국 요크에서 출생하였다. 부모의 반대를 뿌리치고 선원이 되었으나 파선을 당했고, 해적선에 붙들려 노예로 팔려 갔다. 거기서 도망쳐 브라질에서 일하다가 1659년 9월 1일 다시 배를 탔다. 그러나 이번에도 서인도에서 좌초하여 전원 행방불명이 되었고, 나만 기절한 채 무인도에 떠가서 정신이 들었다.
나는 그 섬을 절망도라고 이름지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12일 간에 걸쳐 일용품과 온갖 도구를 뗏목으로 섬에 날랐다. 바다가 보이는 고지 샘 근처에 집을 지었다. 적도의 북위 9도 22분 지점으로 관측하여 기둥을 세우고, 매일 날짜를 새겼다. 그리고 총으로 사냥을 하고, 농사와 목축을 하면서, 성경을 읽어 힘을 얻었다. 그렇게 20여 년 동안 살았다.
어느 날 문득 해변에서 사람의 발자취를 발견하여 놀라움과 아울러 공포심이 생겼다. 그러나 신앙심으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며칠 뒤에 그곳에 가보았더니, 이번에는 사람의 뼈가 흩어져 있었다. 돌이켜 보건데 지난 스물세 해 동안 사람을 그리워했는데, 이제는 사람이 두려워지는 것이다. 그 해가 저무는 어느 날이었다. 그 자리에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고 나는 언덕에 올라가 망원경으로 확인하였다. 열명 가량 되는 식인종이 해변에 상륙하여 사람을 잡아먹은 뒤 떠나가는 길이었다.
얼마 후 다시금 그들이 와서 포로로 잡아온 토인을 죽이려 하였다. 나는 총을 쏘아 그들을 쫓아 버리고, 그 포로 토인을 구출하였다. 그날이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프라이데이라 지어 주고, 집에 함께 살면서 25년만에 통하지 않지만 언어 발성을 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얼마 뒤, 다시금 상륙한 식인종들의 손에서 선교사와 토인을 구하였다.
그 토인은 프라이데이의 아버지였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곡절을 거친 뒤 마침내 영국의 배가 이 섬에 도착하게 되었다. 선원들이 반란을 일으켜 이 섬에 선장과 다른 두 사람을 내버리고 가려는 참이었다. 나는 그들을 구해 주고, 여기에 온 지 26년 째인 1686년에 그 섬에서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해 6월 11일 고국에 도착하여, 35년만에 변할 대로 변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