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의 중압감에 자살을 선택한 친구에게

2008. 8. 10. 01:56세상 사는 이야기

친구 잘 지내시는가!.지금 이곳은 한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네. 이 세상에서 자네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 실감이 나지를 않네 그려...
마흔 일곱 해 세상을 열심히 살아온 죄........한 회사를 평생 사랑한 죄....명퇴에 대한 불안감과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죄..그것이 자네가 죽음을 택한 죄라면 나는 자네에게 더 큰 죄를 지었네. 그동안 자네가 겪었을 상심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무책임하게 세상을 등진 못난 놈이라고 욕한 죄.. 또 급하게 장례를 지내 마지막 가는 길 배웅도 못한 죄....이 보다 더 중한 죄가 어디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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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와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때였지 자네와 함께 짝이 되었고 3년동안 함께 했고 고등학교 역시 늘 함께 했었지.몸이 약해 결석을 밥먹듯 해도 늘 1등을 놓지지 않았던 자네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네...처음에는 내심 기를 쓰고 자네를 이겨보려고 했지만 고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 단 한번도 자네를 이겨보지 못했지......그때 나는 타고난 머리가 따로 있긴 있구나 생각했었다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네는 장학생으로 대학을 다니게 되었고 나는 가난 때문에 대학을 포기했었지....물론 2년후에 나도 야간대학을 다니며 교사에 대한 꿈을 이어갔지만 늘 앞장서서 가고 있는 자네를 보면 부러움보다는 자랑스런 마음이 들곤 했었네....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취직을 했고 그 회사가 결국 자네에게는 평생 직장이 되고 말았지....
내가 공방, 가구점, 학원,의류점등 다양한 사업을 거치는 동안 자네는 오로지 한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 근무했고 그 결과 40대 초반에 부장의 자리에 올라 우리를 놀라게 했었지.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자네와 내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자네가 죽기전 추석 때 였었지.
아이들과 함께 만난 자리에서 자네와 나와의 만남이 마지막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네....
그때 자네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지...
"아,요즘 살기가 좀 팍팍하구만"
"더 이상 내가 오를 곳은 없고, 아래서는 나를 치워내려고 안달이고....."
"이 사람아 그동안 자네가 회사를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일했나, 그것만으로도 회사에서 자네를 내치기야 하겠나..."
"회사에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아래 직원들이 일부러 짜고 그러는 것인지 이젠 자꾸 나를 왕따시키는 것 같네..'
"아무래도 다른 대안을 찾아봐야 겠네....평생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했는데.....자네가 나 나오면 할 수 있는 일좀 알아봐주게나....아니면 퇴직금으로 부동산 투자라도 해볼까?"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세 자네 늦장가 가서 아직 아이들도 나이가 어린데 큰일일세..."
그렇게 자네와 차를 마시고 헤어진 후 한달쯤 되었을까, 자네는 내게 전화를 했었지.
"친구야, 아무래도 회사에 버티기가 힘들것 같네....한 5천만원으로 투자할 곳을 찾아봐 주게.."
그 전화를 받고 여기저기 좋은 투자처를 찾으러 다니는 사이 자네 동생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었지.
"혹시 우리 형과 만난 적 없나요...형 전화 번호 통화내역을 조회해보니 이 번호로 통화한 기록이 있어서요.."
"왜, 그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예, 형님이 목욕을 간다고 나간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어서요!"
"아니, 일주일씩이나 연락이 없다구요?"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자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생각했었지. 왜냐하면 평소 자네는 남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는 친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네가 실종되기 일주일 전 회사에 출근해보니 뜬금없이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는 이야기와 다음날 지방에 있는 회사로 출근해보니 덩그라니 빈 책상 하나 달랑 놓여 있었다는 이야기를 동생으로 부터 전해 들었지.
회사에서 노골적으로 나가라는 말을 하지 못하니 스스로 나가라는 무언의 메세지구나 생각한 자네는 사흘동안 못마시는 술을 입에 대며 괴로워했다지....
그리고 실종되던 날 오후 목욕을 다녀 온다고 집을 나갔다고 하더군....
한 회사에 20년 가까이 한우물을 판 회사에 뒤통수를 맞고 혼자 3일동안 텅빈 사무실을 지키며 얼마나 괴롭고 힘드셨나.
동생과 전화가 두절되고 답답하던 차에 다시 전화를 받은 것은 두달 후 였었지.
자네의 시신을 찾아 화장을 했노라는.......
집안에서 조용히 처리하라는 아버지의 의견 때문에 연락도 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세상이 하얘지고 가슴이 덜컥 내려않더군....
회사에서 당한 억울함이나 괴로움이 있었다면 친구나 주변사람들과 나누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었을테고 새로운 사업을 하든 또 다른 직장을 얻어서라도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도 있지 않았나
늘 한 가지 일에 몰입하고 최선을 다하는 자네의 모습을 늘 부러워하던 나도 이렇게 꿋꿋하게 잘 살고 있지 않은가....내성적인 자네가 그동안 얼마나 고민하고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이해는 하면서도 나는 자네에게 못난 사람이라고 책망하고 싶네......세상 모든 고통은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만큼 온다고 했는데...그 고통 좀더 견디며 함께 나누지 그랬나 .나이 40대면 모든 유혹을 떨처 벌릴 수 있는 불혹의 시대라고 하는데 자살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 자네가 너무나 안타까웠네...동생으로 부터 전화를 받고 난 후.한동안 자네가 세상을 향해 남겨둔 원망이 자꾸만 귀에 잉잉 거리는 것 같아 잠을 이루지 못했다네...
친구로서 자네 옆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고 가는 길도 배웅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네
이제 힘들었던 마흔 일곱 이승의 고통 모두 내려놓고 편히 잠드시게
내 자네의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 보겠네...
하늘에서 꼭 지켜 봐 주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