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_revenue_list_upper_##]

나비를 잡는 아버지/현덕 소설 감상하기

2008. 2. 26. 11:19마음의 양식 독서

300x250

나비를 잡는 아버지


현덕 :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193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고무신」이 입선하고,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남생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집을 나간 소년』, 『포도와 구슬』, 『토끼 삼형제』 등이 있습니다.



황혼의 종로로 방향을 돌려서

버스는 떠난다. 경쾌하게.


건드러진 노랫소리가 푸른 언덕을 넘어온다. 바우는 송아지를 뜯기며 밤나무 그늘에 앉아 그림 그리는 책을 펴 들었다. 송아지가 움직이는 대로 자리를 옮아 앉으며 옆으로 풀을 뜯는 송아지 모양을 그리느라 열심히 들여다보고 연필을 놀리고 하더니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흥!” 하고 빈정거리는 웃음을 한번 웃고는 그 소리가 듣기 싫다는 듯 그 편에 등을 대고 돌아앉는다.

‘겨우 서울 가서 공부한다고 배워 가지고 온 것이 유행가 나부랭이냐. 그리고 나비 잡는 것하구.’

지난 해 봄에 바우와 경환이는 한날에 그곳 소학교 소학교 : 지금의 초등학교. 보통학교.

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경환이는 서울로 상급 학교를 가고 바우 자기는 집에서 꾸벅꾸벅 땅이나 파며 있지 않으면 아니 될 때, 바우는 무척 슬퍼하고 억울해 하고 따라서 경환이를 부러워도 하였다. 바우 자기가 값없이 보내는 그 하루하루에 경환이는 좋은 학교, 훌륭한 선생 아래서 날마다 새로워 가고 높아 갈 것을 생각할 때 바우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 상급 학교에 가지 못하는 벌충 벌충 : 모자란 것을 다른 데서 보태 채우는 것.

을 여기다 하려는 듯이 틈 있는 대로 그림을 그리었고 또 그것으로 즐거움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그 경환이가 하기 휴가 하기 휴가 : 여름 방학

를 하고 서울서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전보다 얼굴빛이 희어지고, 바지 통이 넓은 양복에 흰 테두리한 모자를 멋있게 쓴 것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경환이는 서울이 얼마나 좋고 자기 다니는 학교가 얼마나 훌륭한 곳인가를 자랑했다. 거기다 활동 사진 활동 사진 : 영화.

배우 중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쩌고, 그리고 잡된 유행가를 부르며 동네 어린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나비를 잡는 것이 주로 하는 일이었다. 아마 경환이 자기는 이러는 것으로, 전일 보통학교 때 늘 바우에게 성적으로 머리를 눌려 오던 분풀이를 하려는 듯이 뻐기며 다니는 것이다. 바우에게는 그 꼴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꽃 피는 남산으로 방향을 돌려서 버스는 떠난다. 가로수 그늘.


노랫소리는 점점 가까워 온다. 그리고 잠시 언덕 너머가 떠들썩하더니 호랑나비 한 마리가 피로한 나래로 갈팡질팡 날아와 밤나무 가지에 야트막하게 앉는다. 바우는 그 나비를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잠깐 그 호사스런 모양, 찬란한 빛깔을 들여다보다가 도로 날려 보내려 할 즈음, 언덕 위로 동네 아이들의 머리가 불쑥불쑥 나타나며 뒤미처 경환이가 나비 잡는 채를 휘두르며 뛰어내려 온다. 경환이는 바우가 앉아 있는 밤나무 그늘로 들어서며,

“너, 호랑나비 어디로 날아가는 거 봤니?”

하고는 바우 손에 잡혀 있는 나비를 보고는 반색을 한다.

“나 다우.”

하고 으레 줄 것으로 알고 손을 내미는데 바우는 그 손을 툭 쳐 버리고 몸을 돌린다.

“넌 무슨 까닭으로 어린애들을 몰고 다니며 앰한 앰한 : 아무 잘못이 없는. 애매한.

나비를 못살게 하는 거냐?”

“뭐?”

하고 경환이는 뜻하지 않은 말에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는,

“누가 장난으로 잡는 거냐. 학교서 숙제를 냈어. 동물 표본을 만들어 오라구.”

“장난 아니믄, 벌써 너 나비 잡기 시작한 지가 며칠이냐. 그동안에 못 잡아도 백 마리는 잡았겠구나. 그거 다 동물 표본 만들고도 모자라서 또 잡는 거냐?”

“모두 못쓰게 잡았으니까 그렇지. 날개가 상하구.”

하다가는 경환이는 변색을 하고 한 발자국 다가서며,

“넌 남이 나빌 잡건 말건 무슨 상관이냐, 건방지게.”

“나두 상관할 만해서 그런다.”

“무슨 상관야.”

“너 때문으로 해서 담부턴 나비 구경을 못하게 되겠으니까 허는 말이다.”

하고 바우는 경환이 얼굴을 마주 노리다가,

“니가 동물 표본을 만들기에 나비가 필요하다면 난 그림 그리는 데 필요한 나비야. 너만 위해서 생긴 나비는 아니지.”

그러나 경환이는 “흥!”하고 코웃음을 친다. 바우는 한층 음성을 높여 계속한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에게 잡된 유행가는 너 왜 가르치는 거냐. 부르고 싶으면 네가 부르지.”

이 말엔 매우 괘씸한 모양, 경환이는 낯을 붉히며 대든다.

“이 동네서 나 하는 거 시비할 사람 없어. 건방지게 왜 이래.”

하는 그 말속엔 분명 자기는 마름 마름 : 땅 임자와 그 땅에 농사짓는 소작인 사이에서 땅 임자 일을 대신하는 사람.

집 외아들로서 지위가 높은 몸, 너 같은 소를 뜯기는 놈에게 시비를 받을 몸이 아니라는 빈정거림이 있다. 바우는 썩 비위가 상해서, “흥!” 하고 마주 코웃음을 치고 그리고 좀 더 골을 올리려고 두 손가락에 날개를 접어 쥔 나비를, ‘이것 너 줄까.’ 하는 시늉으로 경환이 등을 향해 두어 번 겨누다가는 그대로 공중으로 날려 버린다. 나비는, 방향이 없이 어지러이 한 바퀴 맴을 돌더니 언덕 아래로 높았다 낮았다 날아간다.

경환이는 갑자기 몸을 날려 그 나비를 쫓아간다. 그러다가 나비가 아래 논 가운데로 날아가자 뒤돌아서 바우를 무섭게 한번 눈을 흘겨보고, 그리고 돌 하나를 집어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송아지를 때리고는 언덕 아래로 달아났다.

그러나 경환이의 심술은 이것만으로 고만두지 않았다.


송아지에게 먹을 만치 풀을 뜯기고 언덕 아래로 몰고 내려와 수수밭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바우는 다시금 놀랐다. 개울 건너 바우네 참외밭에서 경환이란 놈이 나비 잡는 채를 휘두르며 날뛰고 있다. 그까짓 송장나비를 잡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닐 텐데 경환이는 그 나비를 쫓아 구두 신은 발로 지금 한창 참외가 열기 시작하는 넝쿨을 함부로 질겅질겅 밟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분명하다. 나비를 잡는 척 참외밭으로 몰아넣고 침외 넝쿨을 결딴내는 것이리라. 바우는 눈이 뒤집혔다. 더욱이 그 참외밭은 장차 햇곡식 나기 전까지의 바우 집 식구들의 식량을 거기다 예산하고 있는 것이요, 바우 자기도 잘 열면 책 한 권쯤 사 달라려고 벼르고 있던 터다. 바우는 나는 듯 개울을 건너 뒤로 쫓아가 한 번 등줄기를 우리고 우리고 : 힘껏 때리고.

나서,

“임마, 눈 없어? 이거 못 봐?”

하고 낭자한 그 자취를 손으로 가리키며,

“넌 남의 집 농사 결딴내두 상관없니, 임마.”

그러나 경환이는,

“우리 집 땅 내가 밟았기로 무슨 상관야.”

하고 기가 막히다는 듯, ‘피이.’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그러나 사실 기가 막히기는 바우다.

“우리 집 땅?”

하고 ‘허 참.’ 하늘을 쳐다보고 탄식하고,

“땅은 너희 집 거라두 참외 넝쿨은 우리 집 거 아니냐. 누가 너희 집 땅을 밟는대서 말야? 우리 집 참외 넝쿨을 결딴내니까 말이지.”

그러나 경환이는 머리에 썼던 운동 모자를 벗으며 한 발자국 다가선다.

“너희 집 참외 넝쿨은 그렇게 소중히 알면서, 어째 남이 나비 잡는 건 훼방을 노는 거냐. 나두 장난으로 잡는 건 아냐.”

“장난이 아닌지는 몰라도 넌 나비를 잡는 거고 우리 집 참외 넝쿨은 거기서 양식도 팔고 팔고 : 사고. 곡식을 사는 것을 판다고도 한다.

그래야 할 것이거든. 그래, 나비가 중하냐, 사람 사는 게 중하냐.”

바우는 팔을 저어 시늉하며 어느 것이 소중하냐고 턱을 대는데 경환이는,

“나두 거기 학교 성적이 달린 거야.”

하고 ‘피이.’ 하고 업신여기는 웃음을 짓더니,

“너희 집 집안 살림을 내가 알게 뭐냐.”

하고 같은 웃음으로 좌우를 돌아본다. 개울 건너 길가에 동네 아이들이 모여 서 있고 그 뒤로 지게를 진 어른들도 서 있다. 바우는 낯이 화끈 달았다.

“뭐, 임마.”

하고 대뜸 상대의 멱살을 잡고,

“그래서 남의 참외밭 결딴내는 거냐. 나빈 우리 집 참외밭에만 있구, 다른 덴 없어, 임마.”

경환이는 멱살을 잡히고 이리저리 목을 저으며,

“이게 유도맛을 보지 못해 이래. 너 다 그랬니. 다 그랬어.”

하고 으르다가 날래게 궁둥이를 들이대고 팔을 낚아 넘겨 치려 하나 원체 나무통처럼 버티고 섰는 바우의 몸은 호리호리한 경환의 허릿심으로는 꺾이지 않았다. 도리어 바우가 슬쩍 딴죽을 걸고 밀자 경환이 자신이 쿵 나둥그러졌다. 그러나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설 때 경환이는 손에 돌을 집어 들고 그리고 얼굴에 울음을 만들고는,

“이 자식아, 남 나비 잡는 사람, 왜 때리고 훼방을 노는 거냐. 왜.”

하고 비겁하게 돌 든 손을 머리 위로 쳐들어 겨누는 것이다. 결국 이때껏 아이들 등 뒤에 입을 벌리고 서서 보고만 있던 동네 어른 하나가 성큼성큼 개울을 건너와 사이를 뜯어 놓았다. 그리고 경환이를 참외밭 밖으로 이끌어 나간 것으로 끝났으나, 경환이가 손목을 이끌려 가면서 연해 뒤를 돌아보며, ‘어디 두고 보자’고 벼르던 그 말이 허사가 아니었다.

바우가 자기 집 장독간 앞에서 벌통을 들여다보고 앉았는데 경환이 집에서 부엌 심부름을 하는 계집아이가 왔다. 바우는 까닭없이 가슴이 성큼했다.

“바우 어머니 집에 있수?”

하고 계집아이는 안방과 부엌을 기웃거리다가 마당에 섰는 바우를 보고,

“너 우리 집 서울 학생 때렸니?”

하고 쳐다보다가 대답이 없으니까,

“너, 야단났다. 우리 집 아씨가 막 역정이 나서 너의 어머니 불러오래, 얘.”

마침 우물에서 돌아오는 바우 어머니를 보고 계집아이는 다시 한번 그 말을 하고 함께 문 밖으로 사라졌다.

‘난 잘못한 거 없으니까.’

하면서 바우는 가슴이 두근거리었다. 일없이 뒤꼍으로 갔다, 마당으로 나왔다 하며, 어머니가 돌아올 때를 기다리면서 조마조마해한다.

먼저 아버지가 뒷밭에서 돌아왔다. 이맛살을 찌푸린 얼굴로 아버지는 기색이 좋지 못하다. 호미를 마당 가운데 던지더니 아버지는 갑자기 큰 소리를 냈다.

“참외밭에서 누구하구 싸웠니?”

바우는 벌통 앞에 돌아앉아서 말이 없다.

“너두 눈 있거든 참외밭에 좀 가 봐. 넝쿨 하나고 성한 게 있나. 임마, 그 밭에 도지 도지 : 남의 논밭을 빌려서 부치고 그 대가로 해마다 내는 벼. 도조.

가 얼만지 아니? 벼로 열 말야. 참외는 안 돼두 낼 것은 내야지. 그리고 허구한 날 먹을 건 먹어야지. 그런 걱정은 없구, 임마, 참외밭에서 싸움이 뭐냐, 싸움이.”

바우는 벌통 앞에서 일어서며 볼멘소리로,

“누가 싸웠나, 경환이가 나빌 잡는다고 참외밭에서 막 넝쿨을 밟길래 말린 거지.”

그러나 아버지는 한층 음성을 거슬렸다.

“내가 뭐랬어. 참외밭 근처서 멀리 떠나지 말고 지키랬지. 그놈의 그림책 이리 내놔라. 그 것만 잡고 앉았으면 정신없다가 참외밭을 결딴내는 것두 몰랐지, 임마.”

하고 그 그림책을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리고 뒤꼍으로 가며 아버지는 혼잣말로 서울 가서 공부한 것이 나비 잡는다고 남의 집 참외밭 결딴내는 거냐고 중얼중얼 울타리에서 호박잎을 따고 있다. 아마 부러진 참외 넝쿨을 그것으로 이어 보려는 것이리라. 조금 후 아버지는 호박잎을 따 가지고 나오며,

“너의 어머니 어디 갔니?”

그러나 바우는 경환이 집에서 어머니를 불러 갔다는 말은 아니 나왔다. 묵묵히 바우는 대답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더 묻지 않아도 좋았다. 바로 그 어머니가 상기한 얼굴로 대문을 들어섰다.

어머니는 다짜고짜로 바우에게로 달려가 등줄기를 우리고는,

“자식이 어떻게 했으면 어미 망신을 그렇게 시키니. 어서 나비 잡아 가지고 가서 빌어라, 빌어.”

그리고 아버지를 향하고는,

“당신도 가 보우. 바깥사랑에서 부릅디다.”

아버지는 어리둥절하여 바우와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어떻게 된 일야, 응.”

그러나 어머니는 바우를 향해서만 또,

“남 나빌 잡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지 어줍잖게 왜 다니며 훼방을 노는 거냐.”

“누가 훼방을 놀았나. 남의 참외밭에 들어가 그러길래 못하게 말린 거지.”

“아, 니가 밤나무 골 언덕에서 손에 잡았던 나비까지 날려 보내며 뭐라구 그랬다는데 그래.”

그리고 어머니는 경환이 집 안주인이 꾸중꾸중하더라는 것, 그리고 바우가 나비를 잡아 가지고 와서 경환이에게 빌지 않으면 내년부턴 땅 얻어 부칠 생각을 말라더란 말을 옮기며 또 바우에게,

“어서 나비 잡아 가지고 가서 빌어라, 빌어.”

아버지는 연해 끙끙 땅이 꺼지는 못마땅한 소리로 뒷짐을 지고 마당을 오락가락하며 무섭게 눈을 흘겨 바우를 본다. 그리고 바우는 어머니가 등을 미는 대로 부엌으로 뒤꼍으로 피하다가는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담 밑에 붙어 서서 움직이지 않는 바우를 어머니는 쫓아나와 다조진다.

“이렇게 고집을 부리고 안 가면 어떡헐 셈이냐. 땅 떨어져도 좋겠니. 너두 소견이 있지.”

그러나 바우는 어슬렁어슬렁 길로 나가더니 우물 앞 정자나무 앞에 이르자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동네 노인들이 장기를 두고 앉았는 것을 넋을 놓고 들여다보고 섰다. 장기가 두 캐가 끝나고 세 캐가 끝나고 모였던 사람이 헤어져도 바우는 자리를 뜨지 않는다. 바우는 다만 자기가 조금도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그러니까 누구에게든 머리를 굽힐 까닭이 없다는 고집이 정자나무통만큼 뻣뻣할 뿐이었다.

해가 저물었다. 지붕 너머 집 굴뚝에도 연기가 오르고 그리고 그 연기가 졸아든 떄에야 바우는 슬슬 눈치를 살피며 대문을 들어섰다. 그러나 건넌방 쪽에 눈이 갔을 때 바우는 크게 놀랐다. 아궁지 앞에 위하던 그림 그리는 책이 조각조각 찢기어 허옇게 흩어져 있다. 바우는 그 앞에 이르러 멍청히 내려다보고 섰는데 등 뒤에서 아버지 음성이 났다.

“임마, 남은 서울 학교 다녀서 다 나비도 잡고 그러는 건데 건방지게 왜 다니며 훼방을 노 는 거냐, 훼방을.”

그리고 바우가 그림 그리는 것과 그것은 아랑곳없는 일일 텐데 아버지는,

“담부턴 내 눈앞에 그 그림 그리는 꼴 보이지 말어라. 네깟 놈이 그림 그걸루 남처럼 이 름을 내겠니, 먹고 살게 되겠니.”

하고 돌아서 문 밖으로 나가려다가 다시 돌아서며 아버지는,

“나빈 잡아갔지?”

하고 다져 묻는다. 바우는 고개를 숙인 채 묵묵하다. 아버지는 기가 막힌 듯 잠시 건너다보기만 하다가 언성을 높였다.

“이때껏 나가서 뭐 했어. 임마, 간 봄에 늙은 아비가 땅 얻어 부치느라고 갖은 애 다 쓰던 것을 네 눈으로도 보았지. 가뜩한데 너까지 말썽일 게 뭐냐. 어서 가서 빌지 못하겠어.”

아버지는 담뱃대 끝으로 바우의 수그린 머리를 찌를 듯 겨눈다. 그러는 대로 바우는 무춤무춤 피할 뿐 조금도 걸음을 옮기려지 않는다.

“그래도 네 고집만 셀 테냐. 그럴라거든 아주 나가거라. 아주 나가.”

하고 아버지는 빗자루를 들고 나섰다. 이런 때 어머니가 방에서 나와 그걸 빼앗아 던져 버리고,

“가서 빌기만 허면 뭘 하우. 나빌 잡아가야지. 그리고 지금은 어두워서 잡겠수. 내일 잡아 가라지.”

그리고 어머니는 바우의 등을 밀며,

“어서 올라가 저녁이나 먹어라.”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못마땅한 눈으로 흘겨보며,

“저런 놈 저녁은 먹여 뭘 해. 아주 내쫓으라니깐 그래.”

하고 자기가 먼저 문 밖으로 나간다. 어머니는 그 아버지가 들어오기 전에 어서 저녁을 먹으라고 권한다. 그러나 바우는 섰는 자리에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어머니가 달랠수록 더 짜증만 낸다. 한종일 아버지, 어머니에게 애매한 미움을 받고 또 그림책을 찢기고 한 그 억울한 감이 가슴 속에 벅차 다른 무엇이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이다. 건넌방 모퉁이서 바우는 아버지와 얼굴이 마주쳤다. 아버지는 어제와 다름없는 그 얼굴 그 음성으로 부엌에서 아침을 짓는 어머니를 향해 소리쳤다.

“오늘도 저놈이 제 고집만 세우고 나빌 잡아가지 않거든 밥 주지 말어.”

그리고 바우를 향해서는,

“오늘은 나빌 잡아가지고 가 봐야 허지, 그러지 않으려거든 영 집에 들어올 생각 말어라, 임마.”

그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자 어머니는 부엌에서 나와 작은 음성으로 바우를 달랜다.

“아버지 속상하시게 하지 말고 오늘은 나빌 잡아가지고 가 봐라. 땅이 떨어지거나 하면 너는 좋겠니. 생각해 봐라.”

바우는 여전히 말이 없다. 어머니는 그것을 바우가 순종하는 뜻으로 여긴 모양, 부엌에서 아침을 차리기에 분주하였다.

“얼른 밥 차려 줄게 먹고 나가 봐.”

그러나 바우는 어머니가 밥상을 날라 오기 전에 자기가 먼저 슬며시 집 밖으로 나갔다. 밥을 열 끼를 굶는 한이 있더라도 그 경환이 앞에 나비를 잡아가지고 가서 머리를 숙이기는 무엇보다 싫었다. 아들의 그만한 체면쯤 보아줄 줄 모르고 자기네 요구만 고집하는 아버지가, 그리고 어머니까지 바우는 무척 야속했다. 노여웠다.

바우는 동구 밖 아랫마을로 가는 길가 축동, 버드나무 그늘 밑을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기며 걷는다. 아침부터 요란스레 매미는 울고 그리고 속상하게 눈에 보이는 것은 여기저기 풀 위로 너훌거리는 나비다. 바우는 그 나비를 피해 가는 듯 문득 걸음을 바꿔 뒷산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바우는 일상 하던 버릇으로 풀을 베어 널고, 그 위에 벌렁 나둥그러져 하늘을 쳐다본다. 집에서보다 갑절 어버이에게 대한 야속함과 노여움이 사무친다.

‘아버지 말대로 정말 집을 나오고 말까. 그러면 아버지도 뉘우칠 때가 있겠지. 그리고 서울 같은 도회 가서 어떻게 고학이라도 해 볼까.’

바우는 정말 그렇게 해 볼 것처럼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 걸음 걸리는 대로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간다. 산 중턱쯤 이르렀다. 건너다보이는 맞은편 언덕을 너머 모밀밭 두덩에 허연 사람의 그림자가 엎드렸다 일어섰다 하며 무엇을 쫓는 모양으로 움직인다.

‘흥! 경환이 저놈이 또 나비를 잡는구나.’

하고 바우는 입가에 업신여기는 웃음을 짓는다. 산을 또 좀 내려와 바라볼 때 경환이로 본 그것은 어른이 분명했다.

‘흥, 경환이란 놈이 저의 집 머슴을 시켜 나비를 잡게 하는구나.’

그리고 바우는 또 한번 같은 웃음을 웃는다.

바우는 산을 내려와 맞은편 언덕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서 모밀밭을 내려다보았을 때 그는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경환이 집 머슴으로 본 사람은 남 아닌 바로 자기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농립 농립 : 농립모의 준말. 여름에 농사일을 할 때 쓰는 밀․보리짚 따위로 만든 모자.

을 벗어 들고 나비를 쫓아 엎드렸다 일어섰다 하며 그 똑똑치 못한 걸음으로 밭두덩을 지척지척 돌고 있다.


바우는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하니 아래를 바라보고 섰다. 그러다가 갑자기 언덕 모래 비탈을 지르르 미끄러져 내려가며 그렇게 빠른 속력으로 지금까지 잠기어 있던 어두운 마음에서 벗어나, 그 아버지가 무척 불쌍하고 정답고 그리고 그 아버지를 위하여서는 어떠한 어려운 일이든지 못할 것이 없을 것 같고, 바우는 울음이 되어 터져 나오려는 마음을 가슴 가득히 참으며 언덕 아래 모밀밭을 향해 소리쳤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300x250